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오월 이맘때만 되면 광주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 간,

피 비린내 나는 '광주민중항쟁'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않다.

바쁘게 살다보니, 희생자 묘역에 좀처럼 참배할 기회가 없었는데,

지난 13일 ‘동자동 사랑방“식구들이 망월동으로 떠난다는 전갈을 받았다.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기회다 싶어 만사를 제쳐두고 따라 나선 것이다.

김호태회장을 비롯하여 우건일, 박정아, 선동수, 허미라, 김종호, 양정애, 김영애

김원호, 강동근, 구도원, 전도영, 한갑석, 김재호, 이태헌씨 등 여러 명이 함께했다.
‘한국주민운동교육원’에서 실시하는 ‘5,18 광주 민중항쟁 역사기행’ 나들이였으나,

열사들이 잠든 성지를 두 번째로 참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5,18광주 민중항쟁이 일어 난 그 당시엔 부산 남포동에서 음악주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취미로 시작한 사진에 빠져 장사는 뒷전이었을 때다.

사진가 최민식선생께서 찾아오시어 광주에서 무장군인들이 시민들을 무차별 사살한다는 말씀을 주셨다.

선생과 함께 광주에 가고 싶어, 사진기자로 일하는 친구들에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나,

곽을 철통같이 막아 기자들도 마음대로 들어 갈 수 없다고 했다.






그 당시는 언론에 자갈을 물려 광주에 관한 소식은 입으로만 전해지는 믿기지 않는 소식뿐이었다.

몇 일후 어렵게 ‘타임’지 한 권을 구해 보았는데, 표지는 뜯겨졌고, 기사 부분 부분이 검은 매직으로 지워졌지만,

광주항쟁의 윤곽과 끔직한 현장사진을 여러 장 접할 수 있었다.


그 천인공노할 학살사건을 엉거주춤 덮었지만, 결국 비밀은 오래갈 수 없었다.

아직까지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같은 국민을 그토록 무참하게 살해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길거리에 쓰러진 수많은 주검들과 군인들의 무자비한 폭력 장면을 뒤늦게 대하며 치를 떨어야 했다.





먼저 5,18 묘역 입구에 도착하여 다들 추모글을 써서 메달았다.

'민주의 문'을 거쳐 '민주광장'과 '추념문','참배광장'에 다 달아 열사들의 영전에 묵념을 올렸다.

광주빈민운동의 선구자이며 광주민중항쟁의 투사였던 김영철씨,

‘오월광대’로 알려 진 예술가 박효선씨 묘역을 차례로 찾았다.

들불야학에 함께하며 지역주민운동에 앞장 섰던, 그들을 기억해야 했다.






참배와 성지 순례가 끝난 후, 5.18 자유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광주민중항쟁 기록영화도 보았고, 당시 형무소 주위에 걸린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전남일보 사진기자 신복진씨와 동아일보 기자였던 황종건씨의 사진이 많았다.

다들 당시에는 신문에 사진 한 장 내보내지 못하고 숨겨두었으나, 뒤늦게 공개한 사진이었다.

사진집에서 본 사진이지만, 다시 한 번 울분이 치솟았다.


문제는 그토록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전두환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점이다.

무기징역을 받아 사면되었는데, 어떻게 그런 흉악범을 사면시켰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 땅에 정의가 서게 하려면 당연히 사형시켰어야 했다.

망월동에 묻힌 열사들을 편히 잠들게 하려면, 늦었지만 다시 단죄해야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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