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사진의 섬 송도'가 오는 10월5일부터 7일까지 포항 송도 코모도호텔에서 열립니다. 
조문호의 '사람들' 사진전은 218호에서 열리는데, 시간 되는 분은 놀러 오십시오.

 223호에서 열리는 정영신씨의 장터사진을 비롯해 많은 작가들이 참여합니다.
,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정보교류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돈이 있으면 있을수록 인간성과 정은 메말라가고,
돈이 없는 사람은 정을 나누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걸,
동자동 추석 한마당 잔치를 보며, 다시 한 번 느낀다.

아무 것도 아닌 돈이, 인간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추석을 이틀 앞 둔, 지난 22일 동자동 새꿈 공원에서 동자동 주민 잔치가 열렸다.
다 같이 명절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올 해로 아홉 번째인 이 행사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마련했다.
주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주민들의 손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가난한 사람들 끼리 함께 나누고, 즐기는 좋은 자리다.






투호, 윶놀이 등의 민속놀이와 함께 노래자랑까지 즐기고,
닭개장, 송편, 파전, 돼지고기에다 반주까지 곁들인 잔치상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걸 보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배가 불렀다.






사실 가난한 쪽방주민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더 어려운 노숙자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내가 동자동에서 이 행사를 맞은 지가 벌써 세 번째지만, 해마다 연이 맞지 않았다.
첫 번째는 입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몰랐고,
두 번째는 행사 날 전해주기로 한 사진 제작이 늦어 못 보고 말았다.
그 이튿날 별도의 빨래줄 전시로 약속은 지켰지만...





올 어버이날 행사 때도, 빨래줄 전시로 사진을 나누어 주었지만,
사랑방 조합 이사 한 분의 시비로 더 이상 빨래줄 전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찍을 때마다 수시로 사진을 만들어 주기로 했으나, 그게 말 처럼 싶지 않았다.






빨래줄 전시를 하면 억지라도 밀어붙여, 한꺼번에 사진을 만들지만,
거지 주제에 수시로 사진을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빚쟁이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사진은 언제 주냐고 물었고,
잔치에서는 사진전시는 왜 안 하냐고 물었지만, 답을 할 수 없었다.
다음에~ 다음에~만 노래 불렀다.






그런데, 이번에도 자칫하면 추석 잔치를 놓칠 뻔했다.
의례 추석 전 날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틀 전으로 바뀐 걸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 날이 토요일이라 빵 타러 공원에 내려갔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받은 빵은 먹을 틈도 없이, 반가운 사람만나 인사 나누며, 사진 찍느라 바빴다.
봉사하는 주민들은 음식 나르느라 눈코 뜰 새 없었지만, 다들 맛있게 먹었다. 






난, 배가 고프지만 끼어들지 않았다. 먹을 시간도 없지만, 먹는 게 귀찮았다.
이 쯤 되면 밥 숟가락 놓고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행사가 끝나면 방에 올라가 빵으로 해결할 작정이었는데,
나를 눈여겨 본 사랑방 선동수간사께서 나를 위해 한 상 차려 온 것이다.
곧 노래자랑 할 시간이라 먹을 시간이 빠듯했지만, 너무 고마웠다.






따뜻한 배려에 감동 받아, 한 쪽 구석에 자리 잡았는데,
시간이 없어 허급지급 먹다보니, 그만 입술을 깨물어버렸다.





아이쿠! 이건 분명 천벌 받은 것이다.
밥을 우습게 여겼고, 일도 돕지 못하면서 새로운 밥상을 차리게 한 죄였다.






이어,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손님들은 다 떠나고, 동자동 새꿈공원을 주름잡는 단골주민과 동자동 사랑방 식구들만 남았다.
천 원씩으로 노래 신청한 사람은 스물 다섯명인데, 다들 한 가락 하는 분이었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은 춤을 추었는데, 참 잘 놀았다.
돈이 없어 그렇지, 신명 하나는 끝내 주었다.






노래자랑이 끝나고 심사결과가 나왔는데, 예상을 뒤엎었다.
다른 사람처럼 멋 부린 노래가 아니라,
다소곳하게 부른 황옥순 할머니가 최고상을 받은 것이다.






그 분은 '새꿈 공원'의 지킴이나 마찬가지다.
공원의 트레이드마크 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신다.
온갖 술꾼들의 거친 행동을 통제하고, 주변 쓰레기까지 정리 한지가 오래되었다,
그래서 준 인기상이 아니라, 노래를 잘 불러 받았는데, 다들 좋아하며 축하했다.





황옥순 할머니 외에도, 여러 가지 대회에서 상 받은 분들이 많다.

이대영, 이정애, 강동근, 조인형, 김성현, 조창현씨 외에도 성함이 기억나지 않는 여러명이 더있다.





사람 사는 것이란, 아무 욕심 없이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노는 게 답이더라.
그 답을 보여준, 동자동 사람들, 화이팅! 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일요일은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서 개기는 날입니다.
노트북으로 호작질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들 햇님이가 며느리될 지현이를 데리고 왔네요.
결혼식 날 입히려고 맞추어 둔 양복을 찾아 왔는데, 복에 없는 양복 한 벌 생긴 셈이지요.
처음 이야기 나왔을 때는 안 입는다고 손사래 쳤으나,

아들 입장도 생각하라는 정영신씨의 은근한 압력에 꼬리 내렸습니다.

걱정이 태산이더이다.





내가 무슨 배우도 아니고, 하루 입으려고 거금 40만원을 들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깁니까?
차라리 관속에서 입을 수의나 한 벌 만들어주면, 이 더운 날 얼마나 좋겠습니까?
돈도 돈이지만, 보나 마나 촌놈 장에 갈려고 차려입은 폼일 테니까요.





코 구멍한 집구석에 두 사람이 들어오니 앉을 자리도 없는데다, 먹일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기껏 정선서 따온 토마토 갈아 낸 쥬스와 참외 두개 뿐이었어요.
마음이 편치 않은 정영신씨가 그렇게 보낼 수 없다며, 저녁식사를 약속했어요.

은평구청 앞의 보쌈집에서 다시 만난 거지요.






여자가 여자 심정 안다고 지현이를 위해 음식을 여러 가지 시켰어요.
만두도 세 가지나 포장하고, 활인마트에서 과일까지 사서 챙겨주더군요.
임신 한지가 다섯 달이니, 먹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라는 걸 알아 챈 것 같아요.
함평댁 정영신씨의 살가운 인정이야 아는 사람은 다 알지요.






자식들이 간 후 양복을 입어보았더니, 꾸어다 놓은 보살자루 같았어요.
더구나 넥타이를 매니 답답해서 못 견디겠어요.
웬만하면 광대노릇 하는 셈치고 하루만 견디려 했으나,

몸이 편치 않아 짜증스러우니 손님인들 편하겠어요. 쌍놈 체질이라 어쩔 수 없어요.
그래서 노타이로 와이셔스 대신 색깔 있는 셔츠를 입었는데, 가관이었습니다.
마치 곡마단 앞에서 바람 잡는 늙은 광대 꼬라지 그대로 였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정영신씨 염장지런다고 헛소리를 삘삘 했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듯이, 우리도 흘레식이나 한 번 할까?"
함평댁 정영신씨의 대꾸가 재밋습니다.


“워메 어짜쓰까이, 씨오쟁이 짊어지고  장에 따라 나서겠다고 허네,

꿈도 꾸지 맛시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사고는 사고인데, 분명 경사인 것 같습니다.
아들 햇님이가 지현이에게 장가도 가기 전에 애를 배게 했거던요.
속도위반으로 날아오는 딱지는 내가 다 해결 할 테니, 얼마든지 위반하라고 했습니다.
난, 법을 우습게 아는 범법자 아닙니까.






그래서 결혼을 서둘게 되었다는데, 나야 일타 쌍피라 좋지만 기분은 좀 그렇더라.
이젠 할아버지 소리를 피할 수 없으니, 내 청춘은 우짤고?


사정은 이야기 않고 느닷없이 결혼식 올리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부자지간에 돈 한 푼 없는 개털이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날짜만 다가오니, 이판사판 부딪혀 볼 수밖에 없다.
설마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겠냐마는, 문제는 천오백만원이나 되는 예식비용이다.
잘 못하면 신혼여행은 커녕 신랑신부가 예식장에 잡혀 일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돈과는 인연이 없으니,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금실 좋게 살며 자식이나 잘 키워라.






지난주에는 한 달에 한번 가는 정선으로 떠났다.
한번 갔다 오는 비용이 오만원이나 들지만,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농작물도 살펴야 하지만, 무덤에 계신 울 엄마한데 자랑 질 할 일이 더 급했다.
머지않아 증손자 보게 되었다는 희소식을 어찌 전하지 않고 견딜소냐.






텃밭에는 고추와 방울도마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실소를 머금케 하는 것은, 고추밭에서 다산과 번창하는 자손이 연상되는 건 또 뭔가?
능력만 있으면 자손들도 고추나 토마토처럼 주렁주렁 열렸으면 좋으련만,
돈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할 세상이 아니던가?
세상에 빚지지 않을 만큼, 둘만 낳아 잘 키워주길 부탁한다.






소식 전하려 만지산 산소부터 올라갔다.
속도위반한 아들을 닮았는지, 무덤가엔 성급한 코스모스가 만발했다.
마치 경사를 축하하듯 너울거렸다.
아마 살아 계셨다면, 울 엄마가 제일 좋아하실 거다.

“햇님이가 장가도 가기 전에 애부터 가졌습니더! 벌써 다섯 달이 되었다네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엄마가 좀 보살펴 주이소!”라며 엎드려 빌었다.
“햇님이와 며느리 될 색시는 와 안 데려왔노?”라고 묻는 것 같아,
“똥 오줌 못 가릴 정도로 바빠 증손자 보면 함께 올 게요”라며 변명했다,






오후엔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따고, 잡초 잡는 일에 시간을 다 보냈다.
끼니는 동자동에서 먹던 빵을 챙겨 갔으나, 좀처럼 먹을 틈을 주지 않는다.
옆집의 윤인숙씨가 밥 때 되기가 무섭게 불러대기 때문이다.






밥 얻어먹으러 갔더니, 앞마당 바닥 데크를 넓혀놓았는데, 춤을 추어도 되겠더라.
찾아 온 낯선 손님들에게 닭백숙을 대접하고 있기에 숱 가락 하나 걸친 것이다.
요즘 시골에서는 대마씨 효능을 알아차려 닭백숙에도 넣어 끓이는데, 그 맛이 아주 독특했다.

아마 귤암리 대마농사가 재개될 조짐까지 보였다.






서울은 언제 가냐고 묻길래, 내일 아침에 떠난다니, 아침도 같이 먹고 가란다.
어렵사리 틈내어 정선 갔으면, 넉넉하게 쉬었다 왔으면 좋으련만,
동자동에 꿀단지 숨겨 둔 것도 없는데, 가자마자 떠날 채비부터 한다.
그래도 이번엔 아들 결혼식이 눈앞에 다가 왔다는 핑계거리라도 있다.






그나저나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보내야 하는데, 마치 고시서 보내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몇몇 분만 청첩장을 보내고, 정보만 드린다.





“조햇님, 남지현의 결혼식이 8월25일 오전11시, 종로구 자하문로255(부암동) ‘하림각’에서 있습니다”
부디 잘 살도록 많이들 축하해 주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토요일 자정무렵,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렸다.
여름 쪽방에서 정전된 건 처음 있는 일인데, 숨이 턱턱 막혔다.
더운 바람이라도 돌려주는 선풍기의 고마움을 새삼 절감했다.
그런데, 건물 전체가 정전된 것이 아니고, 내방만 나간 것이다.

다들 잠 잘 시간이니, 연장 빌릴 곳도 없었다.
라이터 불을 치켜들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천정의 배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는데,
이 지긋지긋한 밤을 보내려면 노숙하는 방법 뿐이었다.

잘 곳을 찾아 공원 주변을 돌아보니, 자는 모습도 다양했다.
어떤 이는 폐지 모은 리어카 위에서 자는 이도 있고,
돌 난간에서 아슬아슬하게 자는 사람도 있었다.

옆 사람 배에 다리를 걸치고 자는 등 각양각색이었다.






쓰레기터 옆에는 유정희, 정용성씨가 늦도록 술을 마시고 있었고,
용성이 모친 황춘화씨는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윗옷을 벗어 보기가 그런지 유정희씨가 이불로 슬쩍 덮었다.


유정희씨는 일 년도 더 된 일을 나만 보면 노래를 불러댄다.
김원호씨와 밥 한 끼 사준 적이 있었는데, 그 된장찌개 맛을 잊을 수 없단다.
사실, 잦은 술자리에서 나눌 이야기가 뭐 있겠는가?
사는 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마시고 자는 일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 곳은 주변이 어지러워, 명당으로 꼽히는 DB빌딩 쪽으로 옮겼다.
1층과 2층 통로로 맞바람이 불어 더위 먹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단지 건물관리인이 없는 자정에서부터 새벽 4시 반까지만 가능하다.
술 좋아하는 자들은 엄두를 못 내지만, 잠 잘 사람만 모인다.






열두 명이 더러 누웠으나, 한 쪽 구석에 자리 펼 곳이 남아 있었다.
빌려 온 파지박스를 깔아 누워보니, 천국이 따로 없더라.
이렇게 시원한 맞바람이 부는 곳에서 언제 자본 적이 있었던가?


칼잠 자는 버릇에 귀를 바닥에 대고 누웠더니, 자동차 바퀴 소리가 요란했다.
땅에서 울리는 진동이 입체음향으로 들려오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잘도 잤으나, 초짜라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니, 소음도 음악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엔진소리와 바퀴 구르는 소리도 리듬이 있었다.


갑자기 “뿌드득 뿌드득“하는 개구리 울음소리도 간간히 들렸다.
귀신도 못사는 요지경 서울에 어찌 개구리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자세히 들어보니, 옆자리에서 이빨 가는 소리였다.

세상살이 무슨 원한 그리 많아 이빨까지 갈아 샀는가?


잠 잘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도 남지 않았다.
소음을 자장가 삼아 서둘러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름하여 ‘서울 야상곡’ 들으며 잠시 눈을 붙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다들 떠날 채비하고 있었다.
나 역시 쫒겨나기 전에 전기공사하러 쪽방에 올라갔다.
천장에 손 들어갈 수 있는 구멍부터 후벼 팠는데,
땀과 합판 부스러기가 범벅되어 죽을 맛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끊어진 전선을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청소하랴! 물 뒤집어쓰랴! 바삐 정리하고 나니,
그때사 무슨 일이 있었냐며 물어오기 시작했다.
전기가 똥개 훈련시켰다고 투들거리며 자리에 누웠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다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에 잠을 깼다.
한동안 다리를 부여잡고 꼼짝을 못했는데, 왜 갑자기 근욕 통이 왔을까?
시멘트 바닥의 찬 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난공사에 용을 쓰서 그럴까?

더운 날씨에 병원 오 갈 생각하니,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씨발!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

사진, 글 / 조문호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다들 더위 먹은 개처럼 헉헉거린다.

팻말 들고 구원 받으라는 전도사도 덥긴 마찬가지다.
이놈의 날씨는 하느님 말씀도 듣지 않는다.
날씨도 세상도 다 미쳤나보다.





그래도 늦은 밤이 되면 좀 살만하다.
노숙거사처럼 아무 곳이나 누울 배짱은 없으나
설렁 설렁 돌아다니는 것만도 시원하다.

비탈 건물 계단은 맞바람이 통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낯 시간은 얼씬도 못하지만,
밤 늦은 시간은 우리들 세상이다.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7일 새벽 일찍 정선으로 떠났다.

피서를 겸해 좀 쉬었다 왔으면 좋으련만, 겨우 2박3일의 일정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지만, 느긋하게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만지산에 당도하니, 옥수수 밭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멧돼지가 쳐들어 와 난장판을 벌인 것이다.
알맹이라고는 한 알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 치워버렸다.






옥수수 챙겨주기로 한 약속들도 결국 헛소리가 되고만 것이다.

우리 밭만 전기 철조망을 설치하지 않았으니 한 해 걸러 당하는 일이지만,
전기 철조망까지 쳐가며 농사짓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주렁주렁 열린 고추에는 옆집에서 시키지도 않은 농약을 쳤다고 한다.
한 집만 농약을 치지 않으면 모든 고추가 탄저병이 걸린다는 이유인데,
농약 없는 유기농 풋고추 먹으려는 노력 또한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이리저리 망친 농사에 답답해 하는 중에 가족들이 찾아왔다.






동생 조창호, 큰누님 조영희, 김순화 형수, 조카 영란이가 찾아 와 산소에 올라갔다.
어머니 무덤에 절 올리며 나눈 대화는 햇님이 장가가는 이야기 뿐이었다.
다들 신부 얼굴을 보지 못해 궁금해 하니, 영란이가 핸드폰을 뒤져 신부 사진을 찾아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산 위에서 블로그 사진을 꺼내 볼 수 있다니...






점심식사를 한 후 가족들이 돌아가고 나니, 혼자 바빠졌다.
냉장고가 정전되어 모든 음식물이 썩어 있었는데,

손님 오면 대접하려고 아껴 둔 돼지고기까지 몽땅 버려야 했다.
어찌된 일인지, 밖에 노출된 배전함 스위치가 내려져 있었다.






뒤늦게 냉장고 청소하랴, 집 청소하랴, 똥 오줌 못 가릴 정도로 부산을 떨어댔다.

더위에 지친 사정을 알았던지, 옆집에서 술 한 잔하자는 기별이 왔다.
옆집의 윤인숙씨가 이웃 최재순, 한순식씨와 함께 염소 탕을 안주로 술판을 벌여 놓았단다.






술 자리에서 기가 막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가 누군가가 던져놓은 독약 묻은 고기를 먹고 즉사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우리 집 정전도 누군가의 해코지가 아닌지 의심되었다.
지하수 분쟁에 대한 화풀이라는 추측이 나왔으나, 아무런 물증은 없다.

이젠 산골짜기에도 씨씨티브이를 설치해야 할 형편이다.
어쩌다 순박한 산골 인심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마침, 아랫동네 최연규씨가 나타나 그의 구수한 옛이야기에 잠시나마 즐거울 수 있었다.

뗏꾼들이 즐겨 찾았던 '전산옥'의 살 냄새 풍기는 이야기에서 부터
‘정선아리랑시장’에서 떡메치기 훈수 두던 우스개로 좌중을 웃겼다.


“너무 많이 치면 아파요. 잘 안되면 물 좀 살살 발라 쳐요.”






술이 취해 방으로 돌아오니, 평소에는 정겹게만 보이던 벽의 사진이나
온돌 열기에 그을린 포스터까지 귀신 나올 집처럼 음산해 정나미 떨어졌다.
사실,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무서운데 말이다.






날이 밝아오니, 어제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마당 아래 핀 도라지꽃은 장관을 이루었고, 배나무엔 돌배가 주렁주렁 달렸다.





동강 댐이 무산되어 다들 배나무를 뽑아낼 때, 한 그루 옮겨 심어 놓았는데,
20여 년 동안 가꾸지 않고 버려두었더니, 자연스럽게 돌배가 된 것이다.
그것도 돌배 술을 만드니 호흡기 나쁜 나에게는 도랑치고 게 잡는 격으로,
최고의 약인 셈이다.






그 이튿날은 하루 종일 잡초와의 전쟁을 벌였는데,
잡초 더미 속에서 탐스러운 호박이 굴러 나오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생활에 정들어 어머니까지 모셨으나,

사람들이 자꾸 마음을 뜨게 만드네. 



 


어쩌면 피하지 못할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빼지도 박지도 못할 처지에 한 숨만 나온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토요일은 아침부터 반갑지 않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허기 때우려 새꿈 공원에 빵 타러 갔더니, 마음까지 축축했다. .
비가 와도 빵 주는 '한강교회'사람이나, 빵 타기 위해 줄 선 노숙자나 힘든 것은 다 마찬가지다.





난, 노숙자는 아니지만, 빵으로 끼니 때우기를 즐긴다.
어디서나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니, 버릇 된지 오래다.
그러니 빵 나누어 주는 행렬엔 노숙자들이 더 많다.
그 빵이면 삼일을 버틸 수 있으니, 노숙자에겐 최고의 밥이다.






오후에는 공원 아래 둥치 튼 ‘황야의 무법자’ 캠프에 들렸다.
그 곳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환대받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지들 주머니보다 내 주머니가 더 무거우니까.
막걸리 세병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가까지 나온다.






원종훈을 좌장으로 이경환, 강 원, 박상일 등 넷이서 지키지만,
조연배우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거지도 많다.
그 놈의 담배 값이 너무 비싸, 술보다 더 목 타게 하는 것이 담배다.
한 대 얻어 피우려고, 담배 피우기만 기다리는 시선들이 따갑다.






버려진 천으로 하늘을 가렸지만, 마시다 보면 온몸이 비에 젖을 수밖에 없다.
속옷까지 젖어 우들우들 떠는 원이의 이빨 부딪히는 소리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쪽방에 기어올라 입지 않는 겨울 옷을 갖다주니,
지 애비 같은 나를 “형님은 죽으면 천당 갈 것”이란다. 이 썩을 놈~






그날 술상 안주는 푸짐했다.
어디서 얻었는지 해물탕 그릇이 놓여 있고, 빵 타는 날이라 술상에 빵 봉지가 너부러졌다.
비닐 벗긴 빵은 이미 빗물에 물러 버렸고, 종이 막걸리 잔에도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경환이 부르는 ‘긴 머리 소녀’에 갑자기 죽은 적음선사가 생간난다.
머리 털 하나 없는 중놈이 부르는 청성 맞은 노래에 다들 배꼽 잡지 않았던가.
그런데, 경환의 노래는 나를 슬프게 했다.
적음선사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노래에 경환의 애환이 실려 있었다.






공단에 들어간 어린누이는 없지만, 말 못할 소녀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기 때문이다.
집나간 지 오래된 애미보다 찰떡이 목에 걸려 돌아가신 할매가 보고 싶단다.
다들 눈물 마른지 오래지만, 이 날은 빗물이 눈물 되어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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