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뒤집힐 것 같은 천둥소리에, 무슨 죄가 그리 많은지 화들짝 놀랐다.
살 빠진 우산하나 받쳐 들고, 행여 별일 없나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바삐 가는 젊은이가 한 둘 보였으나, 동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민방위훈련이라도 하는 듯, 공원은 적막 속에 쌓여있었다.
비에 젖은 쓸쓸한 풍경은 마치 인간이 사라진 미래를 보는 듯 침울했다.






사람이 그리워 무작정 공원 옆에 있는 쪽방 건물로 올라갔다.
다들 방안에서 알 낳는지, 인기척도 없었다. 
연락도 없이 두드릴 수가 없어 3층으로 올라갔더니,

원용희씨가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방이나 마찬가지지만, 쪽방은 한 사람만 더 들어가도 답답하다.
방에 억지로 끼여 앉았는데, 방이 좁아  다리도 펼 수 없었다.
한 달에 난방비를 포함하여 17만원이라니, 싸긴 싸더라.

남대문경찰서 조사계 조순경인데, 조사할게 있다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세상에! 쉰밖에 안된 나이에 마누라와 생이별한지 30년이 가깝다고 했다.

마누라는 상주에서 농사 짓는데,
코딱지만한 땅덩이라 양식 정도 해결할 정도란다.
이제 다 큰 아들과 딸 뒷바라지가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30여년을 돈 벌기 위해 서울 변두리로 전전하며 폐지를 줍는 등, 안 해본 일이 없단다.
지금은 카톨릭 평화의 집에서 도시락 나눔을 도와주며, 한 달에 28만원 받는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비까지 합하여 80만 원 정도 생기지만, 매달 50만원을 시골에 보내 준단다.
30만원으로 방세 내며 사는데. 줄담배인 담배 값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대도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말하는 천하태평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은 추석과 구정뿐이라는데,
명절만 이산가족 만나는 날이었다.






항상 웃으며 힘들어도 세상 원망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착하게 사는 순진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온갖 세상 설음 다 가진 듯, 불만에 찬 내 모습이 비쳐졌기 때문이다.





당신은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란다.
자식들은 시골에서 살지라도, 마누라라도 데려와 함께 살고 싶다는 것이다.
수입이 조금만 더 생기면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큰 방으로 옮길 것이라며, 부푼 꿈을 키웠다.

지금은 천주교 세례 받을 준비도 한단다.






이 험한 세상을 착하게만 사니, 힘들게 살 수 밖에 없다.


서울시에서 가난한 원용희씨에게 영구임대주택 한 칸 줄 수 없나?

30년 가까이 서울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남들처럼 제대로 된 댓가도 못 받은채 희생했으니, 자격은 있을 듯 싶다.
다른 사람은 짝이 없어 외롭게 살지만, 있는 짝도 생이별한 채 살아야 하나?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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