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단양에 사는 설치미술가 김언경씨로 부터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작년 가을, 그의 딸 자연이 결혼식에서 보고 첫 만남이었다. 숙취에 끙끙댔지만, 서둘러 인사동으로 나갔다.

약속장소인 ‘툇마루’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 그 맞은 편 ‘사람과 나무’로 옮겼더라.

들려보니, 곤충사진가 이수영씨와 함께 있었는데, 카메라가방을 두 개나 들고 왔었다.
카메라가 괜찮은지 봐 달라기에 열아봤는데, 오래된 필름 카메라였다.

저급한 러시아산으로 마치 기관총 같은 손잡이도 달려있고, 큰 망원렌즈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모터드라이브를 비롯하여 다양한 렌즈들이 들어 있었지만, 실용성 없는 카메라였다.

폼 잡는 것을 좋아하는 아마추어가 사용한 듯한데, 지금으로서는 고철에 불과할 뿐이다.

작년 무렵, 단양에 차린 ‘낭만’이란 카페의 장식품으로 활용하라는 조언을 한 후 자리를 옮겼다.

이른 시간이라 단골술집들이 문을 열지 않아 ‘포도나무집’에 퍼져 않았다.
이수영씨는 곤충사진집들이 잘 팔려 나간다며 신바람 났더라.

주로 5-8세를 겨냥한 책들인데, 이 불황에 8만부나 팔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책 안보는 세상이지만, 자식한테는 아끼지 않으니, 이해가 되었다.

통인동에서 전시하는 장경호씨도 합류했다. 무더운 날, 낮술에 취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창 넘어로 지나가는 강민 선생의 모습이 비쳐 급히 모셔왔는데, ‘예당’에 이행자 시인 만나러 간다는 것이다.

인사동에 자주 나오시지만, 만날 사람이 별로 없다는 노시인의 한숨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희망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 짝사랑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올 해로 마무리하고, 다른 곳에서 사람을 찾을 생각이다.

사진가 마동욱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 거리로 마중 갔더니, 엄상빈씨와 걸어오고 있었다.

저녁 무렵 ‘브레송’에서 있을 문진우사진전 개막식 보러 일찍부터 나온 듯 했다.

낮 술을 권할 수가 없으니, 사이다로 목이라도 축여야 했다.

한물 간 인사동이지만 이래저래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 하루였다.

한 자리에서 너무 오래 죽치는 것 같아 전활철씨에게 전화했다.

빨리 문 열 것을 재촉하고는, ‘유목민’으로 옮겨 초장부터 돌아가며 노래 불렀다.

석파 김언경의 가곡 십팔번들이 우아하게 울려 퍼졌다.

유진오씨 까지 출근했지만, 더 이상 머물 시간이 없었다. 

충무로 전시장으로 떠나기 전에 나도 노래 한 곡 불렀다.

“목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러야 옳으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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