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은 입추였으나, 더위는 사람 잡을 날씨였다.

동자동 쪽방 촌 골목에는 오후3시부터 수박화채를 나누어준다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화요일은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화요카페'라는 식료품을 나누어주는 날인데,

시간을 정하여 줄 세우지 말라고 지적한 바 있었다,

그 뒤로 몇 시부터 몇 시 까지 나누어 준다는 공고로 바뀌더니, 다시 원 위치.

아무래도 보여주기 식 생색내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싶다.

 

 

요즘은 날씨가 극성을 부리니 얼음을 줄 때도 있으나, 냉동실이 없어 얼음 넣어 둘 곳도 없다.

그리고 몇일 전에는 선풍기를 나누어 준다는 공지도 나 붙었다.

사용하는 선풍기가 오래되어 벌벌 그리지만, 너도 나도 장사진 칠 것 같아 나서지 않았다.

 

 

사실, 이 더위에 선풍기 없는 쪽방이야 있겠는가?

문제는 운신하기도 힘든 좁은 방에 선풍기가 두 대나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주민은 받은 선풍기를 장사꾼에게 5천원이나 만원에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수요 조사는 커녕, 주민 실정도 모르며 생색내기 급급한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지난 6일은 일인용 댓 자리를 나누어 준다는 공지가 붙어 어쩔 수 없이 줄을 섰다.

자고나면 요가 땀에 젖어 꼭 필요한 물품이었는데, 남은 선풍기까지 받는 횡재를 했.

 

날 주민들을 위한 돌다리골 빨래터개소식도 있다고 했다.

KT에서 시설을 제공하고 서울시에서 운영비를 내는 빨래터라고 한다.

 

행사  시간이 다가오자 명사들이 속속 등장했다.

먼저 김형철 용산소방서장이 나타나 '현장응급의료안전캠프'에 모인 대원들을 지휘하기 시작했고,

'온누리복지재단' 이재훈목사, 박원순 서울시장, KT 황창규 회장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의 모습도 보였다.

 

 

동자동희망나눔센터에 들려 더위를 식히고 있던 주민들과 인사를 나눈 후,

봉사요원들이 준비해 둔 수박화채를 주민들에게 담아주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대기하고 있던 사진기자들이 앞 다투어 사진을 찍어댔다.

주민들 화채 나누어주는 일보다, 사진 찍는데 더 신경 써는 진풍경이었다.

 

 

사진 찍기가 끝나니, 봉사자들에게 국자를 넘겨주고 빨래터 개소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민들과 취재기자들까지 뒤 엉켜 혼란스러운 빨래터는 '홈리스 주거팀'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는데,

윤애숙씨는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대응하고 쪽방지역 재생계획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장과의 정식면담 요청은 차후에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일부 주민들은 쪽방에 직접 들어와 봐라”, “더워 못 살겠다는 불만을 쏟아내며,

보여주기 식 행사는 그만하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 와중에서도 예정된 행사는 진행되었다.

용산소방서에서 준비한 소방호스로 물 뿌리는 이벤트도 벌였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골목 언덕 길 2-30m 뿌렸다.

뿌릴려면 주민들이 모이는 공원에 뿌려야 할것 아닌가?

지난 번 김부겸장관이 왔을 때도 살수이벤트를 벌였는데, 다들 그렇게 할 일이 없는지 모르겠다.

 

이제 빈민들을 들러리로 내 세우지마라.

진정으로 가난한 빈민들을 걱정한다면 전문가들과 머리 맞대어,

실질적인 일을 고민하고 집행하라.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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