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 짐을 하나씩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짐은 정선 움막에 있고, 작은 짐은 정영신에게 두고, 몸뚱이와 필요한 물건만 챙겨왔으니 너무 홀가분해 좋다.

쪽방 공간이 좁아, 크게 운신할 필요조차 없으니, 몸도 마음도 편한 것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해 뜨는 집’ 105호에 살던 김영희씨 방은 짐으로 가득했다.

어디서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왔는지, 쓸 만한 물건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석 달 동안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별 탈은 없어야 할텐데...

지난 8일, 그 쪽 방향으로 나갔더니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그녀의 짐을 끌어내고 있었다.

밀린 방세 때문에 짐을 폐기처분할 모양인데, 좁은 방안에 짐이 얼마나 많은지, 수레로 두 차례나 실어 버리고도 남았다.





쪽방촌 사람들은 늘어나는 짐 때문에 대개 골머리를 앓는다. 심지어는 이웃 짐까지 맡아 곤혹스러워하는 경우도 더러있다.

갔다 올 때 까지 잠시만 맡아 달라했으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버리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인 것이다.

신변에 큰 문제만 없다면, 어디선가 또 짐을 모울 것이다. 아니면 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지...

그런데, 짐을 빼낸 ‘해 뜨는 집’ 1층의 방세를 물었더니, 한 달에 16만원이라 했다.

난, 4층인데도 23만원이나 주는데, 귀가 솔깃해 당장 짐을 옮기고 싶었다.

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싼 모양인데, 한 달 방세 손해 볼 것도 아깝지만, 있는 곳에 정이들어 생각을 접었다.






이제 먹는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지난 7일은 공원에서 빵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민간 봉사단체에서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러나 너무 늦어 빵이 모자랐다.  돌아서려는데, 강완우씨가 걸어 와 내 손에 자기 빵 봉지를 슬그머니 쥐어 주었다.

“왜 니 모가치를 내 한테 주노?”했더니,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비시시 웃는다. 빵을 안 좋아하는 놈이 줄은 왜 설까...

이런 인정스러움 때문에 쪽방사람들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그 날은 먹을 복이 많은지, '새꿈나눔터'에서 특별한 무료 급식도 하고 있었다.

‘연세의료원노동조합 행복 나눔 봉사회’에서 나왔는데, 닭다리를 하나씩 준 것이다.

비록 조그만 닭다리가 죽에 꽂혀 있었으나, 닭죽이라 술술 넘어갔다.

어찌 술 마시고 속 쓰린 것 까지 헤아려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지난 8일의 식사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사랑방 식도락’에서 해결했다.

한 끼 천 원씩 받아, 별 반찬은 없으나 씨락국이 시원해 좋다. 내가 앞으로 많이 활용할 식당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무료배식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인정스러움이 있다.





제일 힘든 끼니 때우기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맛나샘’ 무료급식이었다.
일단, 한 끼 얻어먹으려면 한 시간 전에 가서 신청명부에 적고 앉아야한다.

자리가 없으면 복도 계단에 줄지어 쪼그려 앉아,

예수를 믿던 안 믿던 한 시간 넘게 설교를 듣고 기도를 해야한다.

난,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그렇게 못하지만,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했다.

대관절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주 길래 저렇게 까지하며 얻어먹을까? 란 생각이 든것이다.





그래서 지난 11일, 한 번 체험해 보았다.
신청서에 올리고 복도계단에 쪼그려 앉아 내키지 않는 설교와 기도를 들은 것이다.

일단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일하는 사람들의 자세부터 고압적이고 거만했다.

밥 얻어먹으러 온 사람들도 외지에서 왔는지 낮선 사람이 더 많았다.

반찬은 된장국과 돈가스 세 조각, 당면무침 정도였으나, 먹을 만 했다.



교회에서 하는 급식 보다는 카톨릭 단체에서 하는 봉사가 훨씬 신사적이다. 

"카톨릭 평화의 집’에선 월요일과 목요일에 도시락 배달을 하는데, 200여 가구에 한정되어 있다.

 골고루 혜택 받을 수 없는 게 아쉽지만, 봉사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좀 귀찮지만, 밥은 얻어 먹는 것 보다 내 손으로 해 먹는 것이 상책인 것 같더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7일에는 ‘동자희망나눔 회원증’을 받았다.
지자체의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발급하는 이 회원증은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일단, 동자희망나눔센터의 샤워시설과 세탁시설을 활용할 수 있고, 각종 민간단체에서 지원하는 식료품을 받을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도 똑 같은 쪽방촌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동자동 주민기자증으로 느껴졌다.

내가 체험하고 느끼는 문제점은 물론,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감 없이 알리고,

주민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며, 함께 권리를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에 시나리오작가 최근모씨와 사진가 김시우씨가 찾아왔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프린트기 지원내용을 알아 보러 왔다가, 동자동 사랑방에 들려, 내가 못한 부탁을 해 주기도 했다.



'동자동사랑방'의 박정아씨, 쪽방촌 사람들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이지만,

보수성향의 일부 주민들은 진보성향의 사람들이라며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사업에 진보, 보수가 웬 말인가?

 

[동자동 사랑방 조합장]

 

그 친구들이 떠난 후, 상담소로 가다 김유례씨를 만난 것이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았다며 자기도 찍어 달라 부탁 했다.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진을 강 호씨가 알아, 여기 저기 보여주며 소문 낸 것이다.

SNS의 위력을 또 한 번 실감했다.

덕분에 이기영씨의 안내로 몸이 아픈 김익윤씨를 찾아가 찍기도 하고, 이대영씨 등 여러 명의 영정사진도 찍었다.

프린트기만 들어오면, 찍은 모든 사진을 뽑아 주인에게 돌려 줄 작정이다.


김유례씨는 나와 동갑내기다.


강완우씨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늦게 나가 빵을 못 받고 돌아서니, 슬그머니 닥아와 자기가 받은 빵봉지를 내손에 쥐어 주었다.





오후 두시 쯤, 공원입구에 가보니, 일찍부터 정재헌씨가 술자리를 깔아 놓았다.

그 날은 강완우, 이기영, 김장수씨 등, 술 친구들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처음 보는 사내도 있었다. 용팔씨 이야기로는 오늘 교도소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 턱 쏘았다. 벼룩도 낮 짝이 있다는데, 맨 날 얻어 마실 수만 없잖은가?

추교부, 나흥주, 장국태씨도 뒤늦게 나타나,  술과 담배 값으로 파랑새 석장을 날렸으나 기분 좋게 마셨다.

 

“니는 무슨 죄 짓고 교도소 갔노?” 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 대답이 걸작이다.

“안 만졌는데, 여자 엉덩이를 만졌다고 잡아가데요.”  용팔씨 설명으론 성추행범으로 잡혀 한 달 넘게 살다 나왔단다.

만졌는지 안 만졌는지는 내 알바 아니지만, 요즘 초상권 문제나 성추행 문제에 너무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 쪽 팔릴까봐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내의 사진은 찍지도 않았고, 이름도 거명하지 않았다]

 

 

 

 

 

위에 있는 김장수씨는 부산 동성고등학교 출신으로 기계체조선수였는데, 고향은 경남 진영이라다.

나도 젊은 시절 '김해농협'에 근무할때, 진영에 자주 간 적이 있어 더욱 반가웠.




혼자서 얼마나 여자가 그리웠으면, 모르는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고 싶었을까?

옛날 같았으면 빰 한 대로 끝낼 수도 있는 일을, 감방까지 보내야 하는 세상이 너무 야박한 것 같더라.

그래서 그 친구에게 부탁했다. “내가 멋진 여자 알몸사진 한 장 뽑아 줄테니, 생각나면 그걸 보며 딸딸이나 쳐라”


어떻게, 이런 저런 설움을 알았는지, 하늘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술에 눈물같은 빗방울이 섞이니, 술 맛이 달더라.


[주민 자치회의 장면]


 

 

 

 

난, 그만 일어서야 했다.


오후 다섯 시부터 ‘동자희망나눔 센터’에서 주민자치회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술은 취했지만, 어떠한 이야기가 오가는지도 궁금하고, 모르는 분들에게 신고하고 싶어서다.

가보았더니, 말은 자치회의라지만, 여러 가지 일을 알려주는 공지의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진료, 예방접종, 무료급식 등의 날짜를 알려주기도 하고, 필요한 물품을 신청받기도 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대개 일인용 전기장판이나 이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분이 그 유명한 용팔씨랍니다.]



밖으로 나오니, 술마시던 친구들은 자리를 옮겨가며 마시고 있었다.
비를 맞아가며, 세상 설움을 술잔에 풀고 있었다.
마음이 편치않아, 십팔번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목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의 보안관 양반도 가족처럼 편안한 사람이다.

 


 

 

이 양반은 음악을 너무 좋아해 항상 레디오를 들고 다니며 춤을 춘답니다.

 

 

 

 

 

 

 

 

회의장에서 바라 본 바깥 풍경이 너무 쓸쓸하다.

 

 

 

족발안주를 보니 소주가 생각나네요.

 

쪽방 사람들보다 더 안타까운 사람들이 노숙자입니다. 그들도 쪽방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노숙자들이 기초수급생활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주민등록이나 가족관계가 정리되지 않아서인데,

더 추워지기 전에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지난 4, ‘한국종합예술대에서 교편 잡는 사진가 이주용 교수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평창동 연화정사옆에 있는 작업실에서 10년 넘게 일해 왔다는데, 전망이 끝내 주었다.

북한산 자락의 옹기종기 몰린 집들이 석양에 물들고 있었고, 작업실은 마치 박물관에 온 것 같았다.

희귀한 대형 박스카메라들이 즐비했고, 온갖 석불과 오래된 물건들이 여기 저기 진열되어 있었다.

 

30여년 전 이주용교수가 미국서 공부할 때, 안젤 아담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사진계 거목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 취재한 원고를 내가 근무했던 월간사진으로 보내주어 2년 가까이 연재했는데,

국내사진인들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하였다.


그 뒤 귀국해서는 포토291“이란 사진잡지를 창간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래 좋은 잡지보다 아마추어를 상대로 한 대중잡지만 간신히 살아남는 현실은, 오래 지탱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이후, 이교수를 전시장에서 한 두 차례 만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작업실을 방문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몇 일전 동자동 쪽방촌 작업에 필요한 자재 도움을 페북에 올렸는데, 그 걸 보고 도와주겠다며 전화해 준 것이다.

사용하는 비싼 프린트기를 빌려주려다, 아예 새것으로 사 주겠다는 것이다

 그토록 고마운 인정을 베푸는데, 이주용교수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게, 창피했다.


그동안 동북아 天然堂사진관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울에서 출발해 일본 동경을 거쳐 오사카,

북경을 잇는 한,,3국의 현재와 과거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 작업이었다.

역사적 기록성과 사진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공유한 중요한 전시였다.

또한 순회전이 열린 도시에서 만난 가족들의 초상사진을 촬영함으로, 동시대 초상사진의 사회학적 의미를 주지시키기도 했다.

 

그런 중요한 작업을 직접 못 본 게 아쉬웠지만, 인물을 통한 사회적 다큐멘터리 작업은 계속된다니, 기대되는 바가 크다.

방문한 작업실에는 사진관의 배경그림을 그리는 화가 조수 나우미씨와 함께 있었는데,

그런 훌륭한 조수와 함께 작업한다는 것도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작품들과 작업실에 늘린 기자재들에 취해, 평소 습관처럼 해왔던 사진 찍는 일과

서울도시빈민 프로젝트에 대한 자문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프린트 기자재를 구입해 주려, 내가 사는 쪽방까지 방문해 자문을 구할 수 있었다.

 

결론은 모든 것을 쉽게 결정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하라는 말인데,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좀 더 세밀한 현장조사는 물론이고, 주민들의 마음이 열렸을 때, 논의할 문제라고 했다.

한 지역에 많은 사진가들이 몰리면 자연적으로 부작용이 일어 날 소지가 많다며,

인간적인 소통보다 사진욕심에 눈이 어두운 사진가가 반드시 생긴다는 것이다.

 

서울 전역 빈민가의 철저한 현장조사가 선행된 후, 사진가들이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구역별로 나누어 한 지역에 한두 명만 들어가, 상호 협력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

이 문제는 기획전문가인 브레송의 김남진 관장께 부탁할 생각인데, 본인이 허락해 줄지 모르겠다.

좌우지간 경험 많은 사진가들의 자문을 구한 후, 좋은 방안이 마련되는 대로 공개할 작정이다.

 

그리고, 저녁 무렵엔 부산에서 활동하는 다큐사진가 조성기씨를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성기씨는 10여년 전 강원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에 함께 한 적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이산가족 같은 감은 있었지만,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 자리에는 조성기씨를 비롯해 사진가 박종면씨와 인성욱씨가 동행했는데, ‘유목민매상께나 올렸다,

서로간의 정보 교환은 물론, 사진판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화를 안주삼아 퍼 마셨는데,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와 푸른별이야기 최일순씨, 그리고 뒤늦게 시나리오작가 최건모씨도 합류했다.

다 연줄연줄 아는 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성기씨가 부산가는 열한시 기차표를 취소하고,

내가 사는 서울역쪽방에 끼어 자겠다고 했다. 내 사는 꼴도 보고 싶었겠지만,

서울 올라 온 김에 눈빛에서 나오게 될 사진집 서문을 부탁하러 이경홍교수를 만나려는 것이다.

 

쪽방 갈 놈들이 겁도 없이 택시까지 잡아타고 갔는데,

입주한지 몇 일 되진 않았지만, 긴 밤 손님은 처음 받았다.

술이 취해 매점에서 소주와 이 것 저 것  별의 별 것을 다 집어넣었다. 내일도 처먹어야 사니까...

그 날 밤 술 마시며, 전 주인이 남겨 놓고 간 유품, 꽃그림을 안겨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상도 말로 참 욕봤다!

 

하루 일기가 길었던 만큼, 그 이튿날은 죽어나야 했다.

 

사진, / 조문호











내가 사는 동자동 쪽방입니다

그림은 전에 살던 분이 남기고 간 유품이지요. 




 






동자동으로 이사 왔던 지난 3일, 도시락 자원 봉사하러 갔다.
그런데, 그동안 봉사해 온 ‘평화의 집’ 문이 걸려 있었다.

매 월요일과 목요일에 나누어주었는데, 개천절이라 쉬는 모양이었다.


발길 돌려 서울역 지하철 방향으로 내려가니 안면 있는 노숙자 한 명이 웅크려 자고 있었다.
그 위에 그려진 광고판이 너무 대조적이라 사진 한 장 찍었다.
서울역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돌아오니, 그 사이에 네 명이 앉아 술판을 벌여놓았다.
잠자던 노숙자는 인사동에서 여러 차례 만난 떠돌이라, 같이 앉아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셨다.

동자동 공원으로 돌아오니, 그 곳에도 여러 명이 술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오늘 이사 왔다는 최상섭씨와 정재헌씨 등 몇 명이 있었는데, 초장부터 다들 취해 있었다.
정재헌씨는 ‘희망 나눔 센터’에 빨래하러 온 김에, 한 잔 한다고 했다.


“이름은 알아 뭐 할끼고? 술이나 마시라”는 경상도 사내가 한 마디 했다.
“살 날이 많으니, 술은 천천히 마시는 기라. 더러운 세상 꼭꼭 씹어가며...”
최상섭씨가 너무 취해 횡설수설하니, 점잖게 한 마디 던진 것이다.

예쁘게 분단장한 김은자씨가 살며시 등장했다.

“공주님 넘 예쁘요”라고 칭찬했더니, 살포시 웃는다.
갑자기 경상도 사내가 “밥은 뭇나?”라며 내게 말을 걸어 와, 
“배달 봉사하고 한 그릇 얻어먹으려 했으나 그 날은 쉰다니 하늘 닫힐 때까지 기다려야지”라 했다.
그가 슬며시 일어나 매점에서 컵라면과 우동을 사왔다.

난, 컵라면을 좋아하지 않지만, 성의가 고마워 받았다.


“나도 사먹을 돈 있는데, 왜 쓸데없이 돈쓰고 그래”라고 말했더니,

“사람은 정이 있어야지, 정!”이라 했다.
그 흔해 빠진 정이란 말 한마디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씨발~ 눈물 떨어진 라면이 얼마나 맛있는지, 그 맛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셀카로 박았는데, 난 어디갔노?













몇 일 전, 동자동 쪽방 촌에 들어왔습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찍으러 와 보니, 너무 눈물겹습니다.
여지 것 살기가 힘들어 불평만 해 왔는데, 부끄러웠습니다.


한 평 남짓한 쪽방에 사시며 짐이 많아 다리를 못 펴고 주무시는 노인도 많습니다.

그들의 방에 가려면, 대낮인데도 어두워 조그만 후레쉬를 지녀야  할 정도입니다.

그 경사진 좁은 계단을 오르다 잘못하면, 떨어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대개들 하는 말이 ‘요즘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몸만 움직이면 무료급식도 늘려있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비로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합니다. 20여명이 사는 쪽방건물에 화장실이 하나뿐이니, 아침이면 곤욕을 치룹니다.

그러한 육체적 고통보다 더 무서운 건 사회로 부터의 소외고 외로움입니다.


지난 추석 무렵, 동자동 쪽방에서 십 여 년 동안 사셨던 박정용(71)씨가 목메어 자살했습니다.

경찰이 가족을 찾아 불렀는데, 10여 년 동안 제대로 안 먹고 모은 돈이 1700만원이나 나왔습니다.

가족이란 자는 돈만 챙겨가고, 시신은 그냥 두고 갔습니다.


어떻게 동방예의지국이라 자처하는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되었습니까?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은 사진을 찍어드리며, 어려운 실상을 알려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는 일 뿐입니다.
부지런히 쪽방촌의 비참한 실상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영정사진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찍어 드리며

조그만 위안이라도 되어주고 싶으나, 여력이 없습니다.


5X7사이즈와 8x10사이즈의 사진을 뽑을 수 있는 출력기와 잉크, 종이를 후원받고 싶습니다.

엡숀이나, 캐논 등 여러 회사 중에 동자동의 빈민들을 도와 줄 업체는 없는지요?

혹시, 그 방법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좀 알려 주십시오.



사진,글 / 조문호




























어저께, 동자동 쪽방촌 도시락 나눔 행사에 참여하며 여러 집들을 방문했는데,

그 날 찾아 본 구역의 환경이 서울역 주변 쪽방촌에서 제일 열악했다.

 

우리나라 대표적 슬럼가로 꼽을 수 있었는데, 아직 그러한 집이나 방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위생이란 말 자체가 사치스럽게 들릴 정도였다.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좁은 방에 늘린 어지러운 용품들,

자칫하면 넘어질 것 같은 비좁은 계단과 거미줄 같은 전선들이 불안감을 조성했다.

 

문제는 건물주들이 집보수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월세만 꼬박 꼬박 받아 챙긴다는 것이다.

어느 입주자의 이야기로는 겨울철 난방비를 정부에서 지원해주는데도,

저녁10시부터 새벽5시까지만 가동시켜, 겨울엔 추워서 지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문짝이나 전기 등, 문제가 있는 시설물도 지자체나 봉사단체에서 해 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그토록 더럽게 돈 벌어 어디에다 쓸까?

문둥이 코 구멍에 마늘을 빼먹지...

 

대개의 방엔 벽에 붙일 수 있는 얕고 작은 장식장이나, 밖에 별도로 보관할 수 있는 사물함,

그리고 선반제작 등, 방구조에 맞는 맞춤형 목공 지원이 절실했다.

좁은 방바닥을 정리해, 발이라도 편하게 뻗을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

 


사진, / 조문호







































































 





지난 22, 동자동 쪽방촌의 실상을 알기 위해 도시락 전달 팀에 합류하여 몇몇 집들을 찾아보았다. 

안타까운 현장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온 방에 깨진  술병 조각이 나뒹구는 곳도 있었고,

일찍부터 술이 취해 길거리로 기어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체념의 세월이 많은 사람들을 알콜 중독자로 만든 것 같았다.

 

동자동 놀이공원에는 모두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인심 하나는 좋았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다 같이 한 잔씩 돌렸다.

그 곳에도 일찍부터 취해 쓰러져 자거나, 술을 마시다 상주하는 경찰에게 공원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확성기 소리에 이끌려 서울역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하도를 비롯해 역 광장 곳곳에 술 취한 노숙자들이 쓰러져 자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기초생활수급자란 정부의 지원마저 받을 수 없는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라, 더 마음이 아팠다.

대부분 가족들에게 버림받거나, 살아 갈 의욕조차 잃은 사람들이다.

 

옆 에서는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에너지공기업 민영화 음모를 막으려는 궐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궐기대회에 나선 사람들은 저 사람들처럼 노숙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노숙자 귀에는 즐거운 비명쯤으로 들렸을 것이다.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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