정선에는 계속해서 비가 나리다 추석 전 날 정오 무렵 잠깐 그쳐 부랴 부랴 만지산 산소에 올라갔다.
벌초를 하며 무덤 속의 어머니께 하소연했던 이야기와 그 대답을 추정하여 옮겨본다.


통수 : 엄마 벌초하러 왔슴니더. 비가 마이와 자리가 꿉꿉하겠네요.
엄마 : 걱정도 팔자다. 근데 니 색시는 와 안 보이노?
통수 : 말도 마이소. 장모님이 너머져 고관절이 불라졌는데, 그 병수발로 똥줄 빠집니더.
엄마 : 아이고 우짤꼬? 나도 당해봐서 아는데, 아 낳는기 아푸다지만 그거는 호리뺑뺑이다.
올메나 아픈지 말도 몬한다..
안사돈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차라리 돌아가시는 것이 훨씬 편하데이.
통수 : 헛말이라도 그런 소리 마이소. 애편내 들으마 제사 밥도 한 그릇 몬 얻어 묵소.
올메나 장모님을 지극히 모시는지 효녀 심청이가 문안드릴 정도요.
엄마도 아플 때, 돌아가시는 것이 낳겠다는 내말에 삐껴가지고 말도 안 해노코...
엄마 : 모두 이승의 미련 때문에 나부댔지만 저승 문으로 들어오마 다 부질없다.
그거는 그렇고 추석 제사상은 누가 차리노?
통수 : 밤 세도록 맨들어 꽁꽁 어라 왔지요. 애편내가 잠을 못자, 병 수발은 우짤지 그기 걱정이요.
그라고 이번 추석은 과일이 비싸 개수를 좀 주랐으니 이해하이소.
엄마 : 제사음식을 너거가 묵지 내가 묵냐? 넘보기 넘사스러워 그렇지...
"야 이 썩을 넘아! 처삼촌 매떵 벌초하드시 하지말고 좀 단디해라."
통수 : 땅이 질어 잔디가 뽀피사서 살살하는기요.
엄마 : 다른 사람들은 매미채같은 톱을 가지고 잘만 돌리삿든데, 니는 이빨빠진 낫으로 설치냐?
통수 : 엄마 귀 짤릴까봐 제초기를 몬 사지요.
엄마 : 땅 밑에 누웠다고 날 흑사리 껍디기로 아는 모양인데... 기계 살 돈은 있고?
하기사 기계 소리가 시끄럽고 겁도 나더라.
통수 : 엄마! 색 나른 이 조화는 뽀바버립시더.
주변에 코스모스, 백일홍이 좌악 핏는데 촌시럽게 조화가 므슨 필요있소?
엄마 : 그런 소리마라. 요 우에 사는 용삼이 할매는 이 조화를 올매나 탐내는데..
만나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조화 사온 니 칭찬을 해사며 부러버한다.
통수 : 아- 알았어요. 내년 봄에 아예 양귀비 조화로 갈아 드릴테니 찐득 찐득한 애편이나 좀 빼주소.
확 묵고 죽어버리게...
엄마 : 니 애편 하나?
올들어 니 꼬라지도 행편없고, 아가 영 매가리가 없어 빈다. 므슨 걱정 있나?
통수 : 말도 마이소. 이십년 넘게 마음 준 넘한테 뒤통수 맞으니 뒤끝이 오래 가네요.
엄마 : 내가 뭐라 카더노? 친구를 가려 사귀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안 했나.
식구는 뒷전이고 맨 날 어불려 싸다니더니 꼴 조오타.
아직도 김해 남구는 만나나?
통수 : 제발 잔소리 좀 하지 하소. 남규 만한 넘도 없소,
씰데없는 소리 말고, 해 넘기기 전에 햇님이 장개나 좀 보내주소.
다른 친구들은 손자 넘들 재롱에 자빠진다는데...
엄마 : 걸어 다니는 니넘이 못하는 일을 땅속에 누운 내보고 우짜란 말고...
통수 : 매떵에서 뜨끈 뜨끈한 거시기 바람을 햇님이한테 한 방 미길 수는 없는기요?
엄마 : 미친 넘! 귀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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