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자정무렵,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렸다.
여름 쪽방에서 정전된 건 처음 있는 일인데, 숨이 턱턱 막혔다.
더운 바람이라도 돌려주는 선풍기의 고마움을 새삼 절감했다.
그런데, 건물 전체가 정전된 것이 아니고, 내방만 나간 것이다.

다들 잠 잘 시간이니, 연장 빌릴 곳도 없었다.
라이터 불을 치켜들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천정의 배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는데,
이 지긋지긋한 밤을 보내려면 노숙하는 방법 뿐이었다.

잘 곳을 찾아 공원 주변을 돌아보니, 자는 모습도 다양했다.
어떤 이는 폐지 모은 리어카 위에서 자는 이도 있고,
돌 난간에서 아슬아슬하게 자는 사람도 있었다.

옆 사람 배에 다리를 걸치고 자는 등 각양각색이었다.






쓰레기터 옆에는 유정희, 정용성씨가 늦도록 술을 마시고 있었고,
용성이 모친 황춘화씨는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윗옷을 벗어 보기가 그런지 유정희씨가 이불로 슬쩍 덮었다.


유정희씨는 일 년도 더 된 일을 나만 보면 노래를 불러댄다.
김원호씨와 밥 한 끼 사준 적이 있었는데, 그 된장찌개 맛을 잊을 수 없단다.
사실, 잦은 술자리에서 나눌 이야기가 뭐 있겠는가?
사는 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마시고 자는 일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 곳은 주변이 어지러워, 명당으로 꼽히는 DB빌딩 쪽으로 옮겼다.
1층과 2층 통로로 맞바람이 불어 더위 먹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단지 건물관리인이 없는 자정에서부터 새벽 4시 반까지만 가능하다.
술 좋아하는 자들은 엄두를 못 내지만, 잠 잘 사람만 모인다.






열두 명이 더러 누웠으나, 한 쪽 구석에 자리 펼 곳이 남아 있었다.
빌려 온 파지박스를 깔아 누워보니, 천국이 따로 없더라.
이렇게 시원한 맞바람이 부는 곳에서 언제 자본 적이 있었던가?


칼잠 자는 버릇에 귀를 바닥에 대고 누웠더니, 자동차 바퀴 소리가 요란했다.
땅에서 울리는 진동이 입체음향으로 들려오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잘도 잤으나, 초짜라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니, 소음도 음악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엔진소리와 바퀴 구르는 소리도 리듬이 있었다.


갑자기 “뿌드득 뿌드득“하는 개구리 울음소리도 간간히 들렸다.
귀신도 못사는 요지경 서울에 어찌 개구리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자세히 들어보니, 옆자리에서 이빨 가는 소리였다.

세상살이 무슨 원한 그리 많아 이빨까지 갈아 샀는가?


잠 잘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도 남지 않았다.
소음을 자장가 삼아 서둘러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름하여 ‘서울 야상곡’ 들으며 잠시 눈을 붙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다들 떠날 채비하고 있었다.
나 역시 쫒겨나기 전에 전기공사하러 쪽방에 올라갔다.
천장에 손 들어갈 수 있는 구멍부터 후벼 팠는데,
땀과 합판 부스러기가 범벅되어 죽을 맛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끊어진 전선을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청소하랴! 물 뒤집어쓰랴! 바삐 정리하고 나니,
그때사 무슨 일이 있었냐며 물어오기 시작했다.
전기가 똥개 훈련시켰다고 투들거리며 자리에 누웠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다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에 잠을 깼다.
한동안 다리를 부여잡고 꼼짝을 못했는데, 왜 갑자기 근욕 통이 왔을까?
시멘트 바닥의 찬 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난공사에 용을 쓰서 그럴까?

더운 날씨에 병원 오 갈 생각하니,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씨발!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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