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의원 죽음으로 몇 일동안 슬픔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자괴감에 다음 세상이 있는가의 고민도 따랐다
저 세상에서라도 못 다한 진보정치의 뿌리를 내려, 다 잘사는 평등의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보정치의 롤 모델이었던 그가 없는 세상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지난 26일 오후 무렵, 연세대학교 대강당에 마련된 고 노회찬 의원 추모식장을 찾았다.

추모 나흘째이자 발인을 하루 앞둔 이날까지 빈소가 마련된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 긴 조문 행열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의 차별도 없었고, 노동자이건 국회의원이건 다 같이 순서를 기다리며 추모했다.

노 의원에 대한 추모 글이 적힌 노란 포스트잇은 현수막을 넘어 빈소 앞 까지 빼곡했다.

  

추모문화제가 열린 1600석의 대강당 1·2층은 일찌감치 꽉 들어찼다.

강당에 들어오지 못한 많은 분들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추모제를 지켜봐야 했는데,

여러분 함께 가시겠습니까?” 라는 노회찬 의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차마 카메라를 들 수 없어, 한 쪽 구석자리에 앉아 추모식을 지켜보았다.

사진을 찍으려면 여기 저기 돌아다녀야 하지만그 날만은 조용히 추모하고 싫었다.



 


유시민씨는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없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추모문화제 사회를 맡은 김미화씨는 제가 의원님께 장미꽃을 받았지만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장미꽃 대신 국화꽃 한 송이를 놓게 됐습니다 울먹였다.

객석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배우 박중훈씨는 평소 의원님이 해주신 말씀이

"말 잘하는 사람보다 행동 잘하는 사람을 더 존경하고,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글 잘 쓰는 사람을 인정한다며,

그중에서도 우위에 있는 사람은 단연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쳐주셨다. 제가 노회찬 의원님을 따르고 형님으로 존경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성향이나 생각을 떠나 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일생을 던진 그런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대형 스크린에 고 노회찬의원이 나와 말했다.

아들·딸 같은 수많은 직장인이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이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쳐왔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 손이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다.” 

몸은 죽었지만 정신은 살아 있는 듯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추도사에서 사시사철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닌 대표님이 생각난다며,

살아계실 때 구두 한 켤레 못 사드린 게 마음에 걸린다"며 아쉬워했.


KTX 해고승무원으로 최근 복직이 결정된 김승하씨는 님은 우리를 지키려고 평생 살아오셨으나 우리는 님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죄송하고 죄송하다. 이제 노회찬 의원님이 남기신 뜻을 세상의 모든 약자들이 모여 펼쳐나가겠다.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옆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모습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친구들은 노회찬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슴 속에 고이 묻어 영원히 간직하였습니다.

노회찬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며 고인의 중학교 친구 김봉룡씨가 추도사를 읽었다.


그리고 고인의 큰 조카인 노선덕씨가 유가족을 대표해 추모객들에게 인사 드렸다.

한 때 노씨는 고민이 생겨 큰아버지께 조언을 구하러 간 적이 있단다.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 수 없을 때는 가장 어려운 길을 걸으라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하셨다면서 이젠 삶의 이정표가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 추모사에 나선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한 동안 마이크 잡은 손이 떨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저는 노회찬 없는 정치,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노회찬의 꿈이 제 꿈이고 우리 정의당의 꿈이고,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라고 저는 믿습니다.

끝까지 우리 대표님하고 함께 가겠습니다.”


울먹이는 심상정 의원의 모습에 참았던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그만 일어서야 했다.

추모석을 향해 카메라를 겨누었으나, 눈물에 가려 파인더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눈물 흘리며 인간 노회찬을 그리워했고,

초지일관 신념을 지켜온 정치인 노회찬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노회찬 의원의 자결은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다.

살신성인의 그 정신은 약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는 토양을 만들었다.

진보정치가 추구하는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기름을 부었다.





이제 부디 세상사 모두 잊으시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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