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울 아부지 제삿날이다.
몇 일 전 정영신으로 부터 아버지 제사는 어떻게 할 거냐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물이라도 한 그릇 떠놓고 형편대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대꾸하지 않았다.
가족 물리치고 나온 놈이 무슨 염치로 제사까지 부탁 할 수 있겠는가?
여지 것 제사준비는 물론, 모든 걸 아내가 챙겨 제삿날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오후 다섯시에 개봉한 ‘내 친구 정일우’ 독립영화 시사회에 다녀왔다.
빈민운동의 대부였던 정일우신부님 생각에 빠져있다, 갑자기 제삿날이 떠오른 것이다.
그 것도 자정을 한 시간 정도 남긴 무렵이라 난감했다.
부랴부랴 제사 준비를 하였으나, 차릴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밥상이 없어 컴퓨터 올려놓은 상을 끄집어내고, 창호지가 없어 모조지에 지방을 썼다.
마침 손님이 사다놓은 소주가 있어, 평소 먹는 음식으로 차렸다.
일회용 오뚜기 밥 한 그릇, 물 한 그릇, 참치 캔 하나, 꿀 빵이 전부였다.
술을 올리며 절을 하였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상을 중히 여겨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놓고 치성을 드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평소 혼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으나, 이 날은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술이 취해 제사상 앞에서 너스레를 떨어댔다.
“아부지! 이 못난 자식 놈을 용서 하이소.
그래도 아부지가 자셔보지 못한 참치가 있습니더. 참치 안주로 한 잔 드이소
모든 죄 값은 치루는 중이니, 저승 가서 잘 모실게요“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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