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정오 무렵, 동자동 쪽방으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미디어 작가 김도이 군이 밑 반찬을 잔뜩 사들고 찾아 온 것이다.
어저께 페북에 올렸던 불신의 병에 시달린다는 글을 본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몇 달 전 다녀 간 후로 만나지 못해 근황이 궁금했었다.
같이 점심 식사하며 소주 한 잔 하자는 제안에 쌍수로 환영했다.

건물 밑에 자리잡은 ‘광주식당’엔 좌석이 없어 도이씨 따라갔다.
‘서울역쪽방상담소’ 부근에 있는 ‘청국장’집으로 안내했다.
동자동 살고 있는 나도 못 가본 식당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청국장에다 돼지볶음으로 소주 한 잔했다.






빈속에 소주가 들어가니 짜리한 기분이 죽였지만, 낮술이라 은근히 걱정되었다.
다행히 소주 두병을 도이씨가 많이 마셔 주었다.
페북에 올린 동자동소식을 틈틈이 보는지 이 쪽 사정을 좀 아는 것 같았다.
우연찮게 부모님 이야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연인즉, 어머니께서 심한 당뇨로 고통 받고 계신다는 것이다.
누군들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 지극한 효심에 감동 받았다.






발동 걸려 동자동 ‘새꿈공원’ 아지트로 갔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낮술에 젖어 있었다.
정재헌씨는 이미 맛이 갔고, 이준기, 김용태, 계남기, 이한보, 이원식, 강완우씨 등

많은 사람이 여러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도이씨가 동내 사람들을 위해 막걸리와 담배를 사왔다.

다들 고맙게 받아 마셨는데, 이번엔 고급커피와 캔 막걸리를 또 사온 것이다.

이준기씨가 부담스러운지, 집에 가져가라며 사양한다. 사실 지나치면 자존심 상할 수도 있다.

더구나 이준기씨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왕년의 주먹 아니던가.





이 날은 교도소 갔다 온 친구들이 많아 그런지 교도소 이야기가 주 화제였다.

다들 사연이야 기구하지만, 이구동성으로 쪽방생활보다는 교도소 생활이 편하다는 것이다,

갔다 오면 몸까지 좋아진다는 교도소 예찬론을 폈다.

하기야 얻어먹으러 다니지 않아도 삼시 세끼 밥 챙겨주겠다, 사람들과 늘 함께 어울리니,

쪽방처럼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단지 술 담배를 못하지만, 건강에는 그 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술 취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이기영씨를 비롯하여 라흥주, 강동근, 이태헌, 연영철,

유한수씨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마침 정용성이가 지나갔는데, 그날따라 말짱했다.

궁금증이 발동해 옥탑 방까지 올라가보았는데, 끓여놓은 라면을 먹고 있었다.

황춘화씨는 흐뭇한 표정으로 자식 놈의 라면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그런데, 황춘화씨 얼굴이 묵사발이 되어 있었다.





그 가파른 '9-18’건물, 마의 계단 에서 또 넘어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넘어져 팔을 다치지 않았던가.

아들 용성이가 넘어져 다치더니, 정재헌씨가 넘어져 다쳤고, 어제는 황춘화씨가 넘어져 다친 것이다.

건물 계단 손잡이를 쪽방상담소에서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사람 다 잡고 설치할지 모르겠다.

좀 있으니 꼭대기까지 손님이 줄을 이었다. 정재헌씨야 5층에 사니 올라 올 수 있겠으나. 이원식씨도 올라왔다.






내가 술집 작부를 자청하며 노래 한 곡 뽑았다.

‘비나리는 호남선’을 청승맞게 불렀는데, 갑자기 정재헌씨가 서럽도록 울어대는 것이었다.

말 못할 사연이 있어 보였다. 눈치 빠른 황춘화씨가 자기가 춤 출테니, 신나는 노래로 불러 달란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로 돌렸는데,

애미는 신바람 나 흔들어 댔으나 용성이는 처음 듣는 노래라 흥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작은 노트처럼 생긴 노래방 책과 손바닥만한 앰프를 켜 놓고 한 번 찾아보란다.

나는 가수라 노래방 노래는 하지 않는다며 밀쳐냈더니,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일 촬영이 있어 강릉까지 가야해 너무 오래 퍼질 수가 없어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동자동 사랑방’ 일행이 방문하겠다는 전갈이 왔다. 타이밍이 귀가 막혔다.

내가 사랑방으로 갔더니, 박정아, 김정호씨가 술과 안주까지 준비해놓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에 올라와 보니, 밑반찬까지 사온 것이다. 박정아씨도 내 하소연을 페북에서 본 듯했다.

후배가 와서 냉장고를 채워놓았다며 돌려보냈으나, 이게 사람 사는 맛이다.






‘동자동 사랑방’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박정아씨는 피가 뜨거운 빈민운동가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주민들이 소통하며 정 나누는 일이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말없이 온몸과 마음을 바치니, 그 열의에 보답하느라 김정호씨도 열심히 돕는다.

내가 오버 할 것 같아 술을 자제하니,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떠 난 후 컴퓨터를 열어보니, ‘광화문미술행동’에 대한 김진하씨의 댓글이 올라와 있었다.

핵심에서 비껴 간 글이긴 했으나, 이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재발을 막기 위해 누군가 책임지는 사람은 있어야 했다.

대표가 사임하고 부대표가 끌어간다면 협력할 용의가 있다며, 함께한 분들께 죄송함을 표했다.






더 이상 작가 없는 사진이 떠돌아서는 안 된다. 아무리 공익도 중요하지만, 작가에 대한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

차후 어디에서라도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저작권 침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작정이다.

잘 못된 일은 바로 잡아야 하니, 다들 양해해주기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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