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줄이려 잘 나가지 않으니, 이젠 다른 일이 꼬리문다.
다음 달 열리는 오일장 박람회 일로 급히 정선에 다녀와야 했다.
당일치기지만, 집에도 가지 않고 그냥 올 순 없었다.
지난달 심은 고추와 옥수수에 거름도 주고 물도 줘야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필요해 검사만료일이 다 된, 폐차 직전의 고물차를 불러냈다.

부랴부랴 ‘성산자동차검사소’부터 달려갔으나, 대기자가 너무 많았다.
오후6시가 가까워서야 순서가 돌아왔는데, 우려대로 불합격이었다.
매연 1% 초과에다 파손된 후미 등 때문에 미끄러졌다는 것이다.
깨진 아크릴만 교환 할 수 없어, 통째로 갈려면 가격이 만만찮았다.
정선 갔다 와서 해결할 생각으로 동자동으로 돌아갔다.
분향소에도 들려야 하고, 용성이네 쌀을 전해주는 등, 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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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분이 돌아가신 동자동 분향소는 30분이나 늦었지만, 다들 기다려 주었다.
연고자 없는 세 분의 상주가 되신 김호태씨를 비롯하여 우건일, 조두선,
김정호, 선동수, 박정아, 이난순씨 등 여러 분이 남아계셨다.
쪽방에서 돌아가신 채로 발견된 김동휘씨의 장례는 내일이라지만,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드릴 수가 없었다.

저승에서나마 사람대접 받기를 염원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야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난, 잘 때는 한없이 자지만, 안 잘 때는 허구한 날 날밤을 깐다.
틀에 짜인 규칙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잠자는 건 죽는 연습이라는 생각이다.
광주 518묘역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기도 했지만,
한 두 시간만 눈을 붙이고 정선으로 떠나야 했다.



 


오전에는 군청에서 일을 보고, 오후에는 만지산집에 들렸는데,
얼마나 가물었던지, 말라죽은 야채 모종이 곳곳에 너부러져 있었다.
물 퍼 나르고 거름 뿌리느라, 오줌 누며 거시기 볼 시간도 없었다.

어두워서야 간신히 마무리하고 산꼭대기 사는 최종대씨 집에 올라가
늦은 저녁밥을 얻어먹었더니, 갑자기 졸리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떠나려 했으나, 한 시간만 눈 부쳤다 가라며 두 내외가 붙들었다,
그 한 시간의 잠은 꿀맛이었다. 짧은 시간의 천국인 셈이다.





서울로 돌아오니, 오전 두시가 지나버렸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 온 걸 축하한다며 정영신씨와 술잔을 들었다,
작년 무렵 만지산에 들어 온,  치정에 얽힌 여인네 이야기를 안주 삼았다.
꽃뱀처럼, 어리숙한 촌 남정네들을 녹여 단물만 빨고 내친 놈이 한 둘이 아니라는데,
믿기지 않는 소문이었다. 와전되었기를 바라지만,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였다.

몇 시간 자지도 못한 채, 그 이튿날은 온 종일 자동차검사에 매달려야 했다.
정선가는 비용에 맞먹는 후미 등 값 줄이려 장안동 중고가게를 누벼야 했다.
그 다음은 매연이 문제였다. 검사소에선 1% 초과로 배기통만 털어 오라 했는데,
브란자를 수리해야 한다며 상당한 수리비를 요구했다.






아는 정비업소에 찾아가 부탁하니,
한적한 곳에 가서 패달을 밟아 공회전 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처음부터 왜 검사대행업체에 맡기지 않았냐고 했다.
고물차는 대행업소에 맡기면, 아무 탈 없이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그런 불법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들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 도장을 찍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안전문제인데 어떻게 아직까지 그런 게 통하는지...





어렵사리 검사는 받았지만, 이박 삼일동안 바쁘게 돌아 다녀야 했다.
쪽방에 올라와 라면 한 그릇 끓여먹고 컴퓨터를 켜니,
그때야 쌓였던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켜 놓은 채, 누가 업어가도 모를 상태로 뻗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이튿날 점심 무렵이었는데, 장장 열 몇 시간을 잠든 것이다.
차라리 영원히 잠드는 것이 더 편할 법 같기도 했다.

사진들은 몇 일전에 찍은 동자동사람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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