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주변을 지나치다 보면, 동자동을 거점으로 떠도는 노숙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대개 지하철 출구의 셔터가 닫히는 후미진 곳에서 자는데, 차거운 바닥은 박스에 의지하지만,

입구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은 막을 수가 없다. 어떤이는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들에게 온 몸이 쏙 들어갈 수 있는 침낭이라도 하나씩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다.

더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적극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동자동 주변과 서울역 지하철 11번 출구를 무대로 오가는 노숙자들을 자주 만나는데,

그들의 바램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동자동 쪽방 촌에 입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일할 수 있다는, 연령제한 등의 갖가지 사정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문제는 일용직 자리도 얻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무료급식소에서 밥은 얻어먹을 수 있으나,

밥만으로 그들의 외로움과 고생스러움을 못견디어, 구걸하여 술을 마시게 된다.






지난 일요일 늦은 시간, 지하철 타러 가다, 잘 아는 노숙자들을 만났다.
세 사람이 술값 마련을 위해 짤짤이를 하고 있기에 나도 끼어들었다.

막걸리 한 병 값이라도 보태주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잃어 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동전을 나누어주려니까, 한 잔이라도 마시고 가라며 손목을 잡는다.

사실 술도 술이지만, 그들은 정에 더 굶주려 있다.









2012년에 시행한 전국 노숙인 조사 통계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의 수는 13,262명으로

이 중에서 거리 노숙을 하는 사람은 1,811명이고 시설 거주자는 11,451명이라고 한다.

사실상, 노숙인의 규모를 단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통계 자체를 믿을 수 없는 것은 고시원에서 지내는 사람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일용직이나 오 갈 때 없는 사람들이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도 바로 노숙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대상인 것이다.

대개 노숙인이 되는 과정은 질병이나 사고에 따른 노동력 상실, 사업 실패에 따른 실업,

가출이나 이혼 같은 가정문제 등으로, 대개 경제적인 문제다.

그러나 여성이 노숙인이 되는 과정은 일자리를 잃은 남성 노숙인과는 다르다.

실업 상태의 남성은 사회 경제적 안전망의 부재가 중심이라면 여성의 경우에는 가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정 폭력 등 가부장적 가족 구조 속에서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우에는 양육이라는 난제도 따른다.











대개의 시민들은 노숙의 원인을 게으름과 알코올 중독, 정신건강상의 문제 등

일하기 싫은 나태함으로 노숙자가 되었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이러한 인식들이 노숙인 사회복지현장에서 걸림돌로 작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노숙인 쉼터 이전이 지역주민의 반대로 무산된다거나, 항의성 민원으로 인해 쉼터가 폐쇄되는 경우다.

하지만 노숙인 역시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같이 살아야 할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인 것이다.

특히 이들이 취업의 접근성이 용이한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거리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것은 개인 공간 확보가 제일 우선이었고,

그 다음이 일자리 확보와 건강문제 순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적합한 취업 연계, 직업 교육, 의료서비스만 제공된다면

상당수가 거리 노숙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사회의 가장 빈곤층인 노숙자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그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입안해야 되고, 지자체에서도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한 해결책이 마련될 때까지라도 우리 모두가 그들을 껴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우선, 집에 사용하지 않는 침낭은 없는지, 구석구석 살펴봅시다.

있으면 좀 보내 주세요. 나이 많은 노숙자부터 차례대로 전해 주겠습니다.

그러나 새 침낭은 보내지 마세요. 신품은 남대문시장에 팔아 술을 마십니다.


보낼 주소: 서울 용산구 후암로 57길 3-14 (동자동) 1동403호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9일 오후2시 무렵의 동자동 놀이터엔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처음보는 젊은이가 나타나 동자동 어깨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한 방에 날아갈 것 같았는데, 계속 깐죽댔다.
욕설을 해대며 “한 판 떠 자”는 것이다,
겉 모양보고 싸우는 건 아니지만, 상대가 만만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 사라졌지만, 도대체 무슨 심보였을까?















오후 여섯시에는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에서 오픈한 후원주점을 찾았다.
남영역 건너편 슘 호프에서 열린 후원주점에는 많은 분들이 몰려들었다.
비급여 의료비나 의료급여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동자동주민들을 위한 행사였다.

의료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에는 우건일 조합장과 박정아씨를 비롯한
많은 주민들이 종업원으로 나서고 있었는데, 술집 분위기가 좋았다.
시나리오작가 최근모씨, 사회복지사 김성규씨와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는데,
반가운 사람 한 분이 나타났다. 사진가 김 원씨였다.

뒤늦게, 오래 전부터 동자동을 찍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어, 한 번 만나 보려던 참이었다.
빈민을 향한 작업에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더 이상 머물 시간이 없었다.
서로의 핸드폰에 번호를 입력하고 헤어졌다.

오후7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메라 셋팅이 잘 못되어, 그 날 찍은 사진들을 모두 망쳐버렸다.

늙어면 죽어야지...

사진,글 / 조문호


















지난 15일 오후3시부터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힘합창단’이 베푼, 쪽방 주민들과 함께한 ‘사랑 믿음 행복의 노래’ 음악회가 열린 것이다.

노수영씨의 지휘와 박수연씨 반주로 진행된 합창은 “온 땅아 주를 경배하라”, “주와 함께 걸어가라” 등

여러 곡을 불렀지만, 주민들이 좋아한 곡은 단 한 곡뿐이었다. 바로 “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사실, 많은 주민들이 모인 것도 참석자에게 나누어 주기로 한 선물 때문이지만,

음악회를 통한 문화의 향기를 누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음악회가 끝난 후에는 선물을 받기 위한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선물봉투에는 부탄가스, 고추장, 커피믹스, 김, 물티슈, 떡 등이 골고루 담겨 있었다.

선물을 받은 싱글벙글한 표정들을 보니, 그들에겐 노래보다 선물이 더 행복을 주는 것 같더라.
행복한 노래잔치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사랑의 빵 나눔 행사를 여는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에서 지난 15일 동자동 쪽방 촌을 찾았다.

빵을 기다리던 주민들의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 평소 방문을 걸어놓고 출입을 삼가 하는 분들도 대부분 나왔다.

아예 깔고 앉을 것 까지 준비해 순번을 지키고 앉았는데, 나처럼 사진 찍으려 어슬렁거리다 보면 국물도 없다.

사진 찍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매번 모자라는 빵을 나까지 축낼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난 거지다.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온 후로 한 번도 밥을 해 먹지 않고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제일 필요한 게 빵이더라. 밥을 얻으면 당장 먹어치워야 하지만, 빵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고,

반찬이 필요 없으니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빵 주는 날이면, 다들 한 시간 전에 나와 저렇게 줄지어 기다리는 것이다.

자리 비우면 그만이고, 새치기도 통하지 않는다. 질서 하나는 끝내준다.

그런데, 빵 받는 차례가 적힌 인쇄물 한 장 씩을 나누어주었는데, 거기엔 그 날 부를 찬송가 악보가 인쇄되어 있었다.

선교를 염두에 둔 행사인 건 틀림없지만, 꼭 그렇게 표를 내야 하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듯이, 조용히 자선을 베풀면 더 빛날 걸 왜 모를까.

찬송가 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졌다.
모두들 입은 흥얼거렸지만, 빵 생각뿐이었다.

“주여! 이 가난한 빈민들을 어찌해야 하나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4일은 ‘동자동 사랑방’에 갔다.
나도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에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다.
가입비 천원과 이 달 출자금 만원을 냈더니, 통장 하나 만들어 주었다.
신용불량자라 통장도 없는데, 입출금이 자유롭진 않지만, 기분 좋더라.






서울 중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동자동사랑방’은 쪽방 촌 빈민들의 자립을 돕는 공동체다. 

단발성에 그치거나 명분 내세우기에 급급한 구호의 손길보다, 진정으로 주민들을 도우며 함께 어울리는 곳이다.

조그만 사무실이지만, 주민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한다,

비좁은 쪽방에 선반을 만들어 주거나, 물품의 공동구매로 비용을 절감시키는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사랑방 식도락’에서는 천 원에 식사를 제공하고, 무료로 책을 빌려주기도 한다.






5년 전, 빈민들이 조금씩 아낀 돈을 출자해 공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의료비와 주거비 등 긴급한 생활자금이 필요한 조합원들에게 빌려주는 소액대출을 비롯해,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공동사업과 다양한 마을공동체 행사를 벌여, 벼랑에 선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동물원에 먹이 주듯, 밥과 빵이나 던져주는 봉사단체, 조그만 돈으로 안주하게 하는 정부의 빈민정책에 비해서는 훨씬 모범적이다.






그 날은 녹색당 홍보팀장인 한진희씨를 비롯한 여러 명이 ‘동자동사랑방’을 방문하여

우건일 조합장으로부터 쪽방촌의 현안과 문제점을 듣고 있었다.

방문한 젊은이들이야 빈민들의 실태에 당혹스러웠을지 모르지만,

정치하는 인간들은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걱정스러웠다.











아무튼 그들과 함께 ‘사랑방 식도락’에서 천 원짜리 식사를 했는데,

소 뼈 목욕한 국물이긴 하지만, 그 날의 메뉴는 곰탕이었다.

젊은이들 입맛에는 맞지 않을텐데,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더라.






그런데, 빈민들이 사는 촌방 촌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외국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웃의 한 분은 119요원들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도 보았다.

부축하여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보아, 겉 모양은 괜찮으나, 속병이 심각한 것 같더라.

부디 별 탈 없이, 다시 돌아 오길 빌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돌았는데,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쓰러져 자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남의 일 같지 않더라. 나도 요즘 밥은 먹기 싫고, 술 생각이 간절한 때가 많으니까...

다행스럽지만, 아무리 술 생각이 나도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다짐은 한 번도 깨트린 적 없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쪽방촌 사람이나 노숙자들의 술자리가 곳곳에 있지만,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그들을 만나지는 않는다.

술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내가 술을 끌고 다니기 위한 나의 철칙이 잘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가난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슬픔이 술을 찾게하고, 외로움에 또 한 잔한다.

그들의 고민을 잊게하고 위안해 주는 것은 술 밖에 없다.


세상이 알콜 중독자를 양산 하는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추교부(52)



동네를 한 바퀴 휘~ 도는 것이 하루의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어제는 공원에서 큰 길로 내려가니, 길가 한 쪽에 추교부, 김영훈, 김태식이가 술자리를 만들어 놓았더라.
한 잔 얻어먹으려 끼어 앉았으나, 술이 떨어졌다.
얼른 가서 막걸리 두 병을 사왔더니, 모두 입이 벌어졌다.

“형님이 엿 같은 내 기분을 알아주네!”라며 추교부가 더 좋아했다.
이 친구는 일찍이 광운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그런대로 잘 살았다.
그러나 직장에서 잘려나며 인생막장에 들어 선 것이다.
요즘은 쪽방 얻을 형편도 되지 않아, 친구 쪽방에 끼어 자거나 아무데서나 잔다.

지난밤에는 교회에서 잤는데, 일어나보니 신발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먼저 일어 난 놈이 바꿔 신고 간 모양인데, 헌 운동화 한 컬레만 달랑 남았더란다.
“모처럼 괜찮은 신발 하나 장만했는데, 복도 지지리도 없다”며 투덜댔다.
날씨도 쌀쌀해 지는데다, 돌아다니며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신이라도 편해야 하는데,
큼직한 운동화를 질질 끌고 다닐 일이 보통 일은 아니듯 싶다.

하기야! 남의 신발 바꾸어 신고 간 놈의 사정도 보나마나다.

다들 없이 사는 죄 뿐인데, 교회서 신발을 잃어버렸다기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릴 적 동네 꼬마들이 찬송가 곡에다 가사를 바꿔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예수 사랑 할라고 예배당에 갔더니, 눈 감아라 해놓고 신발 훔쳐가더라.
내 신 내놔~ 내 신내놔~”

사진, 글 / 조문호

























힘없는 자들이여!
갈 곳 없고 배고픈 자들이여!
우리 다 같이 일어서자.


이번 토요일 오후1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모이자....
그동안 맺힌 서러움 거리에 나와 풀자.
그리고, 좋은 세상으로 바꾸자.







코구멍만한 쪽방에도 손님이 찾아온다.
이주용교수와 최건모, 김시우씨는 프린트기 때문에 도와주려 왔었지만,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조성기, 최영문, 정중근, 조수빈, 김보섭씨가 다녀갔다.







지난 9일에는 무의도를 예술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전 재산을 꼴아 바친 정중근씨와

인천의 소리꾼 조수빈씨가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단, 만나기 쉬운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성을 고려해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서울역 그릴이 좋을 것 같았다.

쇠고기 전골인지 뭔지 음식은 별로였지만, 식당 분위기는 좋았다.

막걸리도 조그만 유리병에 담겨 나왔는데, 공기 잔에 한 잔씩 마시니 없어졌다.

내가 밥값을 내진 않았지만, 계산은 만만찮을 것이다.






쪽방 지척에 이토록 근사한 곳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날은 번잡한 서울역 시설 곳곳을 둘러보느라 눈병 날 번했으나,

사람들이 몰리는 서울역 변두리에는 어김없이 노숙자들이 있었다.





두 분을 쪽방으로 모셔와 겨우 믹스커피 한 잔 대접했다.

두 분 모두 공연이나 축제촬영을 부탁하러 온 고객인데, 이 따위로 처신해 사업이 제대로 돌아갈지 모르겠다.





그 이튿날인 10일엔 사진가 김보섭씨가 찾아왔다.
충무로 ‘브레송’에서 최광호씨 전시 보러 온 김에 들린다고 했다. 전시장에서 먹다 남은 와인을 가져왔는데, 맛이 꽤 괜찮더라.

김보섭씨는 아직 양동 사창가가 남아 있는지 궁금해 하여 양동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 본 것이다.

빌딩 숲 속에 끼어 있는 낡은 골목 곳곳에, 이불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한숨이 널려있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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