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태극기부대의 확성기 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이 찜통더위에 질식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걱정스럽다.
행여 그런 끔찍한 사고를 바라는 건 아닐까?
그리고 왜 그들은 매번 서울역 앞에서 시위를 하는지도 궁금하다.
요즘은 광화문광장도 텅텅 비었을 텐데 말이다.






무슨 절박한 사연인지 확인하러 나갔더니,
집회가 끝나 다들 남대문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현장은 태극기 잔재들로 뻔득였으나, 열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서울역에 상주하는 노숙인들도 그때야 불만을 털어 놓았다.






“씨발넘들 할려면 저거 동네서 지랄하지, 왜 여기서 시끄럽게 해”
“그런데 쓸 돈 있으면 막걸리나 몇 병 사주지”

“감방에 갇힌 박근혜년은 00 땀띠 나겠네”
“야~ 그런 소리 마. 새로 들어 온 도둑놈들이 나라 개판 만든다잖아”
김지은씨 등 다섯 명이 욕설을 돌려 씹었다.






서울역전의 노숙인은 여러 부류다.
관록 있는 자일수록 잘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면 힘들어서일까? 아니면 모든 걸 비운 부처를 닮아 선가?
대개 서울역 터줏대감과 떠돌이로 나누어지고,
주류 팀과 비주류 팀으로 구분된다.






술 마시는 주류 팀과 터줏대감은 더워도 견디지만.
술 마시지 않는 떠돌이 노숙자는 에어콘 빵빵 나오는
‘다시서기’휴게실에서 티브이 보며 시간 죽인다.
나 역시 더워 ‘다시서기’휴게실에 들어갔더니,
체온이 급속하게 내려가 불알이 짝 달라붙었다.






가보지도 못한 천국처럼 좋았으나, 좀 있으니 그게 아니더라.
그 많은 사람이 말 한마디 없어 웅크린 걸 보고 있으니,
마치 저승 역으로 떠나갈 대기자처럼 비참해졌다.
더워도 자유로운 게 훨씬 나았다.






밖에 나가보니, 쪽방 사는 조인형씨가 서울역 곳곳의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맥주 캔만 챙기고 있었다.
돈 안 되는 박스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게 다 돈인데, 돈을 우습게 안다”며 노숙하는 친구들을 곁눈질한다.






욕심을 버린 건지 포기한지도 모를 노숙인이 현명한가?
아니면 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쪽방주민이 현명한가?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옆자리의 신출내기 한 분은 성경만 들여다본다.
동냥 그릇으로 모자를 벗어 두었으나, 돈 넣는 행인은 아무도 없었다.
모자에 담긴 동전 몇 닢도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것 같았다.






구걸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노숙인 여럿이 몰려있는 곳은 아예 사람들이 다가가지도 않는다.
사람 통행 많은 길에 낮은 포복하여, 뭐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놀며 염불한다는 식은 이제 어디에서도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다.






서울역에서 박스지 한두 장 들고 다니는 사람은 대개 노숙자다.
그들에겐 짐도 번거로울 뿐이고, 자리 깔 박스지만 필요하다.
그 무소유의 낭인들에게 등에 둘러 맬 수 있는 간편한
일인용 돗자리 하나씩 나누어 주면 안 될까?
누울 땅은 주지 못할망정, 자리라도 편하게 깔도록 해주라.






서울역을 건너오니 전도사의 구원받으라는 메가폰소리가 절박하게 들렸다.
전도사의 시선은 노숙하는 이보다 쪽방 촌에 가 있었다.
걸인보다 방 있는 쪽방주민의 구원이 더 시급할까?
마치 동자동 쪽방촌이 구원의 대상처럼 외쳐댔다.

“주 예수를 믿어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