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새벽 일찍 정선으로 떠났다.

피서를 겸해 좀 쉬었다 왔으면 좋으련만, 겨우 2박3일의 일정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지만, 느긋하게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만지산에 당도하니, 옥수수 밭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멧돼지가 쳐들어 와 난장판을 벌인 것이다.
알맹이라고는 한 알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 치워버렸다.






옥수수 챙겨주기로 한 약속들도 결국 헛소리가 되고만 것이다.

우리 밭만 전기 철조망을 설치하지 않았으니 한 해 걸러 당하는 일이지만,
전기 철조망까지 쳐가며 농사짓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주렁주렁 열린 고추에는 옆집에서 시키지도 않은 농약을 쳤다고 한다.
한 집만 농약을 치지 않으면 모든 고추가 탄저병이 걸린다는 이유인데,
농약 없는 유기농 풋고추 먹으려는 노력 또한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이리저리 망친 농사에 답답해 하는 중에 가족들이 찾아왔다.






동생 조창호, 큰누님 조영희, 김순화 형수, 조카 영란이가 찾아 와 산소에 올라갔다.
어머니 무덤에 절 올리며 나눈 대화는 햇님이 장가가는 이야기 뿐이었다.
다들 신부 얼굴을 보지 못해 궁금해 하니, 영란이가 핸드폰을 뒤져 신부 사진을 찾아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산 위에서 블로그 사진을 꺼내 볼 수 있다니...






점심식사를 한 후 가족들이 돌아가고 나니, 혼자 바빠졌다.
냉장고가 정전되어 모든 음식물이 썩어 있었는데,

손님 오면 대접하려고 아껴 둔 돼지고기까지 몽땅 버려야 했다.
어찌된 일인지, 밖에 노출된 배전함 스위치가 내려져 있었다.






뒤늦게 냉장고 청소하랴, 집 청소하랴, 똥 오줌 못 가릴 정도로 부산을 떨어댔다.

더위에 지친 사정을 알았던지, 옆집에서 술 한 잔하자는 기별이 왔다.
옆집의 윤인숙씨가 이웃 최재순, 한순식씨와 함께 염소 탕을 안주로 술판을 벌여 놓았단다.






술 자리에서 기가 막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가 누군가가 던져놓은 독약 묻은 고기를 먹고 즉사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우리 집 정전도 누군가의 해코지가 아닌지 의심되었다.
지하수 분쟁에 대한 화풀이라는 추측이 나왔으나, 아무런 물증은 없다.

이젠 산골짜기에도 씨씨티브이를 설치해야 할 형편이다.
어쩌다 순박한 산골 인심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마침, 아랫동네 최연규씨가 나타나 그의 구수한 옛이야기에 잠시나마 즐거울 수 있었다.

뗏꾼들이 즐겨 찾았던 '전산옥'의 살 냄새 풍기는 이야기에서 부터
‘정선아리랑시장’에서 떡메치기 훈수 두던 우스개로 좌중을 웃겼다.


“너무 많이 치면 아파요. 잘 안되면 물 좀 살살 발라 쳐요.”






술이 취해 방으로 돌아오니, 평소에는 정겹게만 보이던 벽의 사진이나
온돌 열기에 그을린 포스터까지 귀신 나올 집처럼 음산해 정나미 떨어졌다.
사실,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무서운데 말이다.






날이 밝아오니, 어제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마당 아래 핀 도라지꽃은 장관을 이루었고, 배나무엔 돌배가 주렁주렁 달렸다.





동강 댐이 무산되어 다들 배나무를 뽑아낼 때, 한 그루 옮겨 심어 놓았는데,
20여 년 동안 가꾸지 않고 버려두었더니, 자연스럽게 돌배가 된 것이다.
그것도 돌배 술을 만드니 호흡기 나쁜 나에게는 도랑치고 게 잡는 격으로,
최고의 약인 셈이다.






그 이튿날은 하루 종일 잡초와의 전쟁을 벌였는데,
잡초 더미 속에서 탐스러운 호박이 굴러 나오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생활에 정들어 어머니까지 모셨으나,

사람들이 자꾸 마음을 뜨게 만드네. 



 


어쩌면 피하지 못할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빼지도 박지도 못할 처지에 한 숨만 나온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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