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쪽방 사람들은 참고 견디는 인내의 한계가 어디인지 실험하는 것 같다.
다들 찜질방처럼 발가벗고 살지만, 아무도 탓하는 이는 없다.
후덥지근하게 돌아가는 갇힌 바람은 선풍기가 아니라 온풍기다.
뜨거운 바람이 거슬려 잠간이라도 선풍기를 끄면 땀이 팥죽처럼 흘러내린다.
건물이 햇볕에 잘 달구어져, 찜질방이 쪽방을 형님이라 부를 지경이다
그렇지만 다들 폭염을 견뎌내는 그들만의 노아우가 있다.
한계에 부딪히면 화장실에 가서 물 한 두 바가지 뒤집어쓰면 되고,
그도 안 되면 술 한 잔 마신 후, 공원이나 바람 통하는 그늘에 뻗어버리면 된다.
그렇지만, 쪽방 사는 사람들도 가오가 있어, 아무데나 눕지는 않는다.
더워 곤죽이 되어도 견딘다. 그래서 여름철은 노숙하는 친구들이 상팔자다.
옆 건물의 이기영씨는 무더운 여름 나는데, 이골 난 사람이다.
덥다고 생각하면 더 힘드니, 아예 신경을 끈다는 것이다.
가끔 찬물 적신 타올로 몸을 식히지만, 이열치열이라며 운동까지 한다.
나더러도 근육 운동을 하라지만,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다.
이기영씨는 몸에 살이라도 남았지만, 난 뼈다귀뿐이라 개 달라 들 까 두렵다.
다들 지하철로 가면 시원하게 지낼 수 있건만, 끝가지 방에서 버티는 곰들이 존경스럽다.
옷을 몸에 걸치는 순간 땀에 젖기도 하지만,
비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더운데 힘만 빠져, 가만있는 게 상책이란다.
지난 토요일은 대전에 작업실이 있는 조성기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배님! 서울역에 왔는데, 동자동 있으면 같이 식사나 하시죠?”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지라, 움직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당가에 내려가니 다른 분과 같이 왔는데, 안면이 많아 보였다.
예전에는 포항에서 사진을 했다지만, 지금은 군부대에 근무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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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씨는 미술은행에 사진을 한 점 팔게 되었다며, 액자 맡기러 서울 왔다고 했다.
요즘 같이 어려운 경기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 조금이나마 숨통이 터일 듯 했다.
고등어구이에다 시원한 냉커피까지 얻어 마시며, 더위를 피하는 시간이 되었다.
손님들이 떠난 후 지하도로 내려갔더니, 처음 보는 사내가 지하도를 안방처럼 누워 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그런지, 맛이 살짝 간 것 같았다.
노숙을 해도 최소한의 예는 갖추어야 하는데, 저러다 역무원에게 쫓겨난다.
저런 게 민폐라는 것이다. 다른 노숙자까지 힘들게 하니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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