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사고인데, 분명 경사인 것 같습니다.
아들 햇님이가 지현이에게 장가도 가기 전에 애를 배게 했거던요.
속도위반으로 날아오는 딱지는 내가 다 해결 할 테니, 얼마든지 위반하라고 했습니다.
난, 법을 우습게 아는 범법자 아닙니까.






그래서 결혼을 서둘게 되었다는데, 나야 일타 쌍피라 좋지만 기분은 좀 그렇더라.
이젠 할아버지 소리를 피할 수 없으니, 내 청춘은 우짤고?


사정은 이야기 않고 느닷없이 결혼식 올리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부자지간에 돈 한 푼 없는 개털이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날짜만 다가오니, 이판사판 부딪혀 볼 수밖에 없다.
설마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겠냐마는, 문제는 천오백만원이나 되는 예식비용이다.
잘 못하면 신혼여행은 커녕 신랑신부가 예식장에 잡혀 일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돈과는 인연이 없으니,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금실 좋게 살며 자식이나 잘 키워라.






지난주에는 한 달에 한번 가는 정선으로 떠났다.
한번 갔다 오는 비용이 오만원이나 들지만,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농작물도 살펴야 하지만, 무덤에 계신 울 엄마한데 자랑 질 할 일이 더 급했다.
머지않아 증손자 보게 되었다는 희소식을 어찌 전하지 않고 견딜소냐.






텃밭에는 고추와 방울도마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실소를 머금케 하는 것은, 고추밭에서 다산과 번창하는 자손이 연상되는 건 또 뭔가?
능력만 있으면 자손들도 고추나 토마토처럼 주렁주렁 열렸으면 좋으련만,
돈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할 세상이 아니던가?
세상에 빚지지 않을 만큼, 둘만 낳아 잘 키워주길 부탁한다.






소식 전하려 만지산 산소부터 올라갔다.
속도위반한 아들을 닮았는지, 무덤가엔 성급한 코스모스가 만발했다.
마치 경사를 축하하듯 너울거렸다.
아마 살아 계셨다면, 울 엄마가 제일 좋아하실 거다.

“햇님이가 장가도 가기 전에 애부터 가졌습니더! 벌써 다섯 달이 되었다네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엄마가 좀 보살펴 주이소!”라며 엎드려 빌었다.
“햇님이와 며느리 될 색시는 와 안 데려왔노?”라고 묻는 것 같아,
“똥 오줌 못 가릴 정도로 바빠 증손자 보면 함께 올 게요”라며 변명했다,






오후엔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따고, 잡초 잡는 일에 시간을 다 보냈다.
끼니는 동자동에서 먹던 빵을 챙겨 갔으나, 좀처럼 먹을 틈을 주지 않는다.
옆집의 윤인숙씨가 밥 때 되기가 무섭게 불러대기 때문이다.






밥 얻어먹으러 갔더니, 앞마당 바닥 데크를 넓혀놓았는데, 춤을 추어도 되겠더라.
찾아 온 낯선 손님들에게 닭백숙을 대접하고 있기에 숱 가락 하나 걸친 것이다.
요즘 시골에서는 대마씨 효능을 알아차려 닭백숙에도 넣어 끓이는데, 그 맛이 아주 독특했다.

아마 귤암리 대마농사가 재개될 조짐까지 보였다.






서울은 언제 가냐고 묻길래, 내일 아침에 떠난다니, 아침도 같이 먹고 가란다.
어렵사리 틈내어 정선 갔으면, 넉넉하게 쉬었다 왔으면 좋으련만,
동자동에 꿀단지 숨겨 둔 것도 없는데, 가자마자 떠날 채비부터 한다.
그래도 이번엔 아들 결혼식이 눈앞에 다가 왔다는 핑계거리라도 있다.






그나저나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보내야 하는데, 마치 고시서 보내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몇몇 분만 청첩장을 보내고, 정보만 드린다.





“조햇님, 남지현의 결혼식이 8월25일 오전11시, 종로구 자하문로255(부암동) ‘하림각’에서 있습니다”
부디 잘 살도록 많이들 축하해 주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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