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은 낮술에 취한다.
일찍부터 마시기 시작해 초저녁만 되면 모두 쪽방으로 들어가는데,
대신 직장인들이 밤거리를 메운다.
나 역시 낮에만 마셨으면 좋겠으나, 밤까지 끌려 다닐 때가 많다.
밤술까지 마시는 날은 온 종일 더러누워 곤욕을 치루지만, 조절이 잘 안 된다.
이 날도 오후7시경, 초상집에 들릴 약속으로 피하기가 어려웠다.
지난 20일은 공원 귀퉁이에 자리 잡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렸다.
정재헌씨와 마시다 안쪽으로 옮겼더니,
추교부씨를 비롯해 김진호, 신영진, 이상용씨가 술자리를 깔았더라.
뒤늦게, 처음 보는 김상권씨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노숙자들의 인사법은 특이했다.
명함 건네듯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안면을 텄다. 생년월일 따라 형이 되고 아우가 되었다.
쉽게 만나고 기약 없이 헤어지는 방랑자의 삶이지만, 인정은 살아 있었다.
그 자리엔 쪽방 얻을 처지가 못 되는 친구가 둘이나 있어, 막걸리 두 병 사주고 일어섰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있었으나, 다들 일할 생각을 안 한다.
조그만 수입만 생겨도 수급자에서 잘려나니 안 한다. 아니 못하게 한다.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막는 것이다.
그 날은 또 다른 술자리를 찾았다.
처음 만난 김새길, 한세창씨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씹었다.
동자동 본거지에서는 좀 떨어졌으나, 그들이 사는 모습도 똑 같았다.
돌아오니, 이기영, 강완우, 전 설씨가 어울려 있었는데, 갑자기 구급차 사이렌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옆 건물에 사는 중늙은이가 병원에 실려 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천국 갈지도 모른다. 그의 목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거든...
쪽방촌이 저승 가는 길목이던가?
그걸 보니, 갑자기 전인경씨 모친의 부음이 생각났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까지 가야하는데, 술이 취해 걱정되었다.
술김에 택시를 잡아탔으나, 퇴근시간이라 차가 밀려 가슴 조렸다.
다행히 가진 돈을 초과하지 않아, 중간에 내리는 일은 없었다.
이처럼, 사는 게 곡예 하듯, 늘 아슬아슬하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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