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문재인씨가 대통령 되었다는 소식을 페북에서 알았다.
반가웠지만, 홍준표 득표의 쪽팔림과 심상정 몰락에 마음이 엿 같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며, 점심 먹으러 ‘식도락’으로 갔다.

빵으로 때울까 생각하다, 오늘 세월호 리본을 만든다기에 내려간 것이다.
다행스럽게 입맛도 없는데, 식도락에서 국수를 끓여 놓았다.
요즘 쓸 수 있는 이빨이 아래위로 두 알 뿐이라 밥 먹기가 영 힘든데,
물 국수라 잘도 빨려 들어갔다.

난순 여사가 비벼 먹는 비빔국수도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것도 욕심이라며, 눌러앉아 리본 만들기를 기다렸다.






허미라씨를 비롯하여 김정호, 선동수, 박정아, 유한수, 김호태,
김창헌, 이인자, 강병국, 조남철씨 등 일꾼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곳에서 세월호 리본을 세 번째 만들었으나, 아직도 다들 서툴다.
규격화를 거부하는 인간 본능이라 믿고 싶었다.

모두들 세월호에 가득 찬 진흙을 호미로 퍼내는 심정으로 리본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새로 뽑혔지만, 아무도 정치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많은 주민들이 정의당을 지지했기에, 비참한 결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와 힘을 모아 적폐를 하나하나 청소할 것으로 위안했다.






먹을 것이 마땅찮아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베지밀 한 박스를 사왔다.
4층까지 기어 올라와서는 쪽방에 퍼져버렸다.
한 숨 자고 일어나 빵에다 베지밀 까지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했다.

오후 아홉시가 넘었지만, 동내 산책이라도 나가야 했다.
밤에는 술 마시는 회사원들 뿐이라 잘 나가지 않지만,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공원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형님이라 불렀다.
돌아보니 정용성이었다. 이 녀석은 지 애비 벌 되는 놈을 늘 형님이라 부른다.
불렀던 사연인즉, 지 애미와의 실랑이 때문이었다.






두 모자가 술을 너무 좋아해 매점에서 소주 두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사서는,
아들은 시원한 공원에서 마시자 하고, 애미는 쌀쌀하니 방에서 마시자며
서로 고집을 꺾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지원군으로 불렀던 것이다.

다들 반 술은 되었지만, 나만 말짱해 일단 중재안을 내 놓았다.
30분만 마시고, 방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사실은 내가 더 술이 고팠기 때문이다.
용성이 녀석은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불렀다.





멜로디는 분명 투쟁가였으나,
가사에는 압박과 설음에 해방된 민족까지 뒤 섞인 묘한 노동가였다.
반세기 동안 정치꾼들의 놀음에 길들어 온 우리민족의 자화상이 아니라 자화가였다.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오로지 잘 사는 것만 지향해 온 민초들의 슬픈 노래였다.






약속시간이 되어 다들 황춘화씨 따라 방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 방은 5층에서도 옥상까지 올라가야 하는데다,
계단도 가파르고 좁아 힘든 코스지만, 한 잔 더 마시려면 따라가야 했다.
소주와 안주가 담긴 오븐을 들고 올라갔는데, 다들 바빴다.

술 취한 용성이는 방 치우러 가는지 먼저 올라가 버리고,
황춘화씨는 4층에 있는 술꾼 정재헌씨 집부터 들어갔다.
이 양반은 술 취해 자고 일어나, 그 때야 허기를 메웠는지 이를 닦고 있었다.
이 판에 어울리면 힘들 것 같으니, 제발 제발이라 부르짖었다.






알 중 어미와 아들, 그리고 좃 중 셋이 모여 오붓하게 한 잔 했다.
술이 취해 오가는 이야기들은 도무지 사이클이 맞지 않았다.
켜 놓은 텔레비 마저 사이클에 문제가 생겼는지 펄펄 거렸다.
내가 텔레비 죽이라니까, 이번에는 손바닥 만한 라디오를 켰다.

두 모자가 매일 같이 함께 술을 마시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냥 대화의 칸막이처럼 켜 놓는 것이다.





대화 칸막이로는 내 노래가 더 좋다며 한 가락 뽑았다.
‘봄날은 간다’를 불렀는데, 목이 메어 그만 울음이 되어버렸다.
좃이 피면 같이 웃고, 좃이 지면 같이 우는 대목에 못 미쳐,
용성이 모자 앞에서 쪽팔리게 울어버린 것이다.
놀란 두 사람이 무슨 사연인지 의아해 슬픈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황춘화씨와 정용성씨 모자는 동자동에 들어 온지가 삼십년이 넘었다.
동대문에서 양동으로, 양동에서 동자동으로, 마지막 쫓겨 온 곳이 동자동이었다.
황춘화씨가 기초연금 70만원 받아 23만원 방세 제하고 사니 보나마나 뻔하다.
거기다 두 사람이 매일 마셔대는 술값도 장난 아니다.


얼마 전에는 술이 취해 넘어진 용성이가 허리를 다쳤단다.
술만 마시면 아프지 않은데, 술이 깨면 아프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기회에 진단서를 끊어 제출하면 자기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오늘 진단서를 끊어 왔다며 보여주었다.





정확하게 기억되지 않으나, 병명이 탈골이 아니라  알콜 중독에 의한 의존증이라 쓴 것 같았다.
수급자 자격에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일 할 수 없는 환자는 분명해 수급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아니라면 모든 걸 적게 주고 피해가는 잘 못된 법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했다.

황춘화씨도 몇 일 전 이웃집 개에 팔을 물려 붕대를 감고 있었다.
기사가 준 돈으로 첫 병원비는 치렀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걱정했다.
추측컨대, 그 기사라는 사람은 기자를 잘 못 알아들은 사진가 김원씨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몇 달 전 사진 찍지 말라며 화 낸 것을 사과했다.
난 잊은 지 오래되었으나, 그는 여지 것 잊지 않고 있었다.
'맞은 놈은 다리 펴고 자지만, 때린 놈은 오무려 잔다'는 옛말이 생각나 혼자 키득거렸다.

사는 꼴이 기가막혀 제일 필요한 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쌀이라고 했다.
난 밥을 해먹지 않아, 내방에 있는 쌀 포대를 가져가라 했더니,
두 모자가 차례대로 내 손을 부여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착한 양을 굽어 살펴 인도하라”는 기도였다. 아~ 니미 기분 이상하데...





이미 자정이 지나 일어났더니, 황춘화씨도 따라 일어났다.

계단이 위험해 술 취해 떨어질까 걱정된다며 따라나선 것이다.
‘아지매 걱정이나 하이소. 다시 올라 갈라 카마 힘든께 내려 오지마소“ 해도
기어이 따라 내려와 배웅했다. 법 없어도 살, 참 착한 모자였다.

어쩌면, 말년까지 마흔여섯이나 된 아들녀석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자식 놈이 그때까지 장가 안가고 밤낮으로 엄마 술친구 되어 줄 놈이 있겠는가?
다들 혼자 사는 쪽방에서, 엄마와 살 부대끼며 사는 맛이 부러울 것이다.

헤어지며 잡는 손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4월 25일은 동자동 쪽방주민을 위한 2017년 상반기 결핵검진이 있은 날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사무실 앞에서 실시한 결핵검진은 시간을 정하지 않고 하루 종일 검진해, 편한 시간에 받을 수 있었다.

‘대한결핵협회’에서 나온 검사원 외에도 ‘서울역쪽방상담소’ 정수현 소장과 전 직원들이 나와 검진을 도왔다.

나도 검진을 받아야 했다. 여지 것 결핵검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검진을 모르는 게 약이라며 기피해 왔으나,

이젠 검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식생활 등 공동체 생활을 하는 입장이라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액스레이 촬영과 객담 검사를 준비하니, 일을 돕던 김만귀, 문규도씨가 라면10개와 우유 한 팩을 선물로 주었다.

결핵검진 봉사현장을 주민들에게 알리려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뒤에서 사진 찍지 말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뒤늦게 나오던 심경섭씨였는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하는 회의나 행사는 항상 취재에 제동을 걸어 왔던 사람이다.

상황 파악도 않은채, 무턱대고 초상권침해를 내 세운다.

찍어도 친분 있는 분들 위주로 촬영하고, 당사자가 싫어하면 그 자리에서 삭제해 자기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공공의 행사는 취재하여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무슨 권한으로 주민들의 알 권리인 취재를 방해하는지, 소장이 눈치를 주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전형적인 완장부대의 월권행위였다.


쪽방상담소의 특별한 직책도 없을텐데, 먹고 살기위해 하는 짓일까?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통에 파생된 완장부대는 전형적인 적폐청산 대상이다.

권력에 빌붙어 국민들을 괴롭혀 온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현실이 서글펐다.

자기가 행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도 모르는 사람과 구차하게 시비하기 싫어 물러났다.

다음에 만나 조용히 설득해 볼 작정이지만,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주민대표선출이 있는 오는 4일의 주민자치회의에는 녹음기도 휴대할 작정이다.

주민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해 얼굴 노출되기를 싫어하는 분은 피해서 촬영할 것이다.

더 이상 참석하지 못하는 다수 주민들의 알 권리를 방해하지마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4일 동자동 골목의 가게 앞에서 김용태씨가 술 판을 벌이고 있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막걸리 한 잔 권하며, 안주로 깎아 놓은 참외조각을 나누기도 했다.
지나가는 나에게도 한 잔하라며 눈짓을 했다.


그는 오늘 갖고 나온 팔 만원을 노숙자들에게 다 풀었다고 한다.
여러 노숙인 에게 나누어주었으니, 대개 술값으로 잘 썼을 것이다.
김용태씨는 노숙자들에게 구세주다.
돈 팔 만원으로 어디에서 그런 기쁨을 나눌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의 행색 역시 노숙인과 다를 바 없는데, 돈은 어디서 나는지 물어보았다.
오래전 은행에서 퇴직하며 받은 퇴직금으로 쓰고 있는데, 그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자신도 쪽방 달세를 내지 못해 노숙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손이 부어있는 것으로 보아 건강에도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여의도에서 열렸던 기초연금 기자회견장 다녀오느라, 힘들어 그냥 헤어졌으나,
다음에 만나면 그의 삶의 철학이나, 지난 이야기를 물어 볼 작정이다.

스스로 선택한 동자동의 삶이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이런 분을 만나면 힘이 솟는다.
모두가 극락을 향한, 저승의 문턱을 두드리는 사람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 촌에 사시던 김광식(76세)씨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지난 17일 동자동 ‘식도락’에 차린 빈소에는 많은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의 죽음이 남달리 안타까운 것은 가족 찾느라 한 달 동안이나 영안실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 처음 병원으로 모시고 갔던 ‘동자동사랑방’조합 우건일씨가

시신을 인수해 장례를 치루 게 된 것이다.

가족이 나타나더라도 대부분 시신 포기각서를 써 동자동 사랑방에서 장례를 치루기는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던 영령이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돌아가신 김광식씨는 빚 보증을 잘 못 서서 가산을 날리고 가족까지 잃었다고 한다.
재산 잃고, 가족 잃고, 건강까지 잃어 고생하시다 결국은 목숨까지 잃게 된 것이다.
동자동에 거주하는 대개의 주민들 사정이 이와 별 다를 바 없다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픈 것이다.

장례를 치루는 중에도 또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자동사랑방에서 장례를 치루면, 주민 모두가 상주가 될 수밖에 없으나,
이 날의 대표상주는 한정민씨가 맡았다.

빈소에는 우건일 조합장을 비롯하여 김호태, 김정길, 김정호, 박정아, 선동수,

강병국, 이원식, 유한수, 차재설, 조두선씨 등 많은 사랑방 식구들이 조문했다.

동자동 보안관이신 이창희 경위도 조문하여 저승길 가는 노자 돈을 보태기도 했다.

그리고 이난순씨를 비롯하여 김규수, 구도원씨가 음식준비하고 돕느라 고생 많으셨다.

그 이틀 날 승화원에서 화장하여 꽃동네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길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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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하루 앞둔 지난 토요일 정오 무렵,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서 '부활절 연합감사예배 및 짜장면 나눔 행사'가 열렸다.

‘전국노인, 노숙인 사랑연합회’에서 주최한 이 날 부활절 감사예배는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라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동내 주민들 보다 대개 처음 보는 외지 분들이 많았는데,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많았다,

‘제사보다 젯밥’이라 듯이 다들 예배 후에 주는 짜장면을 기다리는 듯 했다.

짜장면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없지만, 노숙인들에게는 별미 중 별미일 것이다.

봄바람에 실리는 연주가 분위기를 띄어주었지만, 차례대로 이어지는 설교에 참석자들의 표정에 지루감이 묻어났다.

예배가 끝나고 짜장면 급식이 시작되자 질서정연하게 짜장면을 받아먹었다.

두 줄도 채 받지 않았는데, 처음 받은 사람은 다 먹어버렸다.

너무 맛있어 단숨에 먹었는지, 량이 적었는지는 모르지만 다들 잘 먹었다.

부활절 계란을 선물로 나누어주기도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울긋불긋 봄 단장한 남산을 여러 차례 찾은 적이 있으나, 동자동 가족들과 어울려 나서기는 처음이었다.

지척에 멋들어진 남산이 있다는 걸 알기야하지만,

“꽃구경도 마음이 편해야 된다.” 듯이 잘 가지지 않는 것이 쪽방 촌사람들이다.

지난 12일 ‘동자동사랑방’에서 꽃놀이 간다는 사발통문이 왔다.

갑작스런 소식에 일정을 바꾸어야했지만, 흐드러지게 핀 벚꽃 보며 밝게 웃을 이웃을 보고 싶었다.

마치 소풍가는 어린 애처럼 설쳐나갔더니, 사랑방 앞에는 여럿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랑방 보물 박정아, 허미라님의 미소 따라 김호태, 김정호, 김영진, 김창현, 유한수, 김규수, 구도원씨 등 열 명이 나섰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봄 소풍이 될지도 모른다는 방정을 떨어가며,

산 오르기를 10여 분만에 남산의 진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자동에서 손쉽게 나설 수 있는 최고의 산책코스이지만, 건강관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아 그런지 한 번도 나서지를 못했다.

벚꽃 사이로 진달래, 개나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색의 조화는 요염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의 감흥이야 늙은이나 젊은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화창한 봄날 겨울털 모자 쓰고나온 김영진씨의 말없는 표정에서도 슬며시 드러나고 있었다.

허미라씨가 챙겨온 박상과자도 먹고, 기념사진도 찍어가며, 실없는 농담들을 꽃바람에 날렸다.

꽃에 취해 길을 잃어버린 유한수씨 찾느라 잠시 헤매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인원검열이 시작되었다.

자기를 빠트리는 돼지 세끼 세듯...
남산 길에 밝은 김호태씨의 안내로 산을 내려오니, ‘한국의 집’이 있는 충무로에 닿았다.

즐거운 봄 소풍을 끝내고 돌아 온 동자동 골목길에는 이미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김원호씨도 있었고, 함께 다녀 온 김정호씨와 끼어 술잔을 기울였는데,
꽃놀이는 남산에서 하고, 술 놀이는 동자동에서 했던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봄은 부자 동네만 오는게 아니라 가난한 쪽방 촌에도 온다.
벚꽃이 흐드러진 동자동 공원에 봄바람이 살랑대니,
심란한 남정네들 삼삼오오 모여든다.

강호는 사과로 정염을 삭이고, 인봉이는 소주로 달랜다.
‘인봉이 상판대기는 왜 깨졌냐?’ 물었더니.
계단이 넘어져 얼굴을 때렸단다.

“야! 이놈에 봄바람아, 이 홀애비들은 어쩌라고 그리도 불어대냐?”
못 먹어 몸은 상했지만, 기어오르는 춘정마저 없을소냐?
목련은 쩍 벌어져 유혹하고, 발갛게 달군 복사꽃에 몸 둘 바 모르겠다.
애간장 그만 녹이고 술이나 한 잔다오.“

사진,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주민자치회의가 지난 4월7일 오후5시, ‘동자희망나눔센터’ 2층에서 열렸다.
이날은 쪽방주민자치회의 위원장을 선출하는 자리라, 정선에서 하던 일 중단하고 상경했다.
누가 맡느냐에 따라 주민들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보수 봉사 직이라 나서는 분들이 많지않다.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고는 김병택씨 한 분이었는데,
그 분은 연세가 많아 적극적인 봉사가 어렵지만, 상담소 편을들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민자치회의를 끌어 갈 사람은 항상 주민 편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김장수씨가 김병택씨 선임에 제동을 걸었다.
“추천된 분이 좋은지 아닌지를 묻는 무기명 투표를 하자”는 것이었다.
찬성이 많으면 넘어가지만, 반대가 많으면 다시 추천받아 선출 하자고 했다.
그리고는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젊은 김만기씨를 추천한다고도 말했다.

맞는 말이다. 회의장에 불과25명밖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다들 주민자치에 관심가진 분들이라, 그 들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
이배식씨는 ‘권위나 경륜 있는 김병택씨가 되어야 한다’했고,
김장수씨는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서로 주민들의 동의를 구했다.

주민 투표를 실시한 결과 김병택씨를 찬성하는 표는 9표, 반대 표가 14표로 김병택씨가 신임을 얻지 못했다.

무효표도 두 장 나왔는데, 동그라미를 쳤다가 다시 액스 표를 쓴 것도 있고, 이름을 적은 표도 나왔다.

그런데 이해 되지 않는 것은 투표에서 떨어 진 김병택씨가 화를 버럭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 것이다.

“신청자가 한 사람 뿐이면 그대로 해야지 왜 투표를 하냐?”는 것이다. 이게 무슨 공채하는 자리인가?

주민들의 대표를 뽑는데, 어찌 주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있겠나?

그리고 대가 없는 봉사 직에 목맬 일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열심히 하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 어른으로서 도리다.
쪽방주민자치회의 위원장 투표는 다음 달 자치회의로 미루어졌다.


상담소 직원은 필요 없는 물건과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물물교환장터를 연다는 공지를 했다.

사실, 필요 없는 물품들이 지원되어 비좁은 방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떤 물품이 필요하냐고도 물었다. 바퀴벌레약, 모기장, 메트 등 몇몇 요구가 있었지만,

그 몇 사람 요구로 천여 명이나 되는 전체주민의 뜻을 수용할 수 있겠나?

진정으로 주민들에게 도움주고 싶으면 직원들이 회람을 돌려 몇 가지 정도의 물품을 신청 받아 합리적으로 택하던지,

아니면  예산에 맞는 상품권을 지급하여 주민들이 필요한 것을 구입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매일 아침 우유 한 팩 배달해 드리는 것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들 몸이 불편하여 잘 나오지를 못하니 먹는 것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주민들의 실생활에 다가가는 실질적인 행정을 펼쳐주기 바란다.


주민들에게 물품을 지급할 때도 시간을 정해 줄 세우지 말라고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시정되지 않고 있다.

몸이 불편하여 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많은데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주민들을 타자화하여 자립심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소량으로 보내오는 물품 때문이라지만, 물품내용에 불문하고 주민번호 대로 차례대로 돌아가며 지급하면 된다.

줄을 세우게 되면 받는 사람은 계속 받지만, 몸이 불편하여 게시물을 보지 못한 분들은 번번히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물품을 어디에서 얼마만큼 지원되었는지도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보내는 분들의 고마운 뜻을 알아야 할 주민의 권리가 무시되기도 하지만, 그런데서 비리가 생기는 것이다.


모든 일을 주민측 입장보다 상담소 편한 대로 진행하고 있는데, 도대체 상담소 직원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 날은 ‘서울역쪽방상담소’소장이라는 정수현씨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내가 동자동에 온지 육 개월이 넘도록 '서울역쪽방상담소'나 자치회의장을 여러차레 찾아 다녔지만 처음 보았다.

단상에 나와 그동안 몸이 불편했다고 한다.


비참하게 생활하다 홀로 비명에 돌아가시는 주민이 많건만, 그들은 아예 손놓고 있다.

손 놓은게 아니라 주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니, 알리가 없다.
언제까지 주민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이 따위 탁상행정을 계속할 것인가?
이 또한 우리사회에서 청산해야 할 적폐인 것을 명심하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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