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는데, 죽을 날이 다가 온 걸까?
친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 날 정도로, 식구보다 더 챙긴 내가 요즘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으며,
그 오래된 인연을 하나하나 끊고 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변화다.

없는 자보다 가진 자가, 못 배운 사람보단 배운 자가,
못난 사람보단 잘난 사람들의 가식과 비인간적인 실체에 서서히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동자동 사람 외는 아무도 만나기 싫어 고장 난 핸드폰마저 일부러 고치지 않고 버틴다.

문제는 동자동에 정착하며 그 증세가 더 심해졌다는 점이다.
정 많은 동자동 사람들과 비교되어서 일까? 아니면 일종의 패배의식의 발로일까?
항상 마음의 문을 열라 나발 불었지만, 정작 나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것이다.






열흘 전, 동자동 공원과 용성이네 집에서 술 마시다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왔는데,
주머니에 넣어 둔 열쇠가 사라져 버렸다. 동내 나들이라 호주머니가 얕은 옷을 입고 나간 게 화근이었다.
쪽방의 자물쇠 고리는 방 안에서 고리가 나와 밖에서는 못을 뽑을 수가 없도록 되어 있었다.
쪽방에 별 중요한 물건도 없을 텐데, 다들 문 걸어 잠그는 건 철저하다.

망치도 없지만, 잠든 야밤에 퉁탕거릴 수 없어 고민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염치불구하고 건물 관리자 정선덕씨를 깨워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더니,
가끔 있는 일이라며 쇠 자르는 공구로 단숨에 자물통 고리를 잘라 주었다.
감사~ 감사~를 연발하며 들어 왔으면 잘 것이지, 술 취해 컴퓨터를 열어놓고 페북 질 하느라 날밤을 깠다.
눈을 떠보니 점심때가 지났더라. ‘식도락’도 끝난 시간이라 컵라면으로 속을 풀어야 했다.






그러나 외출을 하려니 자물통이 필요했다.
후암시장 철물점으로 급히 갔는데, ‘서울역쪽방상담소’ 앞에서 김만귀, 문규도씨가 밑반찬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 밑반찬이라도 챙겨가야 하지만, 미처 신청하지 못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던 얻어먹으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하지만, 쪽방상담소에는 왠지 걸음이 가지질 않는다.

열어 놓은 방이 걱정되어 자물 통 하나 사서 바삐 걸어오니, 멀리서 이재화씨가 반갑다며 손을 흔들지만,
손 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쳐야 했다. 방문을 걸어 잠거야 맘 편히 다닐 수 있는 것도 잠재적인 피해의식이리라.





쪽방은 겨울보다 여름 지내기가 더 힘들다.
방이 좁아 통풍이 잘 안되니, 방문을 열어놓으면 훨씬 나을 텐데, 다들 문을 닫고 산다.
아무런 비밀도 없지만, 독거들의 공통된 심리다.

그런 폐쇄되고 고립된 습관에 의한 것인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불신인지 모르겠으나,
방문 닫는 것보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 그것이 더 걱정이다.
깊어가는 불신의 고리를 끊고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평생을 사람 사람하며 인본주의를 노래불렀는데,

더 이상 그런 말 할 자격도 사진 찍을 자격도 없다.
불신의 병이라면 빨리 치료 받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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