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무렵, 반가운 손님이 방문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직원이 추석선물을 가져 온 것이다.
선물봉투에는 만원짜리 상품권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선물의 가치보다 배려하는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거지처럼 줄 세우지 말고, 필요 없는 상품이 되지않도록

빈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상품권을 주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았던가.

이게 빈민들을 위한 값진 봉사이며, 진정한 선물이다. 
힘들어도 직접 방문하여 전달해야만, 그 고마움도 배가된다.
몸이 불편해 나오지 못하는 노인들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후암로 57길 1동 3층에 사는 조장섭씨는 책을 베게 삼을 정도로 독서를 즐긴다.
다들 티브이만 끼고 사는 쪽방촌에서 책읽는 모습을 보기란 흔치않다.

매번 빌려 보는 그에게 책 한 권 선물하고 싶어, 상품권 한 장 주었다.
남은 한 장은 책 좋아하는 정영신씨에게 추석선물하련다.


덕분에 기분 좋은 추석명절을 보낼 것 같다.
다들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토요일의 동자동은 빵 배급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가했다.
서울역 주변을 돌아봐도 오갈 때 없는 노숙인들만 눈에 들어왔다.

문 닫힌 ‘사랑방’ 사무실 앞에는 김호태, 조두선, 선동수씨 등 사랑방을 끌어가는 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사진 찍는 김원씨도 끼어 있었다.

김호태 사랑방 대표에게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이 많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한마디로 거절 당했다.

그 거절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바쁜 일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다음으로 미루었다.
사랑방의 운영을 책임진 분이라면 앞으로의 포부나 진행 상황을 알려
조합원들의 알권리를 해소해 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그 날은 구멍가게가 문을 닫아서인지 다른 날에 비해 한가했다.

남종호, 유정희씨가 막걸리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데,
유정희씨는 아홉 살 때부터 남종호씨를 형님처럼 모셨단다. 각박한 세상에 그 오래된 인연이 부러웠다.
한 쪽에는 이기영, 이상준, 이홍렬씨 등 여러 명이 모여 있었는데,
그 날의 화제는, 몇 시간 전 이원식씨가 경찰에 연행된 사실이었다.

요즘은 이원식씨가 폐품을 열심히 주워 모아 어렵게 살고 있으나,
오래전 싸움에 연관되어 부과된 벌금 70만원을 내지 못해 구속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유롭지 못한 것 외에는 지금 사는 것보다 더 편할 수도 있겠다싶다.

“원식씨 부디 잘 수양하고 돌아오시게나~”

사진, 글 / 조문호















내가 사는 쪽방은 본래 송범섭씨가 살던 방이다.
작년 6월에 단장하여 입주시킨 ‘디딤돌하우스’로 이사 간 양반인데,
일 년 쯤 살다 다시 우리 건물로 돌아 왔다.

입주한 주민을 내쫓으려는 건물주와 싸워 만들어 낸 ‘디딤돌하우스’는
당시 쪽방 사는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방세도 다른 곳보다 싼데다, 실내외가 깔끔하기 때문이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옮긴 방 자랑을 해댔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따라가봤더니, 방을 깔끔하게 꾸며놓았더라.
나비를 만들어 창틀에다 촘촘히 붙여 놓았는데, 행운의 나비를 계속 만들 것이라 했다.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지만, 방 꾸미는데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그런데, 오래가지 못하고 일 년만에 다시 돌아 왔는데,

그는 어디에서 살아도 방 내부는 잘 정리해 놓고 산다.
4층에는 빈방이 없어 3층에 살지만, 수시로 4층을 오르내린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조건도 그 곳이 더 좋지만, 이사하는게 번거롭기 짝이없기 때문이다.
‘왜 돌아왔냐?’고 물었더니, 한마디로 재미가 없더란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외롭다면 무용지물이라는 말이다.






얼마 전 쪽방 사는 분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는 절대 반대한다고 했다.
불편한 변두리 아파트일 것이 뻔한데, 외로워 못 산다는 것이다.
‘얼마나 살 것이라고 거기서 징역생활을 해야 하느냐?’는 거다.

혼자 사는데 무슨 아파트가 필요하며, 관리비도 부담이라고 했다.
지금 사는 동자동은 교통요충지라 어디든 쉽게 다녀 올 수 있지만,
그곳에서 시내에 나오려면 온 종일 걸린다고 말했다.






송범섭씨는 한쪽 뇌에 이상이 있어 심한 정신적 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옛날엔 주방장 생활을 하며 성실하게 살았으나,
세 번의 결혼생활이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고 했다.
딸까지 두었으나, 결국 혼자 떠돌게 되었다고 한다.

병에 대한 구체적인 증상이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 볼 수 없었는데,
보기로는 활달한 성격이다.
바쁘게 이웃 방을 들락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따끈 따끈한 소식도 전해준다.
틈틈이 ‘쪽방상담소’에 나가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며 성실하게 산다.






그가 오고부터 닫혔던 족방 문들이 여기 저기 자주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장기를 두거나, 술을 마시거나,  옆방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기 때문이다.
때로는 좁은 복도에 자리를 깔기도 하지만, 서로 정 나누며 소통하는 모습이 보기좋다.
다들 방문 열듯, 마음의 문도 활짝 열었으면 좋겠다. 

누추한 방에 살아도 이웃과 정 나누고 산다면, 잘 사는 것이다.
송범섭씨가 만드는 행운의 나비가 훨훨 날아, 건강도 되찾고 가족도 되찿았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웃 사람들에 비해 더위를 못 견디는 이유를 뒤늦게야 알았다.
고참 들은 날씨의 이치에 순응하였고, 난 무슨 극기 훈련하듯 맞서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더운 시간엔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다 잘 때 들어오거나, 아니면 아예 그 곳에 자리를 깔아버렸다,

그들은 더위를 피해 다녔고, 난 버팅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정선 별장으로 피서나 갔다 오자.
허물어지기 직전의 별장이지만, 그 곳은 울 엄마가 묻힌 산중이 아니던가?
떠나기 전에 해둘 일을 체크하며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또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컴퓨터 식히는 팬 도는 소리에 나까지 돌아버릴 것 같다.






컴퓨터를 끄고, 천국으로 통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 곳은 시원하기 그지없고, 서울의 두 얼굴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옥상은 건물 관리인이 사용하는데, 더운 여름철만 잠깐 개방해 주는 유일한 숨구멍이다.

팬티만 걸친 비쩍 마른 알몸에 카메라와 담배까지 피워 물었으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보신다면 과관이었을 것이다.






서울역 건너편은 우리나라 대기업 빌딩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그 거대한 빌딩 틈으로 쪽방들이 코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가진 자들은 그 코딱지를 떼고 싶어 안달이지만, 어림없다. 어차피 함께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다.

어리어리한 빌딩은 사람냄새 대신 돈 냄새로 가득하지만, 쪽방 구석구석에는 사람냄새가 난다.

옥상에는 화초대신 고추와 방울도마도가 달려있고, 군데군데 빨래도 걸려 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3층에 사는 유씨가 소주와 새우깡을 들고 올라왔다.

이열치열이라듯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위 아래를 들락거리며 마신 소주가 다섯 병이나 되었다.

옥상에서 술을 못 마시게 해, 급하게 마셨더니 어질어질했다.

방으로 내려와 더위도 잊은 채 정신없이 잔 것까지는 좋았는데,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다.
냉수 들이키는 소리가 수채구녕 물내려 가는 소리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쪽방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강제퇴거 이웃 문화제’가

지난 7월 19일 오후7시부터 동자동 ‘새꿈 어린이 공원’에서 열렸다.

이윤을 중심으로 한 도시개발은 가난한 이들의 터전을 빼앗아 거리로 내 쫓고 있으며,

쫓겨난 이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저항은 합법적인 폭력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현실이다.

‘빈곤사회연대’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는 쪽방에서 강제로 쫓겨나야하는 빈민들의 연대활동을 강화시켜,

주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빈민들 지역을 돌아가며 진행하는데, 그 네 번째 이야기가 동자동에서 열렸다.

‘빈곤사회연대’ 윤애숙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강제퇴거금지법’에 대한 이원호씨의 강연이 있었고,

동자동 주민으로는 김병택씨와 임수만씨가 나와 실제 사례를 이야기 했다.

김병택씨는 건물안전진단을 위해 비워달라는 요구에 맞서, ‘동자동 사랑방’의 협조로 물리쳤다고 했다.


이날 행사 준비는 ‘동자동 사랑방’의 허미라 활동가와 선동수간사, 이상준씨와 김창현씨 등

많은 주민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협력했으나, 일부 주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누굴 위해 만든 자리인데, 주최 측에 태클을 거는 주민이 있는가하면, 욕지거리를 퍼 붇는 사람도 있었다.

술이 취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잘난 채 나서고 싶어서다. 그리고 주민들의 참석률도 저조했다.

심지어 ‘동자동 사랑방’ 임원조차 나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조합장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행사였다.

그리고 이 행사가 열리기 전에 ‘동자동 사랑방’의 운영위원회의가 열렸다는데,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고,

무엇이 결정되었는지 궁금하다. 그 결과는 즉각 '쪽방타운' 카페에 올려 전 조합원들이 알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누가 어떤 안건을 발의하였고, 누가 방임하였는지, 조합원들도 알 권리가 있다.

그냥 자리만 메우는 핫바지 임원이라면 물러나고, 몸 바쳐 일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젊은이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여름철 쪽방은 해수욕장을 방불케 한다.
더워서 다들 벗고 사니, 비쩍 마른 놈은 남사스럽다.
옷을 걸치면 금세 땀에 젖어버리니,
내색은 안 해도 누가 찾아오면 욕바가지다.
그래서 여름 쪽방 방문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내가 사는 쪽방은 옥상 밑이라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다.
바깥 통행에 지장을 주어, 방문도 열어두지 못하고
창은 옆 건물과 붙어, 있으나 마나다.
더운 바람이 윙윙 도는 선풍기소리조차 짜증스럽다.

오죽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갈까도 생각했으나 포기했다.
명분은 나대신 누군가는 이 방에서 곤욕을 치러야 한다지만,
솔직히 방 구하고 이사하는 절차가 귀찮아 못 간다.






어제는 쪽방 4층 복도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408호에 사는 정씨 영감이 페인트를 복도에 쏟았는데,
그걸 지운다며 퐁퐁(세제)을 통째로 부어버린 것이다.
건물 관리하는 이가 발을 동동 그렸으나, 소용없었다.
물을 퍼부어 물난리가 났는데, 거품이 둥둥 떠다녔다.





그런데, 정씨 방은 방이 아니라 창고나 마찬가지다.
그 좁은 방에 온갖 물건들을 놓아 누울 틈도 없다.
고물 티비가 아슬아슬하게 짐 위에 놓여있는데,
무너진다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이 들어 하나하나 버려야 하건만, 왜 저렇게 살까?





그 방만 보면, 더워 못 살겠다는 내 말이 엄살 같다.
사람이 참고 견디는 인내의 한계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강력한 마약 한 방으로 황홀하게 잠들 수 있는 안락사를 허하라.
의미 없는 고통의 삶은 죽는 것만 못하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에 들어온 지 10년차인 조인형(74)씨는 아직까지 총각이다.
평양에서 난리 통에 내려와, 어린 시절을 마산에서 보냈다.
집도 절도 없이 대전으로 서울 가리봉동으로 떠돌았지만, 사는 게 만만치 않았다.
온갖 일을 안 해본 것이 없는 밑바닥 인생을 굴렀는데,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으며 그나마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이제 일흔 넷이나 아직 장가도 못 가고 혈혈단신으로 외롭게 지낸다.
어쩌면 외로움을 잊으려 부지런하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잠시도 쉬지 않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고물을 주워 모았다,
그래서 조씨가 사는 동자동 쪽방은 고물 창고, 아니 보물 창고다.






그의 이름처럼 인형들이 가지런히 앙증맞음을 잃지 않았고,
상여 집 같은 조화나 온갖 잡동사니의 행색들이 어설프게 고개 내밀고 있다.
짐 때문에 누울 곳이 변변찮아도 물건을 처분하지 못한다.
구리나 동 파이브 등 비싼 고물만 한꺼번에 팔기위해 모을 뿐,
대개 자신의 손길이 묻은 애착어린 집기들이기 때문이다.






이젠 물건들이 오히려 주인을 내몰려고 할 정도다. 
더러 처분하면 좋겠지만, 그게 삶의 유일한 낙인데 어쩌겠는가?
버려진 사물을 주워 닦아 희망을 심어주고, 죽어가는 화초를 살려 생기를 돌게 한다.
마치 노인들이 모여 있는 요양소처럼, 잠시 소멸을 유예시켜 주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비에다, 고물 수집으로 한 달에 20-30여만 원을 더 버니,
이웃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삶을 산다.
발발 떨며 안 쓰고, 돈을 숨겨두는 사람들에 비해
건강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현명한 처신이다.
자기 말처럼, 백수는 무난할 것으로 보였다.






방에 들일 침대크기를 재기 위해 줄자를 좀 빌려 달랬더니,
아예 가져다 쓰라며 보관하던 줄자를 내 주었다.
얼마나 만졌으면 케이스가 반질반질 그의 콧등을 닮았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제 기능만 할 수 있다면 살아남는 게 미덕이다.
부디 건강 지켜, 보물과 함께하는 백수잔치를 기대한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김정호씨]



, 어릴 때부터 유달리 친구를 좋아했다.

밖에서 친구들의 인기척만 나도, 숙제는 뒷전이었다.

친구를 가리지 않고 사귀니, 울 엄마의 걱정스런 역정도 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도 친구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성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친구를 모우기 위해 음악실을 차렸다.

문 닫은 정미소를 개조하여 3000여장의 LP판을 모아놓고,

퇴근 후에만 문을 여는 무료음악실을 열었는데, 주 고객은 시골학교 선생들이었다.

그러나 주말에는 부산에서 원정 오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얼마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던지,

거짓 교통사고를 꾸며 직장에 땡땡이 칠 핑계까지 만들었겠는가?

멀쩡한 팔에 기브스하고, 몇 날을 고생했던 생각을 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울 엄마가 제일 경계하는 친구는 김해 살던 정남규였다.

돌아가실 무렵 남규만 멀리 했다면, 니 팔자가 이 꼴은 되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씀도 하셨다.


    

 


혼자서는 일을 벌이지 못하지만,

옆에서 도와주면 물불가리지 않는 성격을 알아 걱정한 것 같았다.

결국 울 엄마의 우려대로 직장에 사표 내던지고,

모두 잠든 틈을 이용해 정남규와 부산 에덴공원으로 야반도주한 것이다.

돈보다,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난초의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에덴공원 백원장의 설득을 거절하지 못해 이름 걸었던,

난향음악실로 시작하여 하늘목장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었다.

그러한 꿈같은 세월도 오래가지 않았다.

뒤늦게 내가 머문 곳을 알아낸 아버지께서 결혼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후두암에 걸려 수술 받고 오셨는데, 내가 속 섞여 병을 얻은 것 같아

마지막 효도한다는 심정으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한 여인의 인생을 효도의 제물로 삼았다는 자체가 눈물의 씨앗이었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남포동으로 진출해 국악주점 한마당

고전음악 학고방이란 술집을 차려두고, 다른 탈출구를 찾기 위해 만난 분이 최민식 선생이었다.

사진에 빠지니, 그 좋아하던 음악이나 술집은 관심 밖이었다.

해방시절의 분위기를 재현한 감격시대에서 피난시절을 담은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마지막으로 또다시 서울로 야반도주하게 된 것이다.




 

월간사진에 일자리를 얻어 사진 할 때도, 친구 찾아 나서는 일은 계속되었다.

퇴근 시간만 되면 인사동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도 사겼다.

부산에서 상경한 화가 이존수, 최울가, 박광호를 만났고, 소설 쓰는 배평모, 땡초스님 적음,

노동자 시인 김신용과 김명성, 설치 미술하는 석파, 도자기 꿉는 묵객 신동여, 사진기자 김종구

사진 찍는 김영수, 별을 그리던 강용대, 전활철 등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날밤을 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인사동사람들이란 블로그까지 만들어 오래 기억하려 했을까?

 

그러나 뒤늦게 진정한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는지 꼽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물론 좋아하는 친구들이야 많지만, 마음을 송두리째 줄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뒤늦게 머리를 쳤다. “그래! 아니라 질이야, 이 등신아~”




 

평생을 가족보다 친구를 더 좋아했으나,

동자동에 들어 온 후부터 활동반경을 서서히 좁히며, 오래된 친구마저 거리를 두고 있다.

이제 철들었는지, 죽을 때가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혼자 쭈그려 앉아 청승맞게 고독을 씹는다.

 

지난 주말 강릉단오제에 다녀 와 친구 아들놈 결혼식 간 것 외에는

이틀 동안 아는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메라도 접었다.

동자동에 가지 않고, 발길 가는대로 돌아다니며 새로운 세상 대하듯 살폈다.

지치면, 지방 떠나 비어있는 정영신의 집에 쓰러져 자고, 또 다시 돌아다녔다.



 


극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훌쩍거리기도 했고, 시장에서 빠진 이 사이로 떡뽁기를 끼워 낄낄거리기도 했다.

친구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려 별짓을 다했으나, 도무지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 많은 친구가 있었지만, 내 마음에 머무는 친구가 없어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단 한사람 있다면 저승으로 떠난 정남규 뿐이었다.

, 권력, 지,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는 잡놈일 뿐이지만, 조가 너무 잘 맞았다.

음악이면 음악, 술이면 술, 대마초면 대마초, 여자면 여자, 모든 게 내 생각과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양보하지 않아도 내게는 많은 걸 양보했다. 무슨 일만 터지면 그는 만능해결사였다.



[고 정남규씨]

 


그러나 서울로 상경한 후론 그를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지방 촬영 길에 창원이나 울산에서 간간히 만났지만, 가끔 술 취해 걸려오는 전화가 전부다.

문호야 잘 있나? 나 소주 한잔해서 기분 좋다.” 통화도 간단했다

그러더니 삼년 전 느닷없이 죽었다는 부음이 날아왔다.


정선에서 부랴부랴 김해로 달려 갔는데, 김의권, 황성근이도 와 있었다.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났으나, 정남규만 볼 수 없었다.

그것도 자기 집 마당의 감나무에 목메어 자살했다는 것이다.

암으로 투병 중이었는데, 고통이 너무 심해서 죽었을까?


가족들이 외부의 입방아가 두려워 쉬쉬했으니,

가족을 생각한다면 자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추측키로 내가 겪는 것처럼 심한 상실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어야만 했던 기구한 사정은 저승에서 만나 물어볼 작정이다.



  [동자동 송범섭씨] 


지방에서 돌아 온 정영신과 와인 한 잔 마시며, 이틀간의 방임을 마무리했다.

친구란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가까이 있는 사람이 좋은 친구라는 결론도 내렸다.

다시 동자동으로 복귀했다. 돌아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전화가 빗발쳤다.

끊긴 전화를 다시 연결하였더니 김정호씨의 전화였다.

작가님 식도락으로 빨리 밥 먹으러 오이소

먹는 것보다 더 자고 싶었으나, 일어나야 했다.

 

집에서도 아내의 밥 먹으라는 소리 뭉게다 타박도 많이 받지 않았던가?

오랜만에 들어보는 밥 먹으라는 소리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입맛은 없었지만 살기위해 먹어야 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내 밥값까지 내고는 쌀까지 가져가란다.


밥해 먹는 것이 귀찮아 있는 쌀도 이웃 주었는데, 기어이 밥을 해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전에 술 마시며 했던 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좌우지간  밥을 해 무야 삽니다.”

피로가 덜 풀렸는지 잠이 들 깼는지 빌빌거렸더니, 그가 4층 방까지 올려 주었다.

 이렇게 고마운 친구가 어디 있겠는가.

동자동에서 나를 걱정해 주는 몇 안 되는 친구 중의 하나다.






그가 떠나니, ‘디딤돌하우스에 사는 송범섭씨가 찾아왔다.

예전에 내방에서 살았다며, 지금 사는 자기 쪽방 자랑을 해댔다.

어떻게 꾸며 놓았는지 궁금해 따라갔더니, 마치 신방처럼 꾸며놓았더라.

나비를 만들어 창틀에다 촘촘히 붙여 놓았는데, 계속 만들어 붙일 것이라고 했다.

방을 꾸미는 새로운 즐거움에 빠진 그는, 나비처럼 훨훨 날수 있는 희망을 찾은 듯 했다.

 

그런데, 난 분명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새 방보다 오래된 지저분한 방이 더 좋고

희망이 보이는 정리된 방보다, 술병이 딩구는 절망에 찌든 방이 더 정겹다.

내 몸에 악마의 피가 끓는 걸까? 아니면 패배주의의 발로일까?

절망이나 희망이나 글자 한 자 차이라고 위안하지만, 그 의문은 결코 풀리지 않았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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