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촌에 살다보니 가끔은 ‘레이더스’가 부른 ‘인디언 보호구역’이 떠오른다.
쪽방 촌이 마치 빈민 보호구역 같다는 생각에서다.
보호한다는 긍정적인 뜻 이면에는 길들인다는 측면도 깔려있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사람을 사육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빈민들은 보호보다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급하다.
수입만 생기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잘리니,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막은 것이다.
그러니, 다들 일하지 않고, 주는 것만 받아 간신히 연명하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하청주는 ‘쪽방상담소’란 사무실이 서울에 다섯 군데다.
동자동이 소속한 ‘서울역쪽방촌 상담소’를 비롯하여 남대문, 동대문, 종로, 영등포에 있다.
모두 서울 중심지에 몰려있는 것도 특징이다.
상담소에 등록하여 회원증만 받으면 공짜 상품도 수시로 준다.
그러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쪽방 촌으로 몰려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9일에는 상품을 준다기에 나갔더니, 참치 캔이 든 상자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상자에 박힌 ‘대한민국정부’라는 로고에 또 한 번 주눅 들었다.
국가에서 너희들을 어여삐 여겨, 특별히 주는 것이니 말 잘 들으란 말 같았다.






물건을 타러 길게 줄지어 선 모습을 보면, 마치 난민 수용소의 한 풍경이 연상된다.
보기에도 안 좋지만, 줄 서 있는 입장에서는 꼴이 말이 아니다.
한 가닥 남은 자존심마저 몇 차례의 반복으로 서서히 사라지며, 좀 뻔뻔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본인도 모르게 길들어가는 징조다.









오늘은 구정선물 준다기에 갔더니, 추운 날씨에 사람들이 이삼백 미터나 길게 줄지어 있었다.

기다려보니 물건을 받기까지, 두 시간이나 걸렸다.
웅크려 떨며 기다리는 그 시간들은 인내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방에 와서 펼쳐보니, 그의 백화점 수준이었다.
어린시절 미군들에게 얻어먹었던 씨레이션 박스가 생각났다.










일회용 팩에 든 곰탕을 비롯하여 내복과 잠옷, 떡국, 고추장, 김, 치약, 칫솔, 비누, 샴푸 등
한 살림이었다. 그러나 내가 당장 필요한 것은 곰탕과 떡국 등 한 두 가지 뿐이었다.
내일 당장 난리 터질 일도 없으니, 비좁은 방에 두면 짐스럽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기호품으로 당장 필요한 일회용 커피는 없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힘들게 하지 말고,

적절한 상품권을 주어 당장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얻어 먹는 주제에 줘도 말이 많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젠 좀 합리적으로 하자는 말이다.
그걸 받아 약간의 도움은 될지 모르나,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받는 사람의 정신만 병들어가는 것을 왜 모르는가?






돈 많이 드는 장기적인 복지개선 보다, 가시적인 생색내기에 딱 안성마춤인 것이다.
그런 생필품은 쪽방에 사는 빈민보다, 거리에 방황하는 노숙인이 더 절실하다.
그들은 기초생활수급을 못 받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생필품마저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노숙인의 인적현황도 제대로 파악 못하면서, 무슨 놈의 빈민의 복지를 말하냐?







정부의 하는 짓거리를 보면 빈민들이 협력하는 ‘동자동사랑방공제협동조합’보다 못하다.
실제도 그렇지만, 진보와 보수의 차이다. 그러니 주민들조차 둘로 나뉜다.
협력하여 자립의 길을 찾는 것과 눈깔사탕으로 길들이는 것이, 어느 게 더 나은가?
정치가 썩었으니, 관료들도 잔머리만 굴려 국민들만 고달픈 것이다.





지난 11일 오후 다섯 시에 주민자치회의가 있다기에 아픈 몸을 끌고 ‘나눔의 집’으로 갔다.
삼 십 여명의 주민들이 모였으나, 회의를 소집한 상담소 직원은 15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주민자치회의에 공무원이 올 필요야 없지만,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번 회의에서 보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줄 알았으나 마찬가지였다.





말만 자치회의였지, 일방적인 공지의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선물 주고, 언제 무료 진료가 있다는 등의 안내뿐이었다.
그 정도면 지금처럼 요소에 붙인 공지문으로 다 아는데, 왜 불러 모았을까?
자치라는 말뜻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것도 길들이는 수순인가?





이제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것과 함께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구조적 모순점들을 완전히 쓸어내야 한다.


“난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죽어도 사육 당하기는 싫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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