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자방 쪽방에 들어 앉아 일을 하다보면, 주변이 산만해 집중이 잘 안 된다.
서울역에서 외치는 확성기소리가 마치 난리 난 듯 왕왕거린다.

지난 18일엔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해, 카메라를 메고 나갔다.
서울역 광장으로 가기위해 지하도로 들어가니,
잘 아는 노숙자 두 명이 동전놀이를 하고 있었다.
인기척에, 박씨가 돌아보며 죽은 처 삼촌 만난 듯 외친다.
"어! 기자형님 오셨네. 사진 찍어요. 찍어...“

요즘 동자동에서 나에게 두 가지 칭호가 따라 다니는데,
공무원들이나 젊은 양반들은 사진작가라 부르지만,
동내 사람과 노숙자들은 대개 기자양반이라 부른다.
지랄 같은 사진작가란 말보다, 늙어 쭈그러져도 기자 노릇은 하고 있으니,
기자라는 말이 더 편하더라.

‘가위 바위 보!’ 한 번으로 동전을 가져가는 놀음을 하고 있었는데,
전부의 동전이 삼천 원을 넘지 않았으니, 다시 빌려 주기를 계속했다.
잘 못해 동전이 시멘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손끝이 무디어 집어 올리기도 힘든데,
이기는 잠깐의 기쁨에, 그 짓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막걸리 두 병 값 밖에 되지 않는 돈이지만, 자기 전에 마시려고 버티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밖에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재미있다.
“배때지가 부르니 지랄 떠는 기지요. 지랄하면 몇 푼 주는 모양인데,
씨발넘들이 거지라고 사람차별까지 하고 지랄이야”

궁금증에 “막걸리 한 병 사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보니, 대통령하야반대 및 안보 지키기 국민대회’란
듣도 보도 못한 단체가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보수단체 늙은이 천여 명쯤 되어 보이는데, 보아하니 박사모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야당과 좌파의 민중혁명 음모를 규탄한다”며 나발 불었는데, 정말 과관 이었다.

그런데, 만만한 게 태극기인지 모두들 태극기를 들고 야단이더라.

나라를 위하는 척 호들갑 떠는 게 정상은 아니라, 서울역을 오가는 젊은이들 보기 부끄러웠다.
나도 거기서 사진 찍고 있었으니, 같은 패거리로 볼까봐, 얼른 막걸리 사서 지하도로 내려갔다.

‘제발, 늙은 놈 쪽 팔리게 하지마라. 이 정신 나간 꼰대들아!’ 

 

막걸리를 들고 가니, 박씨가 반색을 하며 반긴다.
“기자형님 진짜 막걸리 사왔네. 최고다 최고”
야! 천오백 원짜리 막걸리 한 병에 저렇게들 좋아하는데,
국민들의 돈을 엄청나게 도둑질한 기집 년은 뻔뻔스럽게 버티고 있으니, 또 분통이 터졌다.

술 한 잔 마시며, 고함을 내 질렀다
“박그내를 박살내자” 지나가는 젊은이들도 따라 외쳤다.
술 마시던 노숙자 둘도 덩달아 박살내자고 외치더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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