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주씨의 한국화전이 지난 3일 후암동 천주교회를 장식했다.

전시장엔 이른 시간부터 주민들의 축하 발길이 이어졌다.
‘동자동사랑방’ 선동수 간사장을 비롯하여 조두선, 강동근, 유영기, 이난순씨 등
많은 분들이 작품을 감상하며, 전시를 축하하고 있었다.






윤용주씨는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겠다고 했으나.
다들 그냥 가져가지 않았다. 하나 같이 어려운 처지인데도
몇 만원씩이라도 모아 서로 정 나누고 있었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다.






여지 것 많은 전시를 보아 왔지만, 이 보다 더 성공적인 전시는 없었다.
이번 전시에 30여점을 내걸었으나 여섯 점만 남았는데,
그마저 가져가기로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작품의 질이 높고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함께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근사한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들도 한두 점 팔리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전시장마다 파리 날리는 실정인데다, 전시가 끝나도 작품을 집에 쌓아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용주씨 전시는 달랐다.

단 하루 전시로 이만한 관객이 다녀가기도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전시된 작품들이 모두 주인을 찾아 벽에 걸린다는 사실이다.






모든 작품을 팔아도 큰돈은 아니지만,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이젠 작가 윤용주 만의 색깔을 찾아 작품의 질을 높이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
또 다른 윤용주씨의 변신을 기대하며,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빈민들의 죽음에 따른 공영장례 지원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가족이 있으면 기초생활 수급자도 제외되고, 운구차와 빈소의 지원도 없다.
서울시의회 공영장례 조례를 계기로 장례의 보편적 복지 의제 중 하나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존엄한 장례를 진행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례시간 3시간에다 장례비용 40만원으로 어떻게 한 사람의 존엄한 마지막을 보장할 수 있겠나?’
서울시의회가 추진하는 ‘공영장례 조례’를 둘러싸고 터져나온 질문이다.
지난 11월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장례를 치룰 형편이 안 되는 사람에 한해, 
공공이 지원하는 조례를 발의해, 18일 상임위 논의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실용성 없는 조례”라는 비판도 따른다.
‘2017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7일 오전 10시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지원하고 기본적인 장례 절차라도 보장하는 공영장례 조례를 마련할 것과  

공영장례안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




 

사람의 존엄한 마지막을 위해선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한국소비자원이 2015년 조사한 한국인 평균 장례비용은 1443만원이다.
대부분 부조를 받아 장례비용을 충당한다. 그러나 경제력을 갖춘 가족이 없을 땐 사정이 달라진다.
기초생활수급자 유가족에겐 장제급여 75만원이 지원되지만, 시신을 수습하기도 빠듯한 돈이다.






홈리스행동 등 시민단체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전국의 무연고 사망자는 1232명인데, 
이들 중 80~90%는 실제로 가족이 있지만 비용 등의 문제 때문에 장례를 포기한 경우로 추정한다.
이번 서울시의회 조례는 보건복지부가 노인 돌봄대상자에게 제공하는,
장례서비스 집행기준 범위인 40만원 안에서 지원하도록 정하면서 실효성 논란이 커지게 됐다.
3시간 동안 빈소를 차리기도 어려운 금액이기 때문이다.





30여년 살았던 동자동의 김씨는 지병으로 입원하기 전, 마을 주민들에게 장례를 치러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장례라도 치루어 달라는 호소다.
무연고 사망자인 김씨의 시신은 마을 주민들과 '동자동 사랑방'에서 거두어 장례를 치러 주었다.

동자동의 경우는 '동자동 사랑방'이라는 주민협력단체가 있어 가능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공영장례에 대한 지원 대상도 논란이다.

이번 조례는 지원 대상을 무연고 사망자와 연고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장애인, 75살 이상 노인인 경우만으로

한정하면서 많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제외됐다.
무연고 사망자는 안치실에서 바로 화장장으로 가는 ‘직장’이라는 방식의 장례를 치른다.
이번 지원 방안에서, 가족이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직장’ 이상의 장례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례를 치루려면, 가장 큰 고민이 빈소마련과 운구차 임대인데,
적십자회가 2016년부터 공공운구차 제공을 중단하면서 많은 빈민들이 어려움을 겪고있다.
조례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공공의 빈소와 장의차부터 지원하고, 최소한의 경비는 보장해야 한다.

당신은 이처럼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나?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6일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서 ‘나누미와 함께하는 따뜻한 겨울나기’ 행사가 열렸다.
'사단법인 나누미'가 주관하고 'JUBILEE CHURCH'가 협찬한
이 행사는 쪽방촌 사람들에게 겨울침낭을 나누어 주는 훈훈한 자리였다.






동자동 주민 등 250여명이 참석한 복지관에는 성장현 구청장을 비롯하여
진 영 국회의원 등 여러 명이 나와 축사를 했다.


그런데, 민간단체에서 나눔 봉사활동하는데 국회의원이나 구청장이 왜 나타나 공치사하는 줄 모르겠다.

더구나 구청장은 다 끝난 시간에 나타나, 주민들을 다시 자리에 앉혀 늦게 온 변명만 늘어 놓았다.

제발 좋은 일에 속보이는 짓 하지마라.


그리고, 겨울 침낭은 쪽방주민보다 노숙인들이 더 필요한 물건이다.

물론, 다음에 노숙인들에게도 전달해 준다는 이야기는 했으나, 길에서 떨고있는 그들에게 먼저 전달해야 했다.






나누미 이사장인 박종환목사는 인사말에서 따뜻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로 97세의 할머니와 94세의 할아버지가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할머니가 눈을 감은 지 열 일곱 시간 후에 할아버지도 따라 눈을 감았다는데,
평소 화목하게 사시며 장수한 노부부의 행복한 죽음을 주위에서 부러워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분들의 세상사는 방법이 남 달랐단다.
두 분의 공통된 점이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는 것이다.






방에 갇혀 폐쇄적인 삶을 사는 쪽방 주민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문제다.
방에서 티브이만 끼고 하루 종일 지낼 것이 아니라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라는 것이다.

결국 이웃과 정 나누는 것이 보약이다.

사진,글 / 조문호




















세상 뒤집힐 것 같은 천둥소리에, 무슨 죄가 그리 많은지 화들짝 놀랐다.
살 빠진 우산하나 받쳐 들고, 행여 별일 없나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바삐 가는 젊은이가 한 둘 보였으나, 동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민방위훈련이라도 하는 듯, 공원은 적막 속에 쌓여있었다.
비에 젖은 쓸쓸한 풍경은 마치 인간이 사라진 미래를 보는 듯 침울했다.






사람이 그리워 무작정 공원 옆에 있는 쪽방 건물로 올라갔다.
다들 방안에서 알 낳는지, 인기척도 없었다. 
연락도 없이 두드릴 수가 없어 3층으로 올라갔더니,

원용희씨가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방이나 마찬가지지만, 쪽방은 한 사람만 더 들어가도 답답하다.
방에 억지로 끼여 앉았는데, 방이 좁아  다리도 펼 수 없었다.
한 달에 난방비를 포함하여 17만원이라니, 싸긴 싸더라.

남대문경찰서 조사계 조순경인데, 조사할게 있다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세상에! 쉰밖에 안된 나이에 마누라와 생이별한지 30년이 가깝다고 했다.

마누라는 상주에서 농사 짓는데,
코딱지만한 땅덩이라 양식 정도 해결할 정도란다.
이제 다 큰 아들과 딸 뒷바라지가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30여년을 돈 벌기 위해 서울 변두리로 전전하며 폐지를 줍는 등, 안 해본 일이 없단다.
지금은 카톨릭 평화의 집에서 도시락 나눔을 도와주며, 한 달에 28만원 받는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비까지 합하여 80만 원 정도 생기지만, 매달 50만원을 시골에 보내 준단다.
30만원으로 방세 내며 사는데. 줄담배인 담배 값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대도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말하는 천하태평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은 추석과 구정뿐이라는데,
명절만 이산가족 만나는 날이었다.






항상 웃으며 힘들어도 세상 원망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착하게 사는 순진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온갖 세상 설음 다 가진 듯, 불만에 찬 내 모습이 비쳐졌기 때문이다.





당신은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란다.
자식들은 시골에서 살지라도, 마누라라도 데려와 함께 살고 싶다는 것이다.
수입이 조금만 더 생기면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큰 방으로 옮길 것이라며, 부푼 꿈을 키웠다.

지금은 천주교 세례 받을 준비도 한단다.






이 험한 세상을 착하게만 사니, 힘들게 살 수 밖에 없다.


서울시에서 가난한 원용희씨에게 영구임대주택 한 칸 줄 수 없나?

30년 가까이 서울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남들처럼 제대로 된 댓가도 못 받은채 희생했으니, 자격은 있을 듯 싶다.
다른 사람은 짝이 없어 외롭게 살지만, 있는 짝도 생이별한 채 살아야 하나?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9일은 강경호씨가 ‘새꿈공원’ 입구에 술자리를 폈다.
아무리 아껴도 엉뚱한데 날아가니 술이나 마시자며 중국집에 짬뽕 국물까지 주문했다.
사연인즉, 화가 나 땅바닥에 내던진 술병으로 벌금을 190만원이나 물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유는 모르겠으나, 상대방에 피해 주지 않은 것 치고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으로 입건되어, 모아 둔 돈 탈탈 털어 벌금 냈다는 것이다.






강경호씨만이 아니라 착하기 그지없는 정용성씨도 경찰서 출석통지서를 받았다고 했다.
아마 취중에 또 실수를 저지른 듯 했다.

다들 순간적으로 성질을 부려 일이 꼬인 것이다.
술기운에 저질러 놓고 뒷감당 못해 쩔쩔 메지 말고, 술을 끊던지 아니면 성질 좀 죽여라.






그 날은 이른 시간인데도 강경호씨 외에는 대부분 취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취해도 혈육의 끈끈함이나 살기 위한 밥그릇 챙기기엔 강한 집착력을 보였다.
특히 정용성씨와 황춘화씨 두 모자는 똥 오줌 못 가릴 정도로 만취해 있었다.






어떤 이가 지나치며 장난삼아 용성이 머리를 툭 치고 가니,
용성이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상대방을 혼찌검 냈다.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사람이 어디서 저런 순발력이 나오나 싶었다.






목요일은 밑반찬 타는 날인데도 취해 있어 밑반찬은 탔냐고 물었더니,
그 때야 생각 난 듯 용성이가 벌떡 일어나 반찬 나눠주는 배급소로 달려갔다. 
개가 물어뜯어 반 토막 난 바지자락을 끌고 달려가는 용성이의 뒷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그러나 두 모자가 허구한 날 술이 취해 걱정스럽다. 술 값에 드는 돈도 돈이지만, 망가지는 몸 때문이다.

당장 아파 드러눕게 된다면, 그 뒷 감당은 어떻게 할까?
술을 끊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 같다.

사진,글 / 조문호
















동자동 오층 집 옥탑 방에 사는 황춘화, 정용성 모자는 참 착하게 산다.
눈을 벌겋게 뜨고 설쳐도 살기 어려운 세상에, 착한 사람의 인생이란 보나 마나다.
이리 당하고 저리 당하며, 동대문에서 양동으로 마지막 쫓겨 온 곳이 동자동 옥탑 방이다.






통장에 돈 한푼 없지만, 기초생활수급비로 겨우겨우 산다.
두 사람이 매일 마셔대는 소주 값도 장난 아니다.
한 달에 70만원 받아 23만원 방세 제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술값으로 날아간다.
이 험악한 세상에 취하지 않고 어찌 버틸 수 있으랴!






술이 슬픔을 날려주니, 매일 웃고 살 수 있는 것이다.
마흔여섯이나 된 아들이지만, 여자라고는 엄마 밖에 모른다.
밤 낮을 술친구로 엉켜 사니, 두 모자는 늘 행복하다.
엄마 품보다 더 따뜻한 품이 어디 있겠냐?






지난 7일은 이른 시간부터 두 모자가 취해 있었다.
정용성씨가 나를 보자 자랑부터 해댔다.
“20킬로 쌀을 두 포나 받았어. 19일에는 김치도 10킬로 준대”
돈만 생기면 술값으로 탕진하니, 집구석에 먹을 게 남을 리 만무했다.






올 겨울을 날 수 있는 쌀과 김치를 해결했으니,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술이 좋아도 목구멍에 풀칠은 해야 살지 않겠나.
기분이 좋은지, 엄마는 술이 남은 데도 소주를 두병이나 사오고,
용성이는 담배 값 없다는 사내의 투정에 남은 삼천 원마저 꺼내 준다.



 


동자동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있는 사람이 베풀며, 하루를 다 같이 즐기는 것이다.






두 모자가 주연으로 나온 술자리는 여러명이 조연으로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한 쪽에서는 내일 벌어 질 축제 준비하느라 바빴다.
김정호, 김정길, 유영기씨가 무대에다 레드 카펫을 깔고 있었고,
'동자동 사랑방' 선동수간사는 차를 끌고와 짐을 실어갔다.





그런데,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술 취한 두 사내가 싸움이 벌어졌다. 
가끔 있는 일이긴 하나, 스트레스 푸는 운동 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싸우다 금방 술을 나누기도하니, 원한도 감정도 없는 그런 싸움이다.
그래도 싸움 판은 말리는 사람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






황춘화, 정용성 두 모자가 달라붙어 열심히 싸움을 말리는데,
사발통문 돌리던 쪽방상담소 정수현소장 까지 거들기 시작한 것이다.
연약한 여인네가 취객의 주먹질에 맞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나설까?
기어이 두 사람을 때어 놓으니, 죄 없는 술병에 분풀이를 해댄다.





시멘트 바닥에 축포처럼 터트린 맥주병으로 '동자동 블루스'의 막을 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명절연휴가 이어진 7일의 동자동 '새꿈 공원'은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강교회’에서 나온 빵 나눔 봉사자들이 일을 마치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지만,

대개의 쪽방사람들은 빵보다 밥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연휴가 이어져, 밥 배급 차는 물론 ‘식도락’까지 문을 닫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분들이 많았다.

 

김원호씨와 유정희씨가 단골식당도 문 닫았다며 투덜대어, 가끔 들린 적이 있던 된장집으로 안내했다.

백반 3인분과 막걸리 두병으로 허기를 메우고 있는데, ‘식도락’을 돕던 난순 여사도 식사하러 오셨더라.

모처럼 함께하는 식사라, 꼬불쳐 둔 비상금으로 밥 한 끼 대접했다.

 

식당에 둘러앉았으나, 다들 말이 없었다.

다들 먹고 싶어 먹는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 먹는 것 같았다.

밥 보다는 막걸리가 더 술술 잘 넘어갔다.

 

밥 얻어 먹기가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명절날이라 차례도 올리고 가족들과 지내야 하니, 누가 오갈 때 없는 이를 도울 수가 있겠는가?

원죄가 뭔지는 모르지만, 막장까지 내 몰린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추석명절 날에 집에도 가지 않고 공동차례상을 차리며, 도시락을 나누어 준

“서울역쪽방상담소‘ 직원들이 참 고마운 것이다.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반가운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따라 공원에서 술 마시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식당에서 마신 술이 부족하여, 내가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가 공원 한 구석에다 자리를 깔아놓았는데, 이기영씨가 막걸리 값 모우기 화투 한판 치자는 것이다.

난, 칠 줄을 몰라 남은 천 원짜리 석장을 밑천으로, 이원식이 한테 달라 붙어, 따기도 잃기도 했다.

시간 보내기는 좋았지만, 술 한 잔 얻어마시기는 힘들었다.

 

유행가 가사 한 소절이 생각나 바꾸어 불러본다.

“세상을 원망하랴~ 네 팔자를 원망하랴~
한 푼 없는 독거들아, 행복하게 살아다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문화투데이] 2017년 10월 07일 (토) 00:06:29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지난 어버이날 이어 두 번째 빨랫줄 전시 추석날에도 열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명절날이면 모처럼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온 집안이 시끌벅적 웃음소리가 나지만 명절이지만 더 외롭고 쓸쓸히 보내는 이웃들이 있다.

다행히 이번 추석은 서울시가 쪽방주민에게 고향방문을 지원해 일부는 고향을 찾아갔지만, 쪽방촌에 남아 있는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공원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 동자동을 기록하고 있는 조문호 사진가 Ⓒ 정영신



다큐멘터리 사진가 조문호씨가 오갈 데 없는 쪽방 사람들을 위한 두 번째 위안의 자리인 '동자동 사람들' 사진 나눔전을 지난 4일 동자동 새빛공원에서 열었다.

지난 5월 어버이날에 처음 시도한 빨랫줄전시는 주민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는데, 이날도 그들에게 즐거운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 빨래줄 전시를 구경하는 주민의 모습 Ⓒ 정영신



동자동 사람들은 빨래줄에 걸린 사진을 보면서 “어! 여기 용성이 사진 있네, 라면 먹고 있잖아”, “준기 썬그라스 죽이는데!” 등 사진을 들여다보며 마치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듯 이야기꽃이 피우기 시작했다.

또한 동자동 ‘나눔의 집’에는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마련한 추석한가위 합동제례가 열리고 있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차례대로 들려 술을 올리며 조상에게 큰 절을 올렸다. 고향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조상을 찾아뵙지 못한 불효 때문인지 침울해 보였다.

    

▲ 추석한가위 합동제례에 함께한 주민이 절을 하고 있다 Ⓒ정영신



쪽방은 도시 빈민 주거형태로 1997년 IMF 이후 저임금 단순일용직 도시빈민이 발생하면서 노숙의 위기에 처한 빈곤 계층의 마지막 숙소다. 쪽방하나에 대락 15만원에서 23만원에 이르지만 돈만 있으면 곧바로 입주가 가능한데, 서울에만 다섯 군데의 쪽방촌이 있다.

    

▲ 도시락을 받아와 딸과 밥을 먹는 엄마의 모습 Ⓒ정영신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점심시간에 맞춰 주민들에게 도시락과 붉은 사과 한 알씩 나눠 주기도 했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뒤에는 도시락과 사과를 안고 흐뭇해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쪽방에서 일년남짓 살았다는 김모씨(65)는 처음에는 먹는 것 때문에 줄서는게 부끄러워 굶는 쪽을 택했다가 옆방의 동생이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선 후로는 일상처럼 편해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세번까지는 부끄럽던게 나중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고 했다.



    

▲ 점심시간에 맞추어 도시락을 받기위해 줄을 서고 있다 Ⓒ정영신



한쪽에서 한 여인이 도시락을 펼쳐 딸아이 입에 밥을 넣어주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빨래줄 사진전에서 이변이 생겼다. 작은 남자 한 분이 나타나 전시된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 몇 장을 골라 '도끼로 목을 친다'는 등 끔찍한 욕설을 입에 담아가며 박박 찢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현장을 지켜보던 김원호 어르신이 화를 내며 사진을 찢는 사람더러 나무라기도 했으나 조문호 사진가는 제지시키기는 커녕 빙그레 웃고 있었다.



    

▲ 본인의 사진을 들고 좋아하는 김용만씨 Ⓒ 정영신


사진가 조문호는 쪽방사람이다. 일년 전부터 동자동쪽방촌으로 이주에 살면서 사진작업을 해오고 있다. 일년이라는 시간을 그들과 함께 했는데도 불구하고 초상권을 빌미로 시비 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한참 소동을 부리던 사람이 떠나자, 또 다른 사진 주인공들이 나타나 싱글벙글 자기 사진을 골라갔다. 동자동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조문호 사진가에게 앞으로 작업에 대해 물어보았다.



    

▲ 본인의 사진을 들고 있는 이기영씨 Ⓒ 정영신


그는 “일년으로 동자동기록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솔직히 사진쟁이로서 욕심도 생겼다. 빈민들이 사는 쪽방촌이 서울에만 5군데라고 하는데 동자동을 거점으로 다섯 군데 다 기록하고 싶다. 한 지역을 2년만 잡아도 10년이란 세월이 걸린다.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모르지만 쪽방촌을 기록하고 싶다. 또한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빨래줄 전시도 매년 어버이날과 추석날로 정해, 앞으로도 전시를 계속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 쪽방에 들어앉아 책만 본다는 조장섭씨 Ⓒ 정영신



쪽방촌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친구삼아 살아간다. 제아무리 멀쩡한 사람도 쪽방에서 일년만 지내면 반쯤은 미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이 쪽방촌이라며 외로움을 이기지못해 자살도 시도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차별없이 존중받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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