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하는 이상구씨는 서울역 지하철 11번 출구에서 올 겨울을 보낸 사람이다.

밤늦게 돌아오다 보면, 늘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자고 있었다.
따끈한 빵이나 고구마를 사와 이불 속에 밀어 넣어도 미동도 안했다.
만사가 귀찮은 듯 보였다. 낮에는 어디서 지내는지, 늘 밤늦게 잠자리를 폈다.
지난 16일엔 모처럼 일찍부터 자리 깔고 앉아 있었다.

기회다 싶어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아제는 소원이 뭔기요?” 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뭉칫돈이나 여자, 대궐 같은 욕망의 찌꺼기들을 들먹일 줄 알았는데, 뒤통수 쳤다.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 아주 현실적인 소원이라 기꺼이 삼천 원을 내 놓았다.






술친구로 지내던 김씨가 내려오니, 술 사오라며 시켰다.
그는 꼼짝도 않고 입만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학창시절에는 야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는, 왕년의 자랑도 했다.

대개 그들을 인생패배자처럼 생각하지만,
더러는 아무런 욕심 없이 자유를 구가하는 사람도 있다.
추운 날씨에 노숙인 보호소에 가지 않는 것도 사람이 만든 규칙이 싫어서다.






술을 홀짝이다, 그가 나에게 되물었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야?'기에
“성은 조가고 하는 일은 사진기사다, 앞으로 조기사라 불러”했더니.
사진기자거나 사진작가지 기사가 무어냐며 나무랐다.
“기는 적을 記자고 사는 베낄 寫라 했더니, 그때야 ”말 되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서기’에서 일하는 이애신씨가 나타나 이상구씨에게 이 것 저것 물었다.
묻는 이야기라고는 언제부터 나왔냐는 등 뻔한 얘기들이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없냐?'는 물음에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자기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이다.
귀찮게 굴어 약 올리려고 거짓말했는지 모르나,
기초생활수급자면 길거리에서 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노숙 인에는 대개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아직 욕망의 찌꺼기가 남은 초짜는 늘 이글어진 표정이지만,
모든 욕망을 내 던진 고수들은 그냥 허허실실이다.
모든 걸 버렸다면, 그게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들 생불 만나거들랑,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의 시주를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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