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삶의 원형을 간직한 이를 정직하게 담아 낸 육명심의 '백민'




사진가 육명심(陸明心)선생의 사진집 『백민』이 열화당에서 재출간됐다.

2011년 발행된『백민』사진집에서 사진이 일부 추가 되거나 교체되어, 새로운 판형의 디자인으로 나온 것이다.

윤세영씨의 글 "이 땅의 사람들, 백민으로의 귀환"을 영문으로도 수록했다.


사진가 육명심은 ‘예술가의 초상’ 연작을 마무리할 즈음인 1970년대말 ‘백민(白民)’ 연작을 시작했다.

예술가들과 밀착해 작업하며 그들 역시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보였고,

자연스레 이 땅의 사람들 중 가장 소박하고 진솔한 민초들을 제대로 기록해야겠다 다짐한 것이다.

이는 훗날 ‘백민’과 함께 삼부작으로 불리는 ‘장승’ ‘검은 모살뜸’ 연작으로 이어진다.


모두 낮은 곳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지탱하는 기층민들의 얼굴이 담겨 있지만,

‘백민’은 삼베나 모시옷 차림의 촌로, 박수와 무당ㆍ사찰에 기거하는 스님ㆍ아기를 업은 아낙네ㆍ

무뚝뚝하게 앉은 노부부 등  우리 옛 삶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1980년대의 한국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백민’ 시리즈는 수백 년간 이어온 전통적인 농경사회 마지막 모습의 증거가 되는 소중한 기록이다.

사진가 육명심선생의 사진 속 인물 특징은 정면성이다.

카메라에 무심한 듯 하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할머니와의 눈 맞춤은

그 후 사진가가 카메라 앞에 선 인물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작업으로 전개된다.

여기에서 정면성은 단순한 눈 맞춤(eye contact)에 그치지 않는 내면과의 소통을 의미하고,

그 사진을 바라보는 관람객 또는 독자와의 눈 맞춤으로 확장된다.

다른 하나는, 인물을 존재케 하는 현실공간에 중점을 두고 시간과 함께 주위 환경과 동화된 인물을 보여준다.

자신의 집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한 할머니와 고목의 조화는 마치 일체를 이룬 듯 자연스럽다.

또한 ‘백민’ 연작에서 자주 나타나는 영적이고 신비로운, 무속적이고 토착종교적인 분위기가 이 사진에도 감지된다.

그리고, 이번 책에 새로 추가된 사진들에는 정면성에서 벗어난 사진들이 꽤 많다.

정면성이 깨진 사진을 의도적으로 함께 섞어 놓아, 시선이 어긋난 인물들과도 다층적 교감을 시도한다.

'백민'을 재출간하는 육명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농경사회의 마지막 세대다.

지난날 원시인들이 바위에 암각화를 남기는 심정으로 우리 시대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육명심 사진집 I 백민 I 열화당 I 2019년 10월 20일 I 180쪽 I 정가 9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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