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서울문화투데이’에서 호출령이 떨어졌다.
조사할게 있으니 인사동으로 나오라는 데, 그것도 공범인 아내 정영신과 함께 오라는 것이다.

70년대 취조 당할 땐, 잡힌 현장 부근의 고려호텔에 끌고 가 물고문하였는데,

지금은 적당한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라니, 엄청 민주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인사동 거리는 뜨거웠다.
관광버스에서는 중국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햇볕에 시달리는 가시적인 것보다,

인사동의 정체성이 사라진 현실이 더 덥게 만들었다.

관청이나 인사동보존회의 사려 깊지 못한 관리에다, 돈만 쫓는 상인들 욕심으로

인사동 본래의 문화와 낭만적 정서가 사라진지 오래기 때문이다.

잡화점에 밀려 난 화랑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취조 당하기 전에, 그 날 끝나는 ‘아라아트’에서 열리는 황세준선생의 개인전부터 들렸다.

에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그 넓은 전시장을 작가 황세준선생 한 분이 지키고 있었다.

작품을 둘러본 후 “좀 팔렸냐?”고 여쭈었더니,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스무 차례나 개인전을 연 베테랑작가의 현실이 비참했다.

 

 

 

 

 

 


조영남 대작사건과 이우환 위작사건이 연이어 터진 요즘은 미술거래가 뚝 끊겼다고 한다.
이러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라, 모든 예술가들은 국고지원이 따르는 농사나 지어야 할 것 같다.

목구멍에 풀칠하는 게 먼저고 예술은 그 다음이니, 전 국민이 미개인으로 살아야 할 게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심각한 현실은 아는지 모르는지, 오로지 정쟁에만 눈이 뒤집혀 있다.

 

 

 

 

 


취조시간이 되어 ‘허리우드’로 내려갔다.
경찰서장급인 이은영 기자가 임동현 기자를 대동하고 나왔다.
말주변이 없는 나는 왠 만 한건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아내는 조근 조근 말을 잘했다.

묻지도 않는 말까지 실토했다.

난 최민식사진상 문제를 폭로하고, 춘천기획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거짓 진술은 하지 않았으니, 좋은 판결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

 

 

 

 

 

 

 

 

 

 

술집 “유목민”에서 빨리 오라는 호출이 빗발쳤다.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노동자시인 김신용씨가 모처럼 인사동 나들이를 했더라.

일찍부터 ‘아라아트’ 김명성씨와 대작해 술이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인디프레스’에서 열리는 삼인전 보러 나왔다며 주인공 장경호화백도 불러냈다.

그런데, 생각 외로 김명성 시인의 얼굴이 밝아보였다.

모두들 인사동 마지막 등불이 꺼졌다고 한탄했으나, 모든 걸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한 듯 보였다.

그 와중에도 돌아 갈 차비로 신사임당 한 장씩을 나누어 주었다.

 

 

 

 

 



 

반가운 벗들과 맘 편하게 마시니 술이 땡겼다. 모두 주량 초과다.
나는 소주를 두병이나 마셨고, 장경호는 막걸리를 두병 초과했고,

김신용씨와 김명성씨가 마신 맥주는 병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지나치던 퓨전피아니스트 윤강욱씨가 신세진 게 많았던지,

장경호씨를 대접하지 못해 안달이었지만, 더 마실 상황은 아니었다.

 

 

 

 

 

 

 

 

'다우문화' 김각환 대표도 김명성씨로부터 불려 나왔다.

인사 나눈 김신용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장경호씨에게 돈 봉투를 돌려주었다.

지난 번 소래포구에서 장경호씨가 찔러 준 돈 봉투를 그대로 가지고 나왔단다.

아무리 어려워도 벼랑에 선 장경호씨의 돈은 쓸 수 없었던가보다. 정말 가슴 아픈 장면이다.

 

 

 

 

 

 

 



그런데, 술판을 마무리 하는 퍼포먼스가 좀 썰렁하지만 재밋다.
김명성씨가 뒤늦게 나온 김각환씨를 장경호씨에게 소개하자, 김각환씨는 장화백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경호의 시비성 답이 김각환씨 염장을 질런 것이다.
“당신이 날 어떻게 아는 데요?” 그 뒤부터 날 선 말이 몇 마디 오가다 모두들 뿔뿔이 헤어졌다.

그냥 헤어지면 재미 없잖아...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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