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양승우 마오 부부와 고정남씨가 내가 사는 동자동 쪽방을 방문했다.

시간에 쫓겼기도 했지만, 방이 너무 넓어 네 사람이 다 들어가지도 못한 채, 문 열어놓고 방만 쳐다보아야 했다.

차 한 잔도 대접하지 못하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4층 꼭대기까지 찾아 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공교롭게도 그들과 함께 오겠다는 고정남씨의 전화를 받기 전에 양승우 부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제 저녁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 양승우 마우 부부의 행복한 사진일기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를 보며

사랑놀이에 너무 감명 받았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소소한 아름다움에서 최고의 가치를 찾아냈더라.

먼 곳에 있는 허구의 예술을 쫓는 많은 사진 인들에게 이것이 사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엊저녁엔 양승우 마오 부부가 보여 준 사랑이란 단어를 오랫동안 생각하다 잠들었다.

어느 한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그 깊고 넓고 오묘함에 대하여...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이 사진전은 꼭 한 번 볼만하다.
사진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에 대해 다시 돌아다 볼 절호의 기회다.


















벌써 대통령 된 듯 행세하는, 반기문의 갑 질에 울화가 치민다.
나라 망신시키고 왔으면, 자중해야 할 사람의 짓거리 치고는 가관이다.
공항에서 기자회견으로 주접떨었으면 됐지, 서울역은 또 왜 갔나?
추위를 피해 역사에 머무는 노숙인을 밖으로 내 쫓다니...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소외받은 빈민부터 껴안아야 할 것 아닌가?






지난 13일 늦은 오후, 허기를 메우러 밥집으로 내려갔더니,
구석에는 김왕중씨가, 입구에는 김용만, 원용희씨가 앉아 소주 한 잔 하고 있었다.
엊저녁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쫓아낸 반기문을 이구동성으로 욕하고 있었다.
어제도, 이곳에서 밥 먹다 공항에서 기자회견하는 그의 말에 토할 뻔 했는데,
또 다시 밥 맛 떨어질까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주인장에게 이 식당은 이름도 없냐고 물었더니, ‘광주식당’이란다.
오래 전 바람에 간판이 날아 간 후로 그냥 두었다고 한다.
늘 혼자 와서 반주로 소주 한 병 비우는 김왕중씨는 눈 먼 장님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훤히 꿰고 있었다.
술이 조금 부족한 듯 했으나, 한사코 사양했다. 스스로 정한 주량을 지켰다.







오늘 찍은 사진들이 궁금하여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문세경씨란 분으로 부터 이메일을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시간 있으면 소주 한 잔 대접하겠다기에, 곧 바로 만났다.
서로 문자로만 연락했기에 문세경씨의 연령 층은 물론,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몰랐다.
단지 ‘동자동 사랑방’ 카페에서 내 글과 사진을 보아 알게되었다는 것뿐이다.





약속한 서울역 지하철 11번 출구에 나타난 분은 어여쁜 미녀였다.
좀 서먹했지만, 단골집인 ‘광주집’으로 안내했는데, 주인 아주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2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광주집이 문 닫는 시간이라 옆에 있는 중국집으로 옮겨야 했다.
짬뽕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시켰는데, 둘 다 귀가 신통찮은데다

내 말조차 어눌하니,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마치 벙어리처럼, 궁금한 것은 메모지에 적어 물어 보기까지 했다.






불편한 질문보다 묻는 말에나 응했는데, 별 씨잘데 없는 이야기까지 다 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입에 짝짝 달라붙었으나, 한 병으로 끝내야 했다.
아쉬웠지만,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질문지를 만들 생각까지 했다.






문 걸어 닫고 외부와 단절한 주민들도 만나야 하고,
‘광화문 미술행동’팀을 도와 구태를 청산하는데 힘을 보태야 하니,
별 하는 일도 없이 마음만  늘 바쁘다.
하루속히 박근혜가 물러나, 동자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이시여! 제발 이제 구악을 거두어주소서‘

사진, 글 / 조문호







쪽방 촌에 살다보니 가끔은 ‘레이더스’가 부른 ‘인디언 보호구역’이 떠오른다.
쪽방 촌이 마치 빈민 보호구역 같다는 생각에서다.
보호한다는 긍정적인 뜻 이면에는 길들인다는 측면도 깔려있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사람을 사육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빈민들은 보호보다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급하다.
수입만 생기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잘리니,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막은 것이다.
그러니, 다들 일하지 않고, 주는 것만 받아 간신히 연명하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하청주는 ‘쪽방상담소’란 사무실이 서울에 다섯 군데다.
동자동이 소속한 ‘서울역쪽방촌 상담소’를 비롯하여 남대문, 동대문, 종로, 영등포에 있다.
모두 서울 중심지에 몰려있는 것도 특징이다.
상담소에 등록하여 회원증만 받으면 공짜 상품도 수시로 준다.
그러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쪽방 촌으로 몰려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9일에는 상품을 준다기에 나갔더니, 참치 캔이 든 상자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상자에 박힌 ‘대한민국정부’라는 로고에 또 한 번 주눅 들었다.
국가에서 너희들을 어여삐 여겨, 특별히 주는 것이니 말 잘 들으란 말 같았다.






물건을 타러 길게 줄지어 선 모습을 보면, 마치 난민 수용소의 한 풍경이 연상된다.
보기에도 안 좋지만, 줄 서 있는 입장에서는 꼴이 말이 아니다.
한 가닥 남은 자존심마저 몇 차례의 반복으로 서서히 사라지며, 좀 뻔뻔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본인도 모르게 길들어가는 징조다.









오늘은 구정선물 준다기에 갔더니, 추운 날씨에 사람들이 이삼백 미터나 길게 줄지어 있었다.

기다려보니 물건을 받기까지, 두 시간이나 걸렸다.
웅크려 떨며 기다리는 그 시간들은 인내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방에 와서 펼쳐보니, 그의 백화점 수준이었다.
어린시절 미군들에게 얻어먹었던 씨레이션 박스가 생각났다.










일회용 팩에 든 곰탕을 비롯하여 내복과 잠옷, 떡국, 고추장, 김, 치약, 칫솔, 비누, 샴푸 등
한 살림이었다. 그러나 내가 당장 필요한 것은 곰탕과 떡국 등 한 두 가지 뿐이었다.
내일 당장 난리 터질 일도 없으니, 비좁은 방에 두면 짐스럽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기호품으로 당장 필요한 일회용 커피는 없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힘들게 하지 말고,

적절한 상품권을 주어 당장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얻어 먹는 주제에 줘도 말이 많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젠 좀 합리적으로 하자는 말이다.
그걸 받아 약간의 도움은 될지 모르나,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받는 사람의 정신만 병들어가는 것을 왜 모르는가?






돈 많이 드는 장기적인 복지개선 보다, 가시적인 생색내기에 딱 안성마춤인 것이다.
그런 생필품은 쪽방에 사는 빈민보다, 거리에 방황하는 노숙인이 더 절실하다.
그들은 기초생활수급을 못 받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생필품마저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노숙인의 인적현황도 제대로 파악 못하면서, 무슨 놈의 빈민의 복지를 말하냐?







정부의 하는 짓거리를 보면 빈민들이 협력하는 ‘동자동사랑방공제협동조합’보다 못하다.
실제도 그렇지만, 진보와 보수의 차이다. 그러니 주민들조차 둘로 나뉜다.
협력하여 자립의 길을 찾는 것과 눈깔사탕으로 길들이는 것이, 어느 게 더 나은가?
정치가 썩었으니, 관료들도 잔머리만 굴려 국민들만 고달픈 것이다.





지난 11일 오후 다섯 시에 주민자치회의가 있다기에 아픈 몸을 끌고 ‘나눔의 집’으로 갔다.
삼 십 여명의 주민들이 모였으나, 회의를 소집한 상담소 직원은 15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주민자치회의에 공무원이 올 필요야 없지만,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번 회의에서 보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줄 알았으나 마찬가지였다.





말만 자치회의였지, 일방적인 공지의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선물 주고, 언제 무료 진료가 있다는 등의 안내뿐이었다.
그 정도면 지금처럼 요소에 붙인 공지문으로 다 아는데, 왜 불러 모았을까?
자치라는 말뜻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것도 길들이는 수순인가?





이제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것과 함께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구조적 모순점들을 완전히 쓸어내야 한다.


“난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죽어도 사육 당하기는 싫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몇 일간 먹는 게 싫다.
먹는 게 싫으면 죽는 것인데, 할 일이 남아 죽을 수도 없다.
지난 주말을 보낸 후, 몇 날을 방에서 낑낑거리고 있다.
몸살 증세 같지만, 푹 쉬면 괜찮을 것으로 여겨 누워 지낸다.
고작 정신 차려 하는 일이라고는, 컴퓨터 열어 노닥거리는 게 전부다.
그러나 하루에 한 끼는 먹어야해, 한 번씩은 밥집을 찾는다.
일찍 서둘면 지척에 있는 ‘식도락’에서 먹을 수 있지만, 매번 밥 때를 놓친다.
그 곳은 사랑방 조합에서 봉사하는 밥집인데, 한 끼에 천원 밖에 받지 않는다.
지난 토요일 후로 여태 못 갔으니, 어지간히 게으름을 피운 게다. 




 

지난 토요일에는 허미라씨가 혈당 검사까지 해 주며,
돈 넣으려고 저금통을 찾으니, 토요일은 무료라며 돈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날은 돼지 수육과 쌈이 준비된 특식이 나왔다.
수육이래야 한 접시가 전부였지만, 아무도 욕심 부리지 않는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서너 점씩만 담아 갔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얼굴에 묻어났다.
‘식도락’은 밥값 부담도 없고, 음식도 깔끔하지만,
이곳의 별미는 여러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인정이다.
따뜻한 눈길 섞인 말 한 마디에 절로 배가 부른 것이다.







요즘 따라 부쩍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진다.
몸이 신통찮은 탓이겠으나, 애써 추운 날씨 탓으로 돌린다.
4층 계단만 내려오면, 단골 밥집이 바로 입구에 붙어 있다.
이름 적힌 간판도 없이 그냥 닭곰탕이란 글만 보인다.
그러나 아직 이 집에서 한 번도 닭곰탕을 먹어 본 적은 없다.
매번 주문하는 것이 사천 원짜리 백반인데, 먹을 만하다.
코 구멍한 밥집이라 서너 사람만 들어오면, 꽉 차보이고,
주변이 너저분해 손님 모시기는 좀 그렇지만,
주인 아줌마도 좋고, 음식이 집에서 먹듯 맛깔스럽다.







매일 세시 쯤 들리다, 오늘은 다섯 시에 내려갔더니,
주모가 더 신경 써 주는 것 같았다.
날씨가 춥다며, 된장국을 맛있게 끓여 주었다.
살아남기 위해 내려 왔지만, 짭짤한 된장국이 댕겨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다 벽에 붙은 구닥다리 티비 뉴스 소리에 울컥 토할 뻔했다.
반기문씨의 귀국 기자회견에서 한 말에 비위가 상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말 한마디에 배가 부르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에 밥맛을 잃는다는 것도 알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 쪽방촌, 동자동에 봄 사건났다.


지난 성탄절을 맞이하여 동자동의‘성민교회’에서 중늙은이 다섯 쌍이 합동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식장은 이른시간부터 축하하러 온 주민들로 가득 찼다.

김승영 김유례 부부, 이기영 홍홍임 부부, 심경섭 천정미 부부, 김만기 이경희 부부,

박성일 박소영 부부 등 다들 아는 분들이었는데, 모두들 멋진 예복을 차려입고는 입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들, 쪽방 촌에서 눈이 맞아 살기는 하나, 결혼식을 못 올린 부부들인데,

꿈에도 생각 못한 드레스를 입게 된 신부들의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부들도 곱게 꾸몄으나, 신랑들도 때 빼고 광냈는지, 연예인 빰 칠 듯 잘 생겼더라.

노숙에서 쪽방으로 발전하고, 거기다 결혼에 이르면 여기서는 성공한 케이스다.

1,200세대가 사는 쪽방촌에서 독거신세를 면한다는 것은 사법고시 붙는 것보다 더 어렵다.

두 사람이 힘을 모아 살면 오죽 좋겠으나, 쪽방촌에는 여자가 귀한 것이다.

다들 돈과 인연은 없었지만, 따뜻한 인정은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들이 쉽게 연정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결혼식에 축하하는 가족들이 없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다섯 쌍 중, 심경섭, 천정미 부부 가족뿐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은 외로워하지 않는다. “동자동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가족이니까...”

그 날, 잔칫 돈은 ‘한국교회봉사단’에서 댔지만, 일은 ‘동자동 사랑방 공제협동조합’과 ‘성민교회’에서 다 했다.
주례사는 ‘한국교회봉사단’ 이사장이신 손인웅 목사께서 하셨고,

김유선, 이승아씨의 가야금 이중주와 김경환의 샌드아트 등 다양한 공연들이 벌어져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주민을 대표하여 동자동사랑방의 우건일이사장께서 인사말을 했지만,

김정호씨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이 부른 축가가 죽였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 그리워 운다네”

아무튼, “아침에도 울지 말고, 저녁에도 울지 말고, 부디 행복하게 잘 사시게나...”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8일 저녁무렵, 새로 가입한 동자동사랑방 공제협동조합원의 교육이 있었다.
교육의 자리라기보다 동자동 협동조합의 소개와 권리, 의무 등을 알려주며,
새로 들어 온 조합원들을 소개하는 친목의 자리였다.

박정아, 선동수, 차재설씨, 세 분이 차례대로 조합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대략은 알았지만, 5년 동안 엄청 좋은 일을 많이 했더라.
4백여 명의 조합원들이 모은 푼돈이 출자금 1억 8천 만 원을 넘기고 있었다.
조합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조금씩이나마 저축하며, 서로 힘을 나누는 유익한 단체였다.

그날, 이배식, 허미라씨 같은 아는 분도 계셨지만, 강희숙, 최윤정, 강현경, 김병홍, 남일우씨 등 여러 명과 얼굴을 익혔다.

술은 없었지만, 조합에서 근사한 만찬자리를 ‘식도락’에 마련했는데, 밥상에 닭도리탕까지 올라왔다. 간만에 맛보는 별미였다.

집에서 먹으라며 싸준 밀감 봉다리를 달랑거리며 돌아오다, 구멍가게를 기웃거렸다.
각자 유언장을 써 두라는 이야기에 술 생각이 났는데, 도저히 맨 정신에는 유서를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 말이 없어, 다음에 쓰기로 했다.


혼자서 절대 술 마시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핑게삼아...

사진, 글 / 조문호















아직도 우리나라에 이토록 정겨운 달동네가 살아남았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자기 것 밖에 모르는, 이 야박한 세상에 말이다.

지난 2일 정오 무렵, ‘식도락’에서 밥을 먹고, 지척에 있는 ‘동자동 사랑방'으로 갔더니,

강 호씨가 반갑게 맞으며, 커피를 타주었다.


이어서, 폐지 모우는 조인형씨가 싱글벙글 나타났다. 오늘은 돈 되는 스탠 고물을 주웠다며 자랑이 대단했다.

너무 부지런해 돈을 짭짤하게 모았지만,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인정 많은 분이다.

대개들 힘들게 돈을 모으지만, 쓸 줄 몰라 고생만 하고 돌아가시는데, 이 분은 돈을 쓸 줄 아는 현명한 분이셨다.

공원으로 올라가니, 이기영씨가 손을 흔든다. 나만 보면 사진은 언제 주냐지만, 늘 조금만 기다리라고 미룬다.

곧 라이타 돌을 실은 배가 인천항에 들어온다며 너스레를 풀곤 한다.
좀 있으니, 단감 한 자루를 사와서는 공원입구에 풀어놓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주워가고도 남았지만, 다들 하나 밖에 가져가지 않았다.

흔한 일이라, 산 사람도 생색 내지 않고, 먹는 사람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어 먹었다.

난 익숙하지 않아 딴 전을 피웠더니, 강 호씨가 내 손에도 하나 쥐어주었다.

그 날은 후암시장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 필요한 물건들이 많아 가게들도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마침 눈에 익은 잡화상을 만났다. 이 것 저 것 고르다 보니, 가진 돈이 부족했다.

물건 하나를 내려놓았더니, 모자라는 천원은 다음에 달라며 가져가라는 것이다.

사람을 믿고, 외상으로 주는 장사가 요즘 어디 있는가?


인정으로 똘똘 뭉친 마지막 달동네, 동자동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사랑방 공제조합'에서 마련한 ‘식도락’은 조합원들을 위한 밥집이다.

밥값 아닌 성금에 다름없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저금통에 넣는 게 전부지만,

그 곳에는 다른 곳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따뜻한 온정이 모락 모락 피어 오른다.

장소가 협소하여 삼 십 여명밖에 이용할 수 없지만, 아주 오붓한 밥상공동체다.

동자동에 온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신참이라 깊숙이는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요즘 세상사는 공부를 다시 하듯, 많은 것을 깨우치고 있다. 사는게 이런 거라고..

식당에 오는 분들도 대개 아는 분이라, 마치 한 가족이 밥상에 모이듯, 인정스럽다.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먹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향수어린 정겨움으로 가득하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밥상의 행복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더러는 농담을 건네기도 하지만, 말 없는 눈웃음 속에 서로의 고달픈 삶을 위로한다.

요즘은 배꼽시계도 무뎌졌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는 생활습관에 밥 시간을 번번이 놓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밖에 이용하지 못하지만,

갈 때마다 식재료비도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어떻게 유지가 되는지 걱정스럽다.


반찬은 몇 가지 안 되지만, 마치 집에서 먹는 것처럼 담백하고 맛깔스럽기 그지없다.

시락국이나 콩나물국도 번갈아 등장해, 술에 찌던 내장을 시원하게 풀어 주곤 한다.

그러나 천원짜리 한 장도 없거나, 그마저 아끼려 무료급식에 줄 서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이 쪽방촌이다.

다들 돈 없이 살아가지만, 사람답게 살아가는 지상의 마지막 천국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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