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일제로 마시던 술을, 요즘은 전시 때문에 매일 마시게 된다.

지난13일도 전시장 문 닫기가 무섭게 김남진 관장 따라 나섰다.
정영신과 사진하는 후배 한 분과 마셨는데, 아쉽지만 먼저 일어나야 했다.
몇 일전,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박씨와의 약속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만나 한 잔 더 하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모두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자고 있었다.

노숙하는 자가 시계나 핸드폰이 있을리 없어 허탕을 친 것이다.
하는 수 없어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식도락’으로 사람들이 더나들었다.

밤 늦은 그 때까지 문이 열릴 리가 없었기에, 궁금해 들여다보았더니
방에는 동네 분들이 가득 앉아 있었고, 주위에 서성거리는 분도 계셨다.
음성 ‘꽃동네’에서 오셨단다.








매주 화요일은 ‘꽃동네’ 수녀님들이 동자동을 찾아, 빈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날이었다.
다들 일어날 시간이었으나 음식이 남아있어 끼어 앉았더니, 뜻밖의 슬픈 소식도 접했다.

김순애, 박미숙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전시하는 사정을 알고, '사랑방'에서 연락하지 않은 모양이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단 한차례 밖에 뵙지는 못했으나, 영정사진마저 없었다는 말에 가슴 아팠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렸다. 저승에서는 마음 편히 사시라고...






동자동에서는 함께 식사 할 때가 종종 있으나, 술은 일절 구경할 수 없다.
식사시간이 아닌 늦은 시간인데도, 술 마시지 않는 분만 모여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정씨 딱 두 사람 뿐이었다.







그 역시 닭고기 안주에 술 생각이 나는지,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고기만 몇 점 집어먹고 일어나려니, 수녀님이 선물봉지를 안겨주었다.
식빵 한 줄, 삶은 밤과 밑반찬 두 가지가 조금씩 담겨 있었다.






요긴한 선물도 고맙지만, 환하게 웃는 수녀님 모습에 온갖 시름이 다 녹았다.
고맙다며 맞잡은 손의 온기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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