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6시 무렵, 인사동 센터마크호텔 지하 ‘경복궁’으로
60여명의 인사동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사동에서 칠백평이 넘는 전관을 갤러리로 운영하다 망한,
‘아라아트’ 김명성씨가 재기의 깃발을 들고 입성한 것이다.





부도가 나 ‘아라아트’가 중국기업에 넘어갈 때, 가슴을 친 사람은
당사자 뿐 만 아니라, 인사동의 가난한 예술가들도 많았다.






몇 년 동안 무료대관으로 전시를 연 작가도 부지기 수지만,
‘창예헌’이란 인사동 사람들의 모임을 김명성씨가 후원했기 때문이다.
인사동에서 그를 만나게 되면 빈 털털이도 마음껏 취할 수 있었다.






그의 몰락과 함께 모임도 흐지부지해 인사동의 구심점을 잃어 갔는데,
느닷없이 옛 벗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것이다.






그 명목은 청백리 이 성 구로구청장의 삼선을 축하하고,
현충일 추념식에서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러 건재함을 과시했던,
가수 최백호씨가 내세우는 孝사상의 효교 모임을 만든다는
쌍권총을 들고 입성한 것이다.






이 날 참석한 분으로는 인사동을 노래하는 강민시인을 비롯하여,
방배추로 통하는 조선의 구라 방동규선생, 원로 만화가 박기정선생,
원로 언론인 임재경선생, 이수호, 박재동, 조경석, 정기범, 강찬모, 신상철,
이미례, 진옥섭, 이 성, 최백호, 김신용, 조해인, 이만주, 김상현, 조준영, 이청조,
임채욱, 정영신, 허미자, 임태종, 공윤희, 송일봉, 김혜련, 최유진, 서길헌, 최 윤,
고중록, 이상훈, 김용국, 전인미씨 등 오랜만에 반가운 분들이 어울려,
완전 잔치 집 분위기였다.






그런데, 전주로 간 음유시인 송상욱씨와 도예가 한봉림씨도 나타났고,
울산에서 황금기와로 유명세를 떨친 기와장 오세필씨가 김위경씨를
데려 오는 등 지방에서까지 올라오는 열성을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못오게 된 가수 장사익씨는
그 날 만찬비용을 부담하겠다는 등, 다들 김명성씨의 재기를 축하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빠진 분이 너무 많았다.
사정이 있어 못 나왔으면 모르겠으나, 미처 연락을 못 했다면 욕먹을 소지가 있었다.
예전에는 ‘창예헌’ 총무가 일괄적으로 통보해 별 탈이 없었지만
김명성씨가 직접 연락했다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다.






아무튼. 별다른 행사 없이 술 마시며 회포 푸는 자리로는 너무 과분했다.
덕분에 맛있는 음식에다 코가 비틀어지도록 마시고,
‘유목민’으로 옮겨 밤늦도록 흥청댔지만, 뭔가 아쉬웠다.






술이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남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쪽방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거지 행색이 아니라, 바로 거지였다.



 



그래도 인사동이 맺어 준 인연은 아름다웠다.

사진,글 / 조문호





































































울산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기와장 오세필씨다.
만난 지가 수십 년이 된 후배지만, 인사동에서 더 자주 만나는 오래된 벗이다.
그는 밀밭에만 가도 취하는 사람이지만, 남을 위한 술자리는 자주 만든다.
워낙 미식가라 울산만 가면 뭘 먹일까로 고민하여, 늘 내 입이 호강 해왔다.
기장 칼치집에다 고깃집, 회집 등 맛 집을 훤히 잡고 있어 갈 때마다 설렌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울산으로 출발하였는데, 또 똥차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다.
크라치에 이상이 생겨 도통 변속이 되지 않았다.
뒤에서 빨리 가라며 빵빵거리지만, 차가 꼼짝 않는데 난들 어쩌란 말인가?
급히 견인차를 불러 끌려갔지만, 걱정이 태산 같다.
분명 미션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견적이 만만찮을 것이고, 폐차시켜도 서울까지 끌고 가야했다.

응급조치만 하고 다시 운행했으나, 틈틈이 말썽을 부리며 애간장을 태웠다.






울산에서의 점심약속은 저녁 약속으로 미루어졌는데, 간절 곶 남평 회집까지 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디까지 왔냐며 수시로 전화가 울렸는데, 전화만 오면 눈치 챈 듯 시동이 꺼지며 말썽을 부렸다.

아마 복에 없는 회 맛을 보려니, 차가 심통을 부리는 것 같았다.
도착하니 오세필씨와 ‘울산신용보증재단’ 이사장으로 일하는 한양현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내뱉은 소리가 나 신용불량자에서 해방될 수 없냐고 물어보았다.

신용카드 하나 만들어 짝짝 긋고 싶어 어깃장을 부렸다.

오랜만에 만나 나눈 대화래야 고작 인사동이야기였다.

나도 요즘 인사동 출입이 뜸하니, 그가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주로 김명성씨에 대한 근황이었다.

서울까지 운전하고 가야 할 놈이 소주를 쪽쪽 들이키니 정영신씨가 불안한 눈빛이다.

‘먹다 죽은 놈은 화색도 좋다’며 염장을 질러댔다.






술자리가 끝난 후, 정초에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0732라는 커피 집에 갔는데, 그 시설이 보통이 아니었다.

엄청난 투자로 고작 손님이 몇 명 뿐이니, 주인도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별장처럼 자기가 즐긴다면야 무슨 대수겠는가? 없는 놈은 항상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커피로 술기운을 다독인 후, 서울로 출발했다.
고속도로에선 변속할 일이 없으니 별탈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휴게소에 들릴 때 마다 말썽을 부렸다.

간이 배 밖에 나와 죽는 것도 두렵지 않으나 정영신씨는 약간 쫀 것 같았다.


“어차피 인간이 태어나 한 번은 죽는 거야!

충무공 말처럼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음도 불사하는 자는 살 것이니라”

나무관세음보살~

사진, 글 / 조문호

















찜통같은 쪽방 열기에 화들작 놀라, 세미나 참석차 경주에 간 정영신을 찾아 나섰다.

빌빌거리는 똥차 끌고 약속한 경주 건천장으로 갔더니, 그 멋진 장옥이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건천장 뿐 아니라 성주장은 물론, 전라도에 있는 나산장까지도 장옥이 없어졌다.
제대로 보존된 장옥들이, 몇 년 사이에 문화관광형시장 바람에 전멸 상태다.
역사를 우습게 아는 인간들이, 도대체 무얼 제대로 하겠는가?





철마 송정장으로 이동하니, 얼마 나오지 않은 장꾼들이 파리만 날렸다.

옛 호시절은 오 간데 없고, 한숨 소리만 유령처럼 장터를 떠돈다.

개천 옆에는 이 장터의 역사를 지켜 본, 2-3백년 된 보호수들이 한가롭고,

새로 생긴 흥법사의 웅장한 불상은 돈 자랑 하듯 넘겨보네.






부산 국제시장 가는 길에 오랜만에 남포동을 들려 보았다.

부영극장과 부산극장 사이 골목에 자리했던 '한마당'의 추억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일렬로 들어 선 적산가옥은 사라졌으나, 형태는 그대로였다.

'한마당'자리가 '오춘자비어'로 변신했고, 이층 '학고방'자리는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사람도 건물도 바뀌며, 모두들 하나 둘 사라지는 구나.





가까이 있는 국제시장에도 갔으나 오래된 정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작 눈에 들어오는 것이 미제 담배나 양주 파는 점방 뿐이더라.
그렇지만 국제시장옆의 '원조밀면' 집에서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얼마나 맛있는지 앞에 앉은 정영신씨도 안 보였는데, 가격까지 착한 오천원이었다.






밤 늦도록 깡통 야시장을 기웃거리며 촬영을 하였으나, 역시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자갈치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꼼장어 안주에다 소주만 축내었다.

내일 울산 호계장 가는 길에 기와장 오세필씨나 만나련다.

쪽방에 앉아 수행하는 것 보다, 장돌뱅이 신세가 훨씬 상 팔자로구나.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0일은 통의동과 인사동을 오갔다.
대전에서 전시중인 정복수씨와 울산에서 올라 온 오세필씨로 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먼저 정복수씨를 만나러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3인전이 열리는 통의동 ‘인디프레스’로 갔다.


경복궁 지하철에서 내려 골목을 접어더니 장경호씨와 유근오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마, 술 마시다 담배 피우러 나온 모양인데, 반가움보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깝게 지낸 사이지만, 무슨 오해가 생겼는지, 일 년 가까이 등 돌리고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했으니, 이제 화해가 된 듯싶었다.

술집에 채현국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분이 있다지만, 약속시간이 늦어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좀 있다 보자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정영신, 오세필, 최백호씨를 비롯한 열 여명의 모르는 여인네들이

커피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세필씨 부탁으로 아침 일찍 전시 안내하러 간 아내를 길에서 만난 것이다.

DDP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들, 그리고 ‘아라아트’의 브레인 워시전을 거쳐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3인전이 열리는 ‘인디프레스’로 왔다는 것이다.

인사만 나누고 정복수씨가 기다리는 전시장으로 급히 갔더니, 조금 전에 나갔다는 것이다.

바쁜 일이 있나 보다며 돌아서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전시장 옆 ‘메밀꽃 필 무렵’으로 오라는 것이다.

그 곳에는 교장선생님인 정복수씨 부인도 함께 있었다. 몇일 전 대전 전시장에서 뵙기는 했으나, 반가웠다.

미색도 출중하지만, 정복수씨의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정복수씨가 반평생 신체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인 덕이었다.


술과 안주를 주문하기 바쁘게 사람들이 찾아왔다. 미술 평론가 최석태, 유근오씨와

화가 장경호씨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 최근모씨 등 여러 명과 어울려 마시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소주나 마실 것이지, 남 따라 장에 간다고 잘 마시지 않는 막걸리를 마셨더니, 금방 취했다.

아마 맞은편 미녀 눈길 닿는 게 쑥스러워 벌컥벌컥 마셨던 게 원인이 아닌가 짐작된다.

김정대씨와 합류하여 어딘가 이차를 간듯한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오세필씨와 인사동 ‘유목민’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김명성씨의 전화를 받고서야 자리를 옮겼는데, 그 자리에는 이성 구로구청장을 비롯하여, 최백호,

박인식, 오세필, 김명성, 최석규, 정영신, 임태종씨 등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카메라불도 꺼졌지만, 술이 취해 횡설수설해대니, 옆에 있던 아내가 가자며 눈치를 주었다.

왜 술만 취하면 오버하는지 모르겠다. 가슴에 뭉친 불만을 술이 밀어내는 걸까?

사진, 글 / 조문호











































헌 옷가게 주인에서 세계적인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변신한 미스터 브레인워시가 인사동에 나타났다.

6월21일부터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개최되는 그의 ‘라이프 이즈 뷰티풀(Life is Beautiful)’전을 위해서다.


지난 20일 오후5시부터 열린 '아라아트' 기자간담회에 들렸더니, 전시장은 기자들로 꽉 찼다. 

우리나라에 기자들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지만, 한 전시에 이렇게 집중되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딴 전시 오프닝에는 좀처럼 기자들을 만나기가 어려운데, 200여명이나 몰려 든 까닭이 도대체 뭘까?

"똥파리 근성을 가진 기자들"이라며 투덜댔으나, 나 역시 똥파리가 된 기분이었다.


'아라아트'김명성씨를 만나려 어렵사리 들어갔는데, 박인식, 오세필, 전인미씨도 만났다.

작가는 전시장 바닥에다 물감을 칠하기도 하고, 심지어 기자들의 신발에도 물감을 칠했다.

사인하랴 기념사진 찍느라 정신없었으나, 그는 신나는 일이었다.  


미스터 브레인워시는 스트리트 아트의 거장 뱅크시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의 주연을 맡아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10여 년 동안 예술 활동으로

길거리부터 스크린, 갤러리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2006년 부터 페인트, 붓, 스프레이 등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수많은 아이콘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표현하며 거리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수 마이클잭슨과 마돈나의 앨범 디자인을 하고, 벤츠와 코카콜라, 레이밴, 앱솔루트 보드카 등의

기업과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하는 등 ‘스트리트 아트'의 선봉에 서있다.

일명 '낙서 그림'인 '스트리트 아트'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겨났다.

러시아 혁명 후 시인인 마야코프스키가 '거리를 우리의 붓으로 만들자.

광장이 우리의 팔레트가 되게 하자'고 부르짖으며 시작해 급속도로 퍼져 나간 장르다.

브레인워시는 "예술은 바로 우리 심장과 같은 것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며

자유분방한 그의 그림처럼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기도 했는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기쁨과 재미를 보여 주겠다"고도 말했다.


그동안 LA, 뉴욕, 마이애미, 런던 등지에서 순회전을 했으나,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린 전시다. 
'스트리트 아트'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 '아라아트'전시장도 파격적으로 연출되어 있었다.

국내 전시를 위해 작업된 새로운 작품을 합해 총 300여점이나 된다고 했다.

특히 스트리트아트라는 장르를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선보이려는 기획에 따라

다양한 디스플레이 방식이 시도되었으며, 대형 조형물과 그래피티 작품들, 미디어 아트가 어우러져

미술관이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변신되었다.

전시장 벽과 천장, 바닥 곳곳에 페인트와 스프레이를 뿌려 공간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요한 예술 총감독은 "미술관이라기 보다는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스튜디오를 보는 것처럼 꾸몄다"고 설명했다.


KBS 미디어, 인터파크, 아트 투 하트(ART TO HEART)가 주최하는 ‘미스터 브레인워시 전’은 

9월 25일까지 열리며 입장료는 성인 1만원, 청소년 7천원, 초등학생 이하는 5천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1일 오후6시부터 인사동 ‘유목민’에서 인사동을 사랑하는 이들의 송년회가 있었다.


이 날 모인 인사동 꼴통들은 한 때, “創藝軒”맴버로 함께 한 사람들이다.
인사동을 지켜 우리문화를 살찌우자며, 인사동을 드나드는 예술인 100여명이 뭉쳤던 것이다.
당시 ‘아라아트’ 김명성씨가 총대를 메고, 아내 정영신이가 사무국장을 맡았다.

인사동에서 '천상병추모제'를 갖는 등, 5년 동안 일을 벌였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모두 들 개성이 강해 단합이 잘 되지 않는데다, 난재는 운영할 수 있는 재원이 없었던 것이다.
이사장 지원에만 의지했으니,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장터사진 찍느라 일에 쫒기든 아내가 사무국장을 넘겨주는 걸로, 그만 문을 닫게 되었다.
제일 아쉬운 건, 회원들 간의 경조사 연락이 끊겼다는 점이다.
더구나 회원가족을 모르니 신변에 이상이 생겨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강남대’에서 교편 잡는 조준영시인이었다.
지난 달 연락이 왔는데, “해 넘어 가기 전에 가까운 분들과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주변 분들만 연락하기로 했으나, 손발이 맞지 않아 빠진 사람이 더 많았다.

그 날은 충무로 ‘브렛송’에서 있었던 정진호씨 사진전과 겹쳐, 한 시간이나 늦었다.
약속장소에는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이명희, 강경석, 전강호, 주승자, 유진오, 전활철, 김상현,

허미자, 전인경, 박혜영, 전인미씨가 마시고 있었다. 뒤이어 정영신, 하욱만, 노광래, 강성수, 공윤희,

김명성, 강찬모, 박인식, 김은경, 배성일, 오치우, 임채욱, 이세희, 이상훈, 이태규씨가 속속 나타났고,

뒤늦게는 울산의 오세필, 경주의 정기범, 부산의 김봉미씨도 합세했다.

마침, 그 날이 김명성씨 생일인지라, 하루 뒤인 아내 생일까지 합쳐 생일케익을 잘랐다.

오랜만에 김상현씨의 “봄날은 간다”를 들어가며 신나게 놀았다.
밤 11시가 넘어 퇴각했는데, 김명성씨를 비롯한 잔당들은 노래방에서 새벽4시까지 놀았단다.

모처럼 인사동에서 사람냄새 진하게 맡았다.

사진:정영신,조문호 / 글: 조문호

























































































 

지난 29일, 조준영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번개팅으로,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말에
가까이 있는 몇몇 분들에게 카톡을 날렸다.

오후 7시가 가까워지니 ‘유목민’으로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준영, 유진오, 정영신, 이명희, 허미자, 전강호, 김상현, 김명성, 노광래씨가 왔다
뒤늦게는 미국에서 귀국한 오세필씨가 집에도 들리지 못한 채, 나타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술 귀신들이 반가웠지만, 가슴 아픈 전갈도 있었다.
이청운 화백은 뇌경색으로 '강북삼성병원'에 입원했고,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지만, 장경호화백도 마석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모두들 애주가이니 술이 병인이었을 게다.

몇 년 동안 술로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여럿있다.
사진가 김영수씨를 비롯해 서양화가 여 운, 김용태씨가 비명에 세상을 하직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 친구들을 잃을 수 없다며 입을 모았다.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는 굿판이라도 한 번 열어야겠다.

“물렀거라~ 물렀거라~ 저승사자여 물렀거라~”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지난 3일 오후7시 무렵,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찬 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오세필, 공윤희, 전인경,
황인호, 윤재문, 허미자, 전인미씨 등 여러 명이 있었는데,

뒤늦게 최백호씨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효교의 교주로 자처하는 최백호씨의 건강론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모임에서 틈틈이 건강에 대한 정보들을 전해 주는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갑자기 살이 빠져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 본 결과, 위에 조그만
종기들이 돋아났다는 것이다.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정도라지만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 엄청 놀란 것이다.

그런데 그 병인이 하잘 것 없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저녁 방송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습관적으로 땅콩을 먹었다고 한다.
그 땅콩이 주범인데, 몸에 좋은 견과류도 조금 먹으면 약이 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몸으로 체험해 가며 알려주니 최고의 멘토가 아닌가?
모두들 ‘로마네꽁띠’로 자리를 옮겼더니,
벌써 크리스마스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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