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  인사동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 사진가 정영신씨와 함께

몸이 아파 꼼짝 못하고 드러누운 화가 장경호씨 위문공연에 나섰다.

다들 ‘그동안 술이 얼마나 고팠을까?’걱정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더 고팠다.
연서시장에 들려 안주를 잔뜩 장만했다.
곰장어구이에다. 가자미찜, 메밀국수까지 사들고, 불광동 집으로 쳐들어갔다.






전화 목소리는 생생했으나, 일어나기 힘들어 그런지 나오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독거의 설움이란 몸이 편치 않을 때일수록 절절할 수밖에...
마석에서 불광동으로 이사 온지가 몇 달 되었으나 집들이도 못 갔는데,
결국 집들이가 아니라 병문안이 되고 말았다.






아픈 원인은 작업하는 자세가 불편해 생긴 신경통 같은데,

작년에 나도 그 병으로 입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병원에도 가지 않고, 파스만 쳐 바르고 있었다.
아이고, 이 고집불통을 어찌해야 할까?
내일 차 끌고 와 병원에 가자고 했으나, 기어히 필요없단다.






집 안을 둘러보니. 귀가 막혔다.
사람 사는 집에 냉장고는 커녕 냄비 하나 없었다. 
밥은 커녕 라면도 끓여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집안에는 화구와 그림들만 있었고,
먹다 남은 말라비틀어진 만두 두 알과 빈 우유팩만 딍굴었다.






내가 사는 한 평도 되지 않는 쪽방도 냉장고와 냄비 등 기본적인 것은 다 갖추고 사는데,

이렇게 넓은 집에 살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기야,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큰 집을 구했다지만,
이 집 달세가 장난이 아니란다.
벌이도 신통 찮은 환쟁이 주제에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보도금지’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쪽팔려 그러겠지만, 가난한 작가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찍힌 사진을 올렸다 지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렸다.

문제는 가난해 지면, 그 가난의 늪에서 쉽게 벗어 날 수 없는 현실이다.
체면이 무엇인지, 다들 정부에서 준다는 쥐꼬리만한 복지마저 마다하지 않았던가?
돈이 사람을 망치는 요물이지만, 최소한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마음이 편치 않아, 가져간 술에 우리가 취해버렸다.
내일 다시 들리겠다며 나왔더니, 기다렸다는 듯 호출이 왔다.
어느 소장자가 이청운씨의 못 본 작품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다.
그림 값이 만만찮은 이청운씨도 어렵게 살기는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작업 못한지가 오래되었는데, 비싸면 무슨 소용이던가?






대관절 작가는 누굴 위해 종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버는 격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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