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서 개기는 날입니다.
노트북으로 호작질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들 햇님이가 며느리될 지현이를 데리고 왔네요.
결혼식 날 입히려고 맞추어 둔 양복을 찾아 왔는데, 복에 없는 양복 한 벌 생긴 셈이지요.
처음 이야기 나왔을 때는 안 입는다고 손사래 쳤으나,

아들 입장도 생각하라는 정영신씨의 은근한 압력에 꼬리 내렸습니다.

걱정이 태산이더이다.





내가 무슨 배우도 아니고, 하루 입으려고 거금 40만원을 들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깁니까?
차라리 관속에서 입을 수의나 한 벌 만들어주면, 이 더운 날 얼마나 좋겠습니까?
돈도 돈이지만, 보나 마나 촌놈 장에 갈려고 차려입은 폼일 테니까요.





코 구멍한 집구석에 두 사람이 들어오니 앉을 자리도 없는데다, 먹일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기껏 정선서 따온 토마토 갈아 낸 쥬스와 참외 두개 뿐이었어요.
마음이 편치 않은 정영신씨가 그렇게 보낼 수 없다며, 저녁식사를 약속했어요.

은평구청 앞의 보쌈집에서 다시 만난 거지요.






여자가 여자 심정 안다고 지현이를 위해 음식을 여러 가지 시켰어요.
만두도 세 가지나 포장하고, 활인마트에서 과일까지 사서 챙겨주더군요.
임신 한지가 다섯 달이니, 먹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라는 걸 알아 챈 것 같아요.
함평댁 정영신씨의 살가운 인정이야 아는 사람은 다 알지요.






자식들이 간 후 양복을 입어보았더니, 꾸어다 놓은 보살자루 같았어요.
더구나 넥타이를 매니 답답해서 못 견디겠어요.
웬만하면 광대노릇 하는 셈치고 하루만 견디려 했으나,

몸이 편치 않아 짜증스러우니 손님인들 편하겠어요. 쌍놈 체질이라 어쩔 수 없어요.
그래서 노타이로 와이셔스 대신 색깔 있는 셔츠를 입었는데, 가관이었습니다.
마치 곡마단 앞에서 바람 잡는 늙은 광대 꼬라지 그대로 였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정영신씨 염장지런다고 헛소리를 삘삘 했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듯이, 우리도 흘레식이나 한 번 할까?"
함평댁 정영신씨의 대꾸가 재밋습니다.


“워메 어짜쓰까이, 씨오쟁이 짊어지고  장에 따라 나서겠다고 허네,

꿈도 꾸지 맛시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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