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7일은 동자동 쪽방 촌에 구제물품을 나누어주는 날이다.
지난 주민회의에서 1인용 전기장판이나 이불 등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물품들을 신청했는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는 등록된 주민 600여명을 대상으로 가구당 차렵이불 한 채씩을 나누어 준 것이다.

아침 겸 늦은 점심을 먹고, 한 시간이나 일찍 현장에 나갔는데도 이불 한 채씩을 둘러메고 싱글벙글 돌아오고 있었다.

상담소 앞 도로변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백미터 남짓 줄지어 서 있었다. 심지어 이불 받으려 일 나가지 않은 노무자도 있었다.

올 겨울을 견뎌내려면, 두툼한 이불이 필요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좁은 쪽방에 이불 한 채가 더 들어가면 움직이기조차 어려워진다.

헌 이불과 새 이불을 바꾸면 되겠으나,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 긴히 쓰던 물품을 버린다는 것이 말처럼 싶지 않다.

사실상 쪽방 사는 사람보다 이불이 필요한 사람은 노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불을 주지도 않지만, 줘도 보관할 곳이 없다.


내가 잘 아는 노숙자 이성동씨에게 내 이불을 주려 했더니 난색을 표했다. “형, 그 큰 이불을 들고 어떻게 밥 얻어먹어요.”

맞는 말이다. 노숙자들에게는 개인사물함이 필요하다. 공원 주변에 이불을 넣을 수 있는 케비넷이라도 마련해 둔다면 요긴하게 사용할 텐데,

다들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탁상 행정의 문제점은 빈민들 생활을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한다는데 있다.


둘 곳이 없어 비좁게 자거나, 멀쩡한 이불을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은 낭비다. 정치나 행정이 너무 이벤트성 행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실제 빈민들이 필요한 물품과 교환할 수 있는 일정의 상품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부터 고려해 주기 바란다.
































이 날은 온 마을이 이불보따리로 들썩였지만, 이불보다 술에 시름 푸는 친구들도 있었다.
정재헌, 김장수, 이준기, 이남기, 강재원, 조찬익, 이상종씨가 공원 옆자리에 모여, 열 받는 정치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들 박근혜를 향한 욕설을 술안주로 삼고 있었으나, 순진한 이준기씨는 불상한 대통령 욕하지 말라며 나무라기도 했다.

평소에는 보수성향의 이준기씨 말을 모른 척 듣고 넘겼으나, 이 날은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나야 페북에서 보아 대충 알지만, 그 친구들은 티비를 껴안고 살아서 인지 나보다 더 많이 알았다.


괜히 열 받아 술과 안주까지 사버렸다. 개털 주제에 중국집에 탕수육 작은 것 하나를 시켰는데, 갑자기 길바닥 술판이 그득해 보였다.

만 칠 천원에 이렇게 행복감을 느끼긴 처음이었다. 맨 날 깡 술로 버티던 사람들이 모처럼 왕건이 술안주를 만났으나,

다들 많이 먹지 못해 여러 사람이 먹어도 남았다. 어느 누가 싸가려 하니, 조찬익씨가 한마디 던졌다.

“욕심내지마! 여기서는 술안주지만, 가져가면 쓰레기야” 쪽방사람들은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터득하고 있었다.

이불 얻어 기분 좋게 술을 마셨으나, 오후7시까지 인사동 ‘이모집’으로 넘어가야 했다.
‘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 이사회를 5년 만에 연다는데, 명색이 사단법인의 이사회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술김에 가서 확 뒤집어 버릴 작정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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