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화령장에서

 

장 따라 다니며 만났던 시골 부부들의 정겨운 사진에서

새삼 부부 금실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금실이란 것이 저울로 달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살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 쌓여 곰 익은 것이 금실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장에 오는 부부들이 승용차나 트럭을 타고 오기도 하지만,

얼마 전 만해도 경운기가 대부분이고, 오트바이나 삼륜차 등 종류도 가지가지였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소가 끄는 달구지가 더 많았지요.

장에 같이 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 해가며 친구도 되고 애인도 되며 정을 쌓아갑니다.

나 역시 전국 장터 찾아다니며 쌓은 금실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3 금산장

 

'금슬(琴瑟)'은 거문고 금자와 비파 슬 자로 거문고와 비파지만, 부부간의 사랑을 말할 때도 사용됩니다.

거문고와 비파처럼 잘 어울린다는 말이겠지요, 아름답지만 덤덤한 화음처럼...

그러나 금슬보다 금실이란 말을 많이 써, 사전에도 부부간의 사랑을 '금실'이라 해놓았습니다.

자주 쓰면 그 말이 표준말이 되기도 하지요.

 

나도 글 쓸 때 문법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글이란 내가 편하게 말 할 수 있고 상대가 쉽게 알아채면 그만이니까요.

법이나 문법이나 일률적으로 규정지어놓은 것을 싫어하는 건, 규정지울 수 없는 게 너무 많거든요.

누가 한말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과거는 고체이고, 현재는 액체이고, 미래는 기체다”란 말을 읽은 적 있습니다.

말이나 법이나 모든 것들이 굳어버린 과거를 붙들고 고민하기보다,

현실에 맞는 것들이 바람직하다는 말이겠지요.

 

왜 갑자기 부부금실 이야기가 길어졌느냐 하면 스스로의 금실 무게를 달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요즘은 금실보다 계산에 의해 사는 내외도 많으니,

금실이란 말도 금으로 만든 실처럼 귀하게만 느껴집니다.

 

1995 고창장

 

헌법도 얼마나 잘 못 된 게 많습니까?

난, 아내와 이혼하고 지금은 동지로서 만납니다.

부부 언약보다. 동지로서의 맹서를 충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 또한 말장난에 불과하겠지만, 법이 만들어 낸 모순입니다.

 

돈 안 되는 다큐사진가로 몇 십 년 살다보니 살기 힘들었거든요.

벌이가 없으니사진이나 제대로 찍을 수 있었겠습니까?

기초생활수급자만 되면 사는 게 문제없을 텐데, 아내가 젊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도 다큐 사진하는 거지인데, 이런 좆 같은 법이 어디 있습니까?

 

난, 대마초도 마찬가지지만 잘 못된 법은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혼하고 동지서약서 쓰고, 사진하는 동지로 만납니다.

이제 이혼한지 5년차로군요.

이혼하여 쪽방 촌에 들어오고부터 사는 게 훨씬 나아졌습니다.

동지 일을 자기 일처럼 한다는 동지서약서 보면 눈물 날 정도로 웃깁니다.

 

2014년 밀양장

 

인생은 한 편의 장편 드라마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장터 갈 땐 내가 기사가 되어주고,

쪽방 컴퓨터 고장 나면 동지가 기사 되는 그런 식으로 만나는데,

떨어져 있는 시간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코로나 시국인데, 누굴 만나겠습니까?

코로나 전에는 주말에만 함께 지냈으나, 지금은 일주일에 닷새 정도 함께 지냅니다.

비좁은 정영신씨 집에 같이 있는 동안은 하루 스무 네 시간을 반경 10미터 내외의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니, 밀착 방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동지의 금실도 부부 금실 못지않다는 것을 감히 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4년 전, 광화문광장에서 동지를 만나 사진가 이정환씨 카메라에 잡혔네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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