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에서 ‘진주청국장’을 운영하는 조영희 누님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어깨뼈를 다쳐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수술 받았는데, 수술결과는 좋다고 한다.




진주에서 여의도로, 여의도에서 양재동으로 40여 년 동안 청국장 끓이는 일에 매달렸으니,
쇠덩어리라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맏딸 박홍전이가 시집도 가지 않고 장사를 이어 받았는데, 골병드는 일이 식당일이다.
돈은 좀 벌었겠지만, 건강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지난 년말, 일산 사는 동생 조창호와 조옥희, 매제 김종성씨와 함께 병문안 갔다.




누님께서는 “수술을 잘 끝내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며 반갑게 웃었는데,
팔 밑에 받침대를 댄 모습이 어릴 적 본 아이스케키 통 맨 사람 같았다.
‘아이스케키 좀 팔았냐?’는 농담도 했는데, 얼굴만 보아도 즐거운 것이 가족이다.




이제 팔순을 넘겼으니, 식당에서 은퇴할 나이가 넘었다.
여기 저기 놀러 다니면 좋으련만, 시집가서 식당일만 해서 노는 것도 잊어버렸을 것이다. 
기껏 하는 일이 조계사에 기도하러 가는 것 뿐이다.




가족들이 다 수도권에 살지만,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일이 생기지 않으면 만날 수도 없다.
모처럼 만났으니,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지만 할 말은 많았다.




아들 햇님이가 카톡으로 보낸 손녀 하랑이 사진을 돌려보기도 했다.
장가 간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손녀 하랑이 첫돌이란다.




매제 김종성씨는 대학에서 정년퇴임하여, 딸 소원이가 운영하는 약국의 셔터맨으로 봉사한단다.

다들 생활전선에서 물러 날 때가 되었으니, 이제 재미있게 사는 일만 남았다.




못 다한 이야기는 퇴원 후로 밀쳐두고 다들 물러났다.



"새해에는 오짜던둥 건강 잘 지켜 재미있게 삽시더.

조씨 집안이 노는대는 일가견이 있다 아이가"



옛날에는 꽃놀이 술판을 '회초'라 그랬는데, 사전에는 없어 어원을 모르겠네.





"날 풀리마 꽃놀이 술놀이나 한 판 벌립시더!

이빨 사이로 새는 '봄날은 간다'도 색다르게 쌕시하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8일은 인사동 가는 길을 소녀상이 있는 일본대사관 방향으로 잡았다.
나올 때 치를 떨며 보았던 위안부 사진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도 천막 안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사진은 위안부를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 주변을 보지 못하도록 트럭에 장막을 쳤다.
잠시 멈춘 트럭 주변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서성거리는 여성은, 일본놈 완장인 것 같았고,
트럭 안에서는 한 여인이 뭔가 적은 쪽지를 전달하고 싶어 안달했는데,
그 안타까운 마음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




이런 걸 보고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 놈들은 사람새끼가 아니다.
그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과는 상종을 말아야 하니,
소녀상 철거가 아니라, 일본대사관을 철거해야 한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북인사 마당으로 옮기니, 인사동 상징 조형물이 좆처럼 서 있었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다른 때보다 사람도 적은데다 거리도 낯설었다.
큰 길가의 상점도 바뀐 곳이 많지만, 골목 안 술집 간판도 많이 달라졌다.
그중 아쉬운 건, 추억이 오롯이 남은 ‘인사동 사람들’이 곰탕집으로 바뀌었더라.




가게가 바뀌고 술집이 바뀌는 건, 주인이 바뀌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사동 풍류가 사라지고, 사람들 마음이 바뀌는 게 더 서글펐다.
온 종일 거리를 헤매었으나,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고,
가고 싶은 찻집이나 술집도 없었다. 마치 무인도에 홀로 선 것처럼...




밤에는 누군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백상사우나’에 들어갔다.
예전에는 백상사우나에 가도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었지만,
거기에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뜨거운 탕 안에서 가만히 생각하니, 헛 웃음만 나왔다.
대관절 무엇을 찾는 것인가? 누굴 기다린단 말인가?




실연한 사람처럼 밤거리를 휘적거리다, 지하철을 탔다.
마침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형 뭐해? 저녁이나 같이 먹지” 김명성씨 전화였다.
인사동에서 녹번동으로 발길을 옮겼드니, 조해인씨와 김광만씨도 있었다.




중국집에서 유산슬 요리시켜 고량주 한 잔 했다.
독립운동사를 훤히 꿰고 있는 김광만씨와 김명성씨가 뭉쳐
큰일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날 우연히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복동 할머니의 편지도 읽었다.
또박 또박 써 내려간 피눈물 나는 사연에 가슴이 미어졌다.




잊으려 해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이 어디 인사동뿐이더냐?
아! 졸라 슬픈 하루였다.




30일 정오에는 인사동 '나주곰탕'에서 방배추선생과 기국서씨를 만나고,
그 뒤 인사동을 돌아다니다, 저녁 여섯시에는 '툇마루'에서 ‘통인’ 인사모 팀과 술 마시고,
일곱시가 넘으면 ‘유목민’에서 놀다, 인사동을 마무리하련다.




온 종일 인사동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만 찍을 작정이니,
시간 있으신 인사동 사람들은 모두 나와 함께 추억합시다.
약장사 말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인사동 마무리를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우리는 지금 다음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 워크숍이

지난 24일 오후1시부터 5시30분까지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지하2층에서 열렸다

미술감독 안애경씨가 서울시 도움으로 마련한 워크숍에는 배일동 명창과 사회학자 한도현씨,

식품영향학 이정희 박사, 명상연구가 이민형씨, 시사인 고재열기자 등 다양한 층의 전문가들과

관련인 30여명이 모여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야 할 인간 도리와 자연 섭리를 논하는 자리였다.



일찍부터 약속한 일이 있어 한 시간 쯤 늦게 나갔는데,

전통문화에 탁견을 가진 배일동 명창의 강의는 이미 끝나 들을 수 없었다.

한도현씨는 마을공동목장을 만들어 슬기롭게 활용하는 제주 가시리 마을 주민들의 사례를 들었다.

조상들이 걸어 온 발자취를 살려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그들만의 헌법인 향약(鄕約)에 미래세대 권리를 명시했다더라.


    

다양한 사례나 문제점도 듣고, 명상연구가 이민형씨가 준비한 명상을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으나,

식물학자 이정희씨가 들려 준 식물공장이라는 화두는 많은 생각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비닐하우스나 양식어장도 식물공장이나 비슷한 제배방법이긴 하지만,

통제된 시설에서 빛과 온도 습도 등 모든 재배 조건을 인위로 조절하는 대규모 식물공장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이다.

계절과 장소의 제약 없이 필요한 양을 생산해 낼 수있는 식물공장은 관리와 운영 등 모든 설비가 자동화 된다고 했다.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데다 병충해도 발생하지 않고,

심지어는 식물 속에 함유될 영양분 양까지 조절해가며 안정적인 식량공급이 가능하다니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미국에 사는 유성호씨가 포스팅한 글이 페북에 올라왔다.

사막에 대규모 식량생산공장이 설치된다. 완전 무인공급, 자체동력과 자급 원료, 물조차도 보충하지 않는 최첨단의 식량공장이다. 36524시간 완전무공해의 최상의 벼와 밀, 옥수수등, 주요 식량자원이 무한정 공급된다. 그리고 원하는 국가에 그 공장은 설치될 것이다. 단 그 식량이 무상으로 분배될 경우에 한 한다. 기준의 대규모 농사 플랜트, 농약회사 등...돈되는 사업은 모두 해체되고 가족농은 각종 채소와 여타의 자급농작물을 재배한다. 농사는 돈벌이 보다는 취미생활의 범주에 들게 된다. 대규모의 생산과 소비, 무역은 사라지고, 지역중심의 경제가 부활한다. 대도시는 외면되고 모든 시민은 작은 도시에서 대부분의 부가적 농산물을 자체 생산, 소비한다. 가장 자연적인 최상의 땅에서 최상의 먹거리를 가꾸고 소비하게 된다. 기술이나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게걸스러움 탓에 모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인류는 창조(?) 이후로 생산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없어서 배고팠든 것이 아니라, 분배, 게걸스러움 탓에 배고플 수밖에 없었다 낮 꿈은 항상 즐겁다. ㅋㅋ 칼이 칼에 당하듯, 기술은 기술에 당한다. 그러니 왠만하면 지구를 너무 혹사시키지 말고 개발해야 한다. 빌 게이츠가 GMO에 투자하지 말고 이런 사막에서 식량 생산하는 사업에 투자하면 참 좋겠다. 어쨌거나 쌀국은 쌀도 많고 오일도 많고 돈도 많다. 그러니 그들에게 그런 걸 배우려 하면 안된다. 그런 게 없는 우리가 살면 지구가 산다. 그렇게 믿고 산다. 꿈 꾸는 직업이나 사업은 없을까?”


 

나만 몰랐지, 식물공장시대는 이미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과연 공장방식으로 식물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다음 세대에 끼칠 해악은 없을까?

그렇다면 영세한 농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그렇잖아도 기계처럼 살아가는 현실에 인간성 상실이 가장 큰 문제인데,

그런 문제를 더 부채질하는 것이 식물공장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다른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과연 미래 아이들이 이어갈 세상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자연환경을 가꾸고 보존하는 일이야 당연하지만, 잘못된 것은 모두 바꾸어야 한다.

정치는 물론 잘못된 법과 관습도 바꾸어야 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인간성회복에 있다.

교육이나 모든 사회시스템이 기계화 규격화 되어가는 지금의 구조로는

날이 갈수록 사람이 아니라 인간 로봇을 만드는 꼴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은 없고 기계가 사는 세상을 진정 바라는가?

모든 것이 돈이라는 마약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어제는 공원을 지나치다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귀여운 어린이들이 올망졸망 텐트에 모여 있는데, 여인네 둘이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 온 사람답게 사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순진한 어린이들에게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선교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

사이비목사 전광훈 처럼 종교를 정치화하는 것과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세뇌 시키는 거다.

우리국민은 오랜 세월 일본에 세뇌되어왔고 다음은 미국으로 부터 세뇌되지 않았던가.

어린이들이 자라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을 믿으면 될 것인데,

애들을 길들이는 못된 짓을 아무 죄책감 없이 하고 있더라.


 

우리에게 따뜻하고 다정했던 생활 방식이나 전통문화는 점점 박제화 되어가고 있다.

나무 한 그루와 물 한 모금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을 거슬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 문제는 그 날 모인 몇몇 사람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이 진지하게 고민하며 하나 하나 바꾸어나가야 할 문제다.

거창하게 인류를 위해서 라기 보다, 우리의 자식이나 손자 등 직계를 위해서라도 등 돌릴 수 없는 일이다.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손녀 하랑이를 위해서라도 잘못된 세상을 바꾸는데 모든 것을 바칠 작정이다


 

 

사람 나고 돈 나지, 돈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니잖은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에 다같이 동참하자.

    


사진, / 조문호























 


 


이광수교수의 페북 대화창 ‘서울사진가와 소총수’에 술꾼들 모이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세미나 토론자로 서울 올라가는 김에 술 한 잔하자는 것이다.

 

 

 


모처럼 반가운 자리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겨버렸다.
전 날 저녁 동자동에 갔더니 방문 앞에 우편물 한 통이 꽂혀 있었다.
뜯어보니 용산구청에서 보낸 ‘복지대상자 자격 및 급여변동 안내문’이었는데,
자격중지(급여중지)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격 중지될 이유가 없었다.

 

 


11일 작성된 공문으로, 이미 소명기간이 지나버렸다.
우편물이 왜 이리 늦게 왔는지도 모르겠고, 왜 중지되었는지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공무원들 퇴근 후라 확인해 볼 수도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짤릴 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혜택 받은 3년 동안 돈 걱정없이 잘 살았는데,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당장 내야 할 방세부터 걱정되었다.

 

 


난데없는 걱정에 밤을 꼬박 샌 후, 아침에 구청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다. 당하는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요한 일인데,
어떻게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이유는 아들 햇님이 재산에 변동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들어보니, 결혼 후 방을 얻기 위해 처가에서 빌린 전세자금이 재산으로 둔갑된 것 같았다.

 

 


충분히 소명할 수 있는 문제라 걱정은 덜었으나, 잠 안 자고 신경을 많이 쓴 탓에, 힘이 쫙 빠졌다.
스트레스 받아 그런지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어지럽기 까지 했다.

 

 

그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어 녹번동 정영신씨 집으로 찾아갔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해소에는 최고인 비상약을 먹었다.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져, 저녁 술 약속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25일 오후8시 북창동 ‘행복전집’으로 김남진, 김문호, 김봉규, 김태진, 이규상, 정영신씨가 호출되었는데,

그 날이 신문사 당직인 김봉규씨만 못 나왔다.

 

 


김태진씨가 미리 예약해 둔 북창동 ‘행복전집’에 가보니 김문호씨가 먼저 와 있었다.
좀 있으니, 그리웠던 분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들 막걸리를 마셨지만 혼자 소주를 마셨는데, 이광수씨가 추천해 준 ‘진로’가 참 좋더라.
술병은 파리약병 처럼 못 생겼으나, 술이 순하고 부드러웠다.
그 날 모임은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술 마실 일 밖에 없었다.

 

 


술독을 얼추 비웠으나, 그냥 헤어질 수 없었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노래방이 최고가 아니던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노래방으로 따라 갔는데, 다들 잘 부르더라.

 

 

 

이광수씨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는데,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났다.
어디서 그토록 시원하게 욕 할 수 있겠는가? “이 씨발넘들아~”
듣는 내가 다 속이 후련했다.

 

 


나도 한 곡 뽑기는 했지만, 이제 끝난 것 같았다. 젠장~ 소리가 나야지...
분명 봄날은 갔고, 노래라기보다 지랄발광에 가까웠다.
그러나 윤석렬로 받은 스트레스까지 모두 풀었다.
교주님께서 다음엔 부산에서 한 판 벌이자지만, 어디엔들 못 갈소냐?

 

 


기차 시간을 넘긴 이광수씨만 여관에 들어가고, 다들 뿔뿔이 헤어졌으나 자정이 넘어 택시가 없었다.
시청 앞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선동하는 앰프 소리만 요란스러웠다.
대형 전광판에는 목사란 자가 ‘문재인을 구속시켜야 된다’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전광판 대 여섯 개가 나란히 들어선 걸 보니 광화문광장까지 연결된 것 같았다.
택시 잡으러 광화문까지 가보니, ‘구국철야기도회’란 이름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라, 다들 담요 같은 걸 뒤집어쓰고 구호를 외쳤다.

 

 


무슨 찬양가 인지도 모를 신나는 곡도 있었다.
술이 취해 엉덩이춤을 추가며 사진을 찍었는데,
나만 미친 것이 아니라 다들 미쳐가고 있었다.

"할렐루야~"

글 / 조문호

 

 

 

 

 

 

 

 

 

 

 

 

 

 

 

 

 

 

 

 

 

 

 

 

 

 

 

 

 

 

 

 

 

 

 

 

 

 

 

 

 

 

 

 

 

 

 

 

 

 

 

 

 

 

 

 

 

 

 

 

 

 

 

 

 

 

 

 

 

 

 

 

 

 

 

 

 

 

 

 

 

 

 

 

 

 

 

 

 






지난 22일은 은평구 동내배움터 “뽀데모스”에서 사진 공부하는 날이었다
아들 햇님이가 진행하는 공부방인데, 나더러 사진 강의 좀 해달란다.
평생 강의라고는 서너 번 밖에 하지 않았는데,
갈 때마다 죄지은 놈 청문회 끌려가듯 어쩔 수 없어 나갔을 뿐이다.




첫 강의 할 때는 얼마나 혼 줄 났는지, 그 다음부터 술의 힘을 빌었다.
술에 취하니 수강생 눈이 보이지 않아 입이 열리기는 하는데,
쌍시옷 자가 수시로 나와 나이 값을 못했다.




그런 강의 공포증이 있지만, 아들 부탁인데 어찌 거절하랴.
죄 많은 애비 마음을 알랑가 모르겠다.




걱정되어 정영신씨 까지 대동해 갔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들 페북을 보고 알게 된 몇몇이 오겠다고 했으나 오지 말라고 말렸다.
가보니 며느리와 손녀 하랑이까지 나와 있었는데,
사진가 노재학씨를 비롯한 몇 사람밖에 되지 않아 아주 가축적인 분위기였다.




큰 걱정은 덜었으나, 이 빠져 삭은 소리라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사진 찍지, 예술 하지 말라는 말도 했고,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 주변을 찍으라는 말도 했다.

아들에게는 전몽각선생의 ‘윤미네’처럼 하랑이를 지속적으로 찍으라는 주문도 했다.




그런데, 강의 자료로 열장이 넘게 쳐 갔으나 눈에 보이지를 않으니 말이 연결되지 않았다.

독수리 타법으로 치느라 얼마나 고생한 자료인데...
한 시간으로 강의를 끝내고, 남은 한 시간은 정영신씨 장터 사람으로 떠 넘겨 버렸다.

하랑이 보려는 속셈도 작용했다.




하랑이는 엄마 품에서 풀려나고 싶어 몸부림 치고 있었다.
책상 의자에 세워주니 연필로 뭔가 적는 듯 끄적거렸다. 무슨 사진을 안다고...
그동안 공부할 때 마다 공부방에 나온 모양인데,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 다는 말도 있으나, 이 녀석은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정영신씨 강의가 끝나 헤어질 시간이 되니, 노재학씨가 맥주 한 잔 하잖다.
소주가 아니고 맥주란 말에 사양했더니, 가서 마시라며 술값을 건네주네.
염치없이 받아서는 활인마트에 들려 와인 한 병, 안심 한 팩을 사왔다.
징그러운 걱정거리 해결한 기념으로 정영신씨와 한 잔 했다.




술자리가 끝나 자리에 누웠으나, 하랑이 모습이 아른거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옛 말이 실감났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조햇님 담벼락에서 퍼 온 사진인데, 표정 하나 죽인다.




 

2019,10,6 정선아라리공원 / 귤암리 사는 장승쟁이 서덕웅씨

 


"우잉~ 이기 우얀 일이고?"
이 핑계 저 핑계 안 가던 정영신씨가 날더러 정선 가자네.
외롭게 혼자 정선을 들락 거린지가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

 

 

 

2019,10,6 봉평 섶다리

 

한 동안 몸이 아파 정선 집에 통 가보질 못했다.

태풍이 지나갔다는데 별 일 없는지, 작물은 어떻게 되었는지,

몸은 서울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2019,10,6 / 정선 아라리촌

 

몸이 나아 바로 못 간 것은 일거리가 생긴데다 서초동 촛불까지 발목 잡았다.

월요일쯤이나 갈 작정을 했는데, 정영신씨가 일요일에 가잖다.

촛불집회가 끝난 그 다음 날 새벽에 부리나케 정선으로 떠났다.

 

 

2019,10,6 / 정선 아라리촌

 

정영신씨는 가는 김에 여기저기 갈 속셈이 있는 것 같았다.

늘 다니던 국도로 갔는데, 쉼터로 활용하는 ‘풍수원’에 잠시 세웠더니,

‘풍수원성당’에 한 번 가보자는 것이다.

 

 

2019,10,6 / 정선 아라리촌

 

20년 넘게 ‘풍수원성당’ 앞길을 수없이 지나치고 쉬어갔지만,

어찌 그 유서 깊은 ‘풍수원성당’에 한 번 들리지 않았단 말인가?

무엇이 그리 바빠...

 

 

2019,10,6 / 풍수원성당

 

‘풍수원성당’은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생긴 성당이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산간벽지로 피신한 사람들이 다니던 성당이 아닌가?

처음으로 올라가 보니, 길가에서 불과 200미터에 불과했다.

 

 

2019,10,6 / 정선 아라리촌

 

첫 인상이 한 마디로 고풍스럽고 아담했다.

마치 서울 약현성당을 떠 올렸다.

정면에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아치형으로 되어 있었다.

 

 

2019,10,6 / 풍수원성당

 

난, 한 때 ‘프란체스코’란 세례명까지 받은 적이 있다.

그 뒤 ‘진공’이란 법명으로 바꾼 변절자지만, 지금은 무신론자다.

신이 있다면 악의 세상을 그냥 둘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배신의 세월을 되돌아보았다.

 

 

2019.10.6  정선아라리촌 / 정영신


정영신씨는 집에 가기 전에 들려야 할 곳을 말해주었다.

봉평 이효석 문학관, 정선 아우라지 나룻터, 정선아리랑시장, 정선아리랑 축제장,

 

우메~ 봉평 까지 가면 집에 가서 일은 언제하지...

 

 

2019.10.6  정선아라리공원 / 정선 사람이 정선아리랑 한 자락 못하면 간첩이지.

 

그나저나 정선에서 ‘정선아리랑제’가 열리는 것도 모르고 있었네.

아무리 바빠도 정선아리랑제가 열릴 때는 꼭 갔는데, 요즘 내 정신이 아니다.

 

 

2019.10.6  정선아우라지

 

봉평을 거쳐 아우라지에 도착했는데, 느닷없이 아우라지는 왜 찿는지 모르겠다.

 

요즘 지역 장터와 유적을 잇는 책을 쓰다 보니, 아마 자료가 필요한 것 같았다.

한 많은 뱃길은 아우라지로부터 시작되니, 그 곳에서 흔적이라도 찾을 모양이다.

 

 

2019.10.6  정선아리랑시장

 

정선 읍내 들어오니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

정선아리랑시장에서 곤드레 밥으로 요기 하고 시장부터 한 바퀴 돌았다.

한 때 ‘정선아리랑시장’에서 사진찍는 일을 한 적도 있었다.

 

 

2019.10.6  정선아리랑시장 ㅣ 시장살림을 도맡은 임미순씨를 만났다.

 

축제 중이라 장날은 아니지만, 장은 열렸다.

공연장에서 ‘정선아리랑시장’ 또순이 임미순씨를 만났다.

고맙게도 커피를 두 잔이나 사주었는데, 난 자판기스타일이라 어쩌지...

 

 

2019.10.6  정선아리랑시장 / 시장에서 소설 쓰는 강기희씨 모친을 만났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강기희씨 어머니를 만나 안부도 묻고,

장삿꾼 이숙란씨 만나 사는 이야기도 들었다.

 

 

2019.10.6  정선아리랑시장 이숙란씨

 

‘정선아리랑제’ 리프렛을 뒤져보니, 일요일이라 큰 행사는 없었다.

 

 

2019.10.6  정선아라리촌

 

먼저 ‘정선아라리촌’부터 들렸다.

정영신씨는 ‘아리랑박물관’에서 열리는 ‘정선아리랑 포럼’에 가고,

난 잘 정리된 ‘아라리촌’을 돌아다니며 산책을 즐겼다.

 

 

2019.10.6  정선아라리촌

 

‘아라리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그 곳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길에서 최성준 정선군수를 만나 안부를 나누기도 했다.

아라리공원 입구에서 열리는 ‘평화기원 아라리 장승제'에 들렸다.

 

 

2019.10.6  정선아라리공원에서 최성준군수를 만났다. (정영신사진)

 

귤암리 서덕웅씨가 마련한 행사라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왔는줄 알았는데,

아는 분은 서덕웅씨 내 외 뿐이었다.

고사를 지냈으나 차 때문에 고사 술 한 잔 얻어 마시지 못하고 돌아왔다.

차도 차지만, 요즘은 해가 빨리 넘어 가 일할 시간이 없어서다.

 

 

2019.10.6  정선아라리공원 서낭제에서..

 

우리 집은 태풍 피해가 없었다.

이십 여 년을 살며 한 번도 태풍이나 수해를 당한 적이 없다.

사방의 산이 막아주어 요새나 마찬가지다.

 

 

2019.10.6  정선아라리촌

 

고추, 열무, 가지, 호박 등 별 게 없으나 농작물 피해도 없었다.

정영신씨는 고추에 더 관심이 많더라,

 

 

2019.10,6 / 만지산 고추밭

 

해 넘어가기 전해 거두어야 할 것이 많건만, 옆집에서 오라고 성화다.

“다정도 병이련가?”

 

 

2019.10.6  만지산 옆집에서 잔치 벌어졌네

 

이 집은 얼마나 손님이 많이 오는지 갈 때마다 잔치다.

그 날은 옆집 윤인숙씨 딸과 사위가 왔단다.

딸이 서천에 들려 사왔다는 대하와 이름도 모르는 조개를 한순식씨가 숯불에 꿉고 있었다.

술도 벌 술에다 돌배 술 등 귀한 술은 다 나왔더라.

 

 

2019.10.6  만지산 옆집 윤인숙씨

 

그런데, 내일 급한 일이 생겨 밤에 가야하는데, 차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네.

정영신씨 좋아하는 세우나 염체 없이 까 날랐다.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거지 뭐.

 

 

2019.10.6  정선 만지산


좌우지간, 만지산은 정영신씨 없으면 앙코 없는 찐빵이라니까.

 

 

사진, 글 / 조문호

 

 

 

 

 

 

 

 

 

 

 

 

 

 

 

 

 

 

 

 

 

 

 

 

 

 

 

 

 

 

 

 

 

 

 

 

 

 

 

 

 

 

 

 

 

 

 

 

 

 

 

 

 

 

 

 

 

 

 

 

 

 

 

 

 

 

 

 

 

 

 

 

 

 

 

 

 

 

 




몇 일 전 봉화장에서 만난 서씨 아지매 이야기다.
통통한 알밤 한 되 박 펼쳐 놓고 쪼그려 앉은 모습이 안 서러워,
“아지매는 사는 게 어떻냐?”고 물어 보았다.

“사는기 다 그렇지 별거 있는기요?”
"별거 아닌 게 힘들게 한다"며 투덜거렸더니, 측은한 눈길로 쳐다본다.

그 무렵, 옆자리에 있던 아낙이 맛보라며 서씨에게 김밥을 건네준다.
“별 생각 없는데...” 하시면서도 한 점 집어 맛있게 드셨다.

돌아서는 귓전으로 들려오는 아지매 말에 인정이 묻어있었다.
“밥이나 묵고 댕기는지 모르겠다”
바로, 낯선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다.

숱한 사람과 부딪히고 살아도 연관이 없으면 아무 관심도 없는 비정한 세상에
낯 선 사람에 대한 관심과 걱정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다.

정이 메말라 기계처럼 사는 세상이지만, 아직까지 타인에 대한 정은 멸종되지 않았다.
시골장터에서나 만날 수 있는 훈훈한 정경이다.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이 된 세상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몇 일전 정영신씨로 부터 인사동 사진집 출판에 대한 제안이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출판사 ’ZININZIN’ 김태진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는데,
김태진씨는 이광수교수 강의 때 한 두 차례 만난 적도 있지만,
정의당원인데다 페친 중의 한 분이라 관심 두고 지켜 본 분이다.




얼마 전 페북에 인사동 사진집을 년 말까지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을 밝힌 적은 있지만,

어떻게 절묘하게 출판 제안이 맞아 떨어졌는지 궁금했는데, 아마 이광수교수의 입김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지난 3일 오후6시경 정영신씨를 만나, 김태진씨와 약속했다는 인사동 ‘툇마루’로 갔다.
귀가 어두운데다 말이 어눌해 소통이 어려울 것 같아 정영신씨에게 모든 걸 위임한다고 했으나,

처음 상의하는 자리라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안경까지 깨져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진데, 자리만 지키는 로봇 신세였다.




안국역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벽치기 골목은 한적했고,
‘조금’ 앞에서는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기념사진 찍느라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인사동 박람회가 끝난 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아 청사초롱이 훤하게 불 밝혔는데,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김태진씨가 바로 옆에 지나가고 있었다.




‘툇마루’에서 된장비빔밥에다 막걸리와 빈대떡을 시켜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나,

대화 내용을 대충 짐작만 할 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꾸어다놓은 보리자루처럼 밥그릇만 비웠다.




 김태진씨와 오래전에 명함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라오는
‘인사동이야기’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고 했다.
아마 인사동 이야기 출판에 관한 전체적인 가닥은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진인진’은 그동안 고고학이나 미술사학 등 학술지출판이나 학술정보DB개발에 주력해 온 출판사지만,

이번에 사회문화 방향으로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작업 중인 책은 역학에 관한 만화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 만들 책이 인사동 사진집이라 한다.




시끄러운 식당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울 것 같아 찻집으로 옮기기로 했는데,

김태진씨가 너무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옆에 있는 사람이 군침이 돌 정도로 드셨는데, 큰 복 하나 타고난 것 같았다.
한 조각남은 빈대떡까지 싸 가지고 찻집 ‘수요일’로 자리를 옮겼다.




책 내용은 내가 먼저 정리할 일이라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출판계약서를 전달 받는 등 가닥만 잡았다.
아무래도 작가 입장에서는 작품 위주로 책을 만들고 싶겠지만, 출판사는 팔리는 책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여지 것 책을 만들 때는 일체 간섭하지 않고 출판사에 위임해 왔다.
아무리 좋은 책도 독자가 외면하면 쓰레기에 불과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작가의 의향을 존중해 그런지 별 말씀이 없었다.
원고를 정리하는 중에 여러 가지 조언을 줄 것으로 여겨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삼개월 가까이 인사동 작업에만 주력해야 할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인사동 풍류를 어떻게 보존할 것이며, 인사동다운 환경이 지켜지도록 최선을 다 할 작정이다.
아무쪼록 인사동의 정체성이 정립될 수 있는 좋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작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바라며, 내년 초에 선보이게 될 인사동 사진집을 기대하시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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