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전날 밤 인사동 이야기원고도 마무리해 넘겼고,

노숙인, 길 위에 살다현수막 전에 사용할 사진도 골라

정영신씨께 넘겨주려 녹번동으로 찾아갔다.

 

주말 쫑 기념으로 정영신씨와 와인이나 한잔할 생각인데,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니, 이게 왠 난리냐?

그날이 생일이라며 여기저기서 꽃바구니가 날아오고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페북 창을 도배했다.

본인도 몰랐던 생일인지라 깜짝 놀랬다.

 

사실, 나는 태어난 자체가 부끄러워 생일을 싫어한다.

예전에는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았으나 정영신씨를 만나고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제일 싫어하는 음식인 미역국을 먹어야 하고

부담스러운 선물도 받아야 했다.

 

요즘은 페이스북까지 나팔 불어 동네방네 소문 다 내버린다.

그 수많은 축하 인사에 일일이 답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 되어버린다.

조용히 살기 힘든 세상인 것이다.

소통하기 위해 페북에 가입한 자업자득인 것을 어쩌겠는가?

 

미끌미끌한 미역국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어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이태원의 김상현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도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었다.

사 온 빵과 식혜를 술안주로 한 잔하고 있는데,

이번엔 조해인 시인이 생일을 축하한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생일 케잌까지 사 와서는 촌스럽게 촛불까지 켰다.

정영신씨는 이제부터 나이가 한 살이라며 초를 하나만 켜네

한 살짜리 어린애로 취급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아무 일도 안 해도 되고 젖도 빨려주겠네.

그나저나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도대체 몇 살인가?

며칠 전 김발렌티노가 같은 띠 동갑이라며

꿀꿀이 행님이라고 했으나 계산이 잘 안 된다.

 

낮술에 취해 뻗어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 날 새버렸네.

우왕~ 생일이 가버렸잖아.

정영신씨 하고 오붓하게 쫑 파티 하려던 것도 물 건너갔고

기념으로 하려던 한 살짜리 퍼포먼스도 불발로 끝났네.

뒤늦게 한 말로 요즘은 육 개월 지나면 젖 안 물린다네.

 

, 한 살짜리 개구쟁이가 분명한데, 몸은 자꾸 늙어가니 이 일을 어떻하나?

이제 내 나이 철없는 한 살로 돌아왔으니,

행여 어리광을 부리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나이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과 ‘이숲’에서 발간한 조문호의 ‘노숙인, 길 위에 살다 죽다’[부제: 쪽방촌에서 보낸 5년의 기록]이 오는 9월 중순경 동시에 출판됩니다.

 

그 사진집 출판과 함께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전시는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고, 조문호의 ‘노숙인, 길 위에 살다 죽다’는 인사동 벽치기 골목 담벼락과 ‘유목민’에서  9월23일부터 10월4일까지 열리오니 많은 관람과 성원을 바랍니다.

청년들의 꿈을 키우는 아산의 ‘공유공간 마인’이 문을 열었습니다.

청년자립공동체를 꿈꾸는 소통과 희망의 공간입니다.

개관전으로 부족한 나의 ‘사람’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문화에 대한 열정을 칭찬해주시고,

많은 성원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2012, 화령장에서

 

장 따라 다니며 만났던 시골 부부들의 정겨운 사진에서

새삼 부부 금실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금실이란 것이 저울로 달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살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 쌓여 곰 익은 것이 금실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장에 오는 부부들이 승용차나 트럭을 타고 오기도 하지만,

얼마 전 만해도 경운기가 대부분이고, 오트바이나 삼륜차 등 종류도 가지가지였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소가 끄는 달구지가 더 많았지요.

장에 같이 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 해가며 친구도 되고 애인도 되며 정을 쌓아갑니다.

나 역시 전국 장터 찾아다니며 쌓은 금실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3 금산장

 

'금슬(琴瑟)'은 거문고 금자와 비파 슬 자로 거문고와 비파지만, 부부간의 사랑을 말할 때도 사용됩니다.

거문고와 비파처럼 잘 어울린다는 말이겠지요, 아름답지만 덤덤한 화음처럼...

그러나 금슬보다 금실이란 말을 많이 써, 사전에도 부부간의 사랑을 '금실'이라 해놓았습니다.

자주 쓰면 그 말이 표준말이 되기도 하지요.

 

나도 글 쓸 때 문법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글이란 내가 편하게 말 할 수 있고 상대가 쉽게 알아채면 그만이니까요.

법이나 문법이나 일률적으로 규정지어놓은 것을 싫어하는 건, 규정지울 수 없는 게 너무 많거든요.

누가 한말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과거는 고체이고, 현재는 액체이고, 미래는 기체다”란 말을 읽은 적 있습니다.

말이나 법이나 모든 것들이 굳어버린 과거를 붙들고 고민하기보다,

현실에 맞는 것들이 바람직하다는 말이겠지요.

 

왜 갑자기 부부금실 이야기가 길어졌느냐 하면 스스로의 금실 무게를 달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요즘은 금실보다 계산에 의해 사는 내외도 많으니,

금실이란 말도 금으로 만든 실처럼 귀하게만 느껴집니다.

 

1995 고창장

 

헌법도 얼마나 잘 못 된 게 많습니까?

난, 아내와 이혼하고 지금은 동지로서 만납니다.

부부 언약보다. 동지로서의 맹서를 충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 또한 말장난에 불과하겠지만, 법이 만들어 낸 모순입니다.

 

돈 안 되는 다큐사진가로 몇 십 년 살다보니 살기 힘들었거든요.

벌이가 없으니사진이나 제대로 찍을 수 있었겠습니까?

기초생활수급자만 되면 사는 게 문제없을 텐데, 아내가 젊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도 다큐 사진하는 거지인데, 이런 좆 같은 법이 어디 있습니까?

 

난, 대마초도 마찬가지지만 잘 못된 법은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혼하고 동지서약서 쓰고, 사진하는 동지로 만납니다.

이제 이혼한지 5년차로군요.

이혼하여 쪽방 촌에 들어오고부터 사는 게 훨씬 나아졌습니다.

동지 일을 자기 일처럼 한다는 동지서약서 보면 눈물 날 정도로 웃깁니다.

 

2014년 밀양장

 

인생은 한 편의 장편 드라마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장터 갈 땐 내가 기사가 되어주고,

쪽방 컴퓨터 고장 나면 동지가 기사 되는 그런 식으로 만나는데,

떨어져 있는 시간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코로나 시국인데, 누굴 만나겠습니까?

코로나 전에는 주말에만 함께 지냈으나, 지금은 일주일에 닷새 정도 함께 지냅니다.

비좁은 정영신씨 집에 같이 있는 동안은 하루 스무 네 시간을 반경 10미터 내외의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니, 밀착 방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동지의 금실도 부부 금실 못지않다는 것을 감히 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4년 전, 광화문광장에서 동지를 만나 사진가 이정환씨 카메라에 잡혔네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랍니다.

사진가 정영신씨가 3년 간 작업해 온 ‘장에 가자’가 ‘이숲’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장에 가자’는 시골장터와 그 지역 문화유산을 탐방한 책으로

장터에 문화의 옷을 입히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가족과 함께 주말여행을 생각하시는 분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장에서 사람 사는 정을 느끼고, 인근 유적까지 돌아본다면 유익한 여행길이 되리라 여겨진다.

 

그동안 정영신씨가 장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낸바 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시골 오일장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장터와 유적을 연관시켜

장터가 문화 관광의 허브가 될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각 지역별 역사와 인물, 특산물 등 일곱가지 주제로 분류해 전국 22개 장터를 소개했다.

찍어둔 기존의 장터 사진이 아니라 다시 발품 팔아 찍은 최근 사진들이다.

출간을 기념해 2020년 11월 11일부터 20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사진 전시회도 열린다.

 

‘장에 가자’ 책은 10월30일까지 SNS를 통해 판매한다

책을 주문하신 분에게 장터 사진(5x7인치) 한 장을 서명하여 증정한다.

아래 장터사진 5장 중 번호를 선택해 주시면 책과 함께 우송해 드린다.

전시회기간 중에 구입하는 분은 장터 엽서(5매)를 증정한다.

 

책값 입금하실 곳 : 하나은행 593-810222-39907 (정영신) 

정영신 전화 010-2955-8926 카톡이나 메신저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주문 받은 책은 매주 목요일 일괄 보내드립니다.

 

 

‘장에 가자’ -시골장터에서 문화유산으로-

-목차-

 

1장. 느림의 미학을 만나는 오일장

담양장, 대나무 소리 들린다

예천장, 조상의 숨결을 담다

영암장, 남도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월출산

 

2장. 여인 삶의 향기가 밴 오일장

청양장, 콩밭 매는 아낙네가 부르는 칠갑산

순창장, 고추장으로 버무린 살풀이

남원장, 춘향이의 고장

 

3장. 자연 특산물과 만나는 오일장

강경장, 백제의 옛 터전 황산벌

광천 토굴 새우젓 시장, 은근하게 발효된 자연의 맛

남해 이동장, 가천 다랭이 마을

금산장, 인삼의 고장

 

4장. 개화기 인물을 만나는 오일장

정읍 샘고을 시장, 동학농민운동의 발생지 말목장터

영덕장, 블루로드 영덕대게의 고장

구례장, 지리산과 섬진강이 빚은 땅

 

5장. 옛 성현과 함께하는 오일장

광양장,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실의 고장

영주장, 소백산 자락에 깃든 선비의 고장

송정리 오일장, 정(情) 한 보따리가 이야기꽃으로

 

6장. 역사 이야기와 함께하는 오일장

울산 언양장, 우리나라 근대화의 진열장

부안장, 산과 바다와 땅의 특별한 조화

무주 반딧불 시장, 나제통문

 

7장. 문화의 숨결이 오일장 속으로

옥천장, 정지용 시인을 만나다

고창장, 세계 최대 고인돌 유적지

보성장, 판소리 가락 초록 융단 휘 감는가

완주 고산장, 산중에 핀 한 송이 꽃, 선암사

 

-증정 사진 1-

-증정 사진 2-

-증정 사진 3-

-증정 사진 4-

-증정 사진 5-

 

-추천사-

사람냄새나는 ‘장에 가자’, 문화유산은 덤이다.

 

사진가 정영신씨의 시골장터와 지역 문화유산을 연결한 ‘장에 가자’를 펼쳐보니, 잊었던 고향과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자주 듣던 사투리가 튀어나오고, 약장사의 구수한 구라가 재현되는 등 그리움이 밀려왔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사람답게 살아 온 노인들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된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마디로 로봇의 세상에서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 같았다.

 

이 책은 34년 동안 장에 미쳐 쫓아다녔던 정영신의 장터 사랑이 이루어 낸 또 하나의 결실이다. 그동안 전국에서 열리는 오일장을 빠짐없이 찍고 장터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록하는 등 여러 권의 장터 책을 펴냈지만, 이 책이 기존 책과 다른 것은 장터 인근에 있는 문화유적과의 연관성을 살펴보며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다. 옛 선인이나 유적인들 장터와 관계없을 수가 없지만, 사람 만나는 장소가 장터고 사람 사는 게 문화니 자연스러운 조화인 것 같았다. 이왕 장에 간 김에 인근에 있는 유적지도 함께 돌아본다면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장터에서 절망보다 희망을 찾았다. 현실적 부정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장터사람들이 전하는 구수한 사투리도 정겹지만, 감칠맛 나게 풀어가는 이야기 전개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기계화되어가는 현실을 돌아보게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근원적 향수를 자극했다.

 

“워메 줄 것이 한나도 없는디, 요 무시라도 하나 깍아드릴께라. 먼디서 온 손님인디.”라는 남원장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인정이 군고구마처럼 따뜻하다. 갈퀴 같은 손을 내밀며 “꼭 소가죽 같제라. 그래도 이 손으로 새끼덜 먹이고 갈쳤제”라는 대목에서는 코끝이 찡해진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인데, 다 어디가 있는가?

 

영암장에서는 따뜻한 믹스 커피 한잔으로 하루 장사를 시작하는 할매들의 수다가 요란했다. 도갑사 해탈문 이야기, 도갑사를 지키는 나무 이야기, 영험한 월출산 이야기 등 장보따리 풀 듯 풀어낸다. 장터에 “봄에는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온 풋풋한 초록 푸성귀를, 여름에는 따가운 햇볕 아래 농익은 과일과 채소를,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들판에서 익어간 곡식을 가져온 여인네들의 삶이 아름다운 색과 냄새와 맛과 소리와 함께 진열된다.”고 적고 있다.

 

청양장에는 당근 네 개 달랑 들고 나와 자리를 편 할머니 이야기도 있었다. “이거라도 놔야 사람 구경을 마음껏 허지유. 산중에 살다 보면 사람이 그리워유.”라는 말에 외로움이 절절하다. 농산물 팔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구경 온 할머니에서 심각한 오늘의 농촌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정영신의 사진과 글은 아무런 기교나 멋을 부리지 않는다. 따스한 인정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만 차곡차곡 쌓여 있다. 시골 할아버지의 등짐에, 아줌마의 봇짐에 감춘 사연 사연들을 장마당에 풀어 놓고 있다. 사진들이 다소 산만한 느낌은 들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장터의 난장스러움이 잘 묘사되어 오히려 정감이 간다. 대개가 화면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장애물을 치우는 등, 주변을 정리해 기록적 가치를 망가트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 그런 하잘 것 없는 장애물도 역사적 단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배경을 택해 장꾼을 연출시키는 기존의 사진들에 비해, 이 처럼 장꾼들과 소통하며 찾아 낸 감정묘사나 장마당의 혼잡한 분위기가 주는 가치나 울림이 훨씬 오래간다. 사진을 찍기 전에 물건을 사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 것 또한 그만의 어프로치다. 재미는 좀 덜하지만, 그보다 몇 배로 값진 장꾼과 사진쟁이의 소통된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영신식 색깔의 장터세계고 작품세계인 것이다.

 

다큐멘터리사진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는 현장성에 의한 휴머니티가 짙게 깔려있다. 인정이 모닥불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정영신의 사진에서는 된장처럼 구수한 냄새도 베어나고 잘 익은 막걸리 맛도 난다.

 

정영신의 장터 사진을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각박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조문호 (사진가)

 

 

 

-작가노트-

움직이는 박물관, 시골장터

 

내가 어릴 적에 장(場)이 열리는 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은 잔칫날처럼 들썩거렸다. 안동 아재의 소달구지가 동구 밖에 이르면 깨순이 엄마 보따리가 제일 먼저 실렸다. 뒤이어 마을 사람들 보따리가 하나둘 올라가면 사방이 초록으로 덮인 신작로 길을 빠져나갈 때까지 뒤따라가다가 돌아왔다. 봄이면 들판에 앉아 있던 자연도 덩달아 장에 나와 그 지역만의 삶 이야기를 초록빛으로 품어냈다.

 

후미진 장 골목에서는 갈퀴와 도리깨, 체와 쟁기를 만들었고, 정월 보름을 앞두고 농악놀이에 쓸 짚신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팔았다. 대장간 앞에는 날이 무뎌진 호미와 낫을 벼르려고 노부부가 앉아 있었고, 텃밭에서 뜯어온 채소와 농로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가지고 나온 박씨 아짐은 생산자이면서 판매자였다. 또한 장터 끝 골목에는 엄마 따라온 삼식이가 새끼 돼지가 도망갈까 봐 새끼줄을 붙들고 동그마니 앉아 있었고, 털북숭이 복숭아를 머리에 이고 온 순덕이, 소금물에 우린 감을 베어 먹던 주근깨투성이 깨순이도 있었다.

 

이렇게 장은 자연과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르디푸른 이야기가 살아 있어 움직이는 박물관이 되었다. 지금 장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들이 지역 농산물로 만들어가는 농민 장터가 살아나야 한다. 장은 단순히 뭔가를 사고파는 장소를 뛰어넘어 인간의 삶과 정이 생생히 살아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장을 통해 소통하는 백성의 삶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왔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오일장은 점점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34년째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장터를 장터답게 만들 계기는 무엇일까?’ 숱하게 고민했다. 사진 한 컷 촬영하지 못하고 파장 무렵까지 장꾼들과 장에 나온 농민들과 이야기만 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도 자신이 사는 곳에 어떤 보물이 숨어 있는지 책이나 텔레비전에 소개된 것 말고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5년 전 신문과 잡지에 전국 장터를 2년간 연재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오일장의 모든 자료를 갖고 있지만, 새로운 장터 사진과 소식을 전하고 싶어 매번 다시 들렸다, 그 때는 장터의 변화된 모습과 또 다른 이야기를 기록했을 뿐 장터 주변에 숨어 있는 문화 유적지는 찾아보지 못했다. 장터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뭔가 두고 온 것이 있는 것 같아 다시 같은 장터를 찾곤 했다.

 

이 책, 『장에 가자, 시골장터에서 문화유산으로』는 내가 이전 책들에서 다룬 적이 없었던 장터와 지역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작업한 결과물이다. 여기 소개한 장 말고도 작업 중인 장이 숱하다. 30여 년 전 흑백필름으로 작업했던 예전 장터 모습과 요즘 모습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30년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으나 장에 오는 사람들이나 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더 크게 말하자면 장에 오는 사람들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불과 55년 전인 1965년에는 버스비가 1원이었고, 쌀 한 말 값이 360원이었다. 우리 사회가 근대화 이후 엄청나게 발전했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장터에 가면 고향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을 느끼고 싶어 구경하러 나온 사람처럼 장을 몇 바퀴나 돌며 헤집고 다닌다. 어떤 물건이 새로 나왔는지, 난전에서 무엇을 파는지 알고 싶다. 계절 따라 파는 물건이 다르기에 사계절 모두 장에 가봐야만 그 생리를 알 수 있다. 겨울철 구례 산동장에 가면 산수유 열매로 장 안이 온통 새빨갛다. 이처럼 장터는 그 지역의 삶이 그대로 펼쳐진 한 폭의 풍속도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면서도 인정 넘치는 백성의 문화 공간이다. 내게 남은 숙제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장의 특색을 잘 살려낼 고유한 문화를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네 시골장은 선조들의 역사이고 우리의 현재이자 아이들의 미래다.

 

정영신 (사진가, 소설가)

 

작가소개

​​정영신은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34년째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오일장 600여개를 모두 기록한 장터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장터에서 만난 우리 민초들의 삶의 애환과 각 지역의 역사적 자취를 찾아다니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농사짓는 초기부터 유통되기까지의 전 과정과 한국어머니들의 삶의 이야기를 채록해 왔다, 장마당의 풍정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장터 인근에서 만날 수 있는 지역문화유산과 장마당을 고리지어 사진과 글로 담아내고 있다.

 

개인전

‘정영신의 시골 장터’ (2008, 정선아리랑제 설치전)

‘정영신의 장터’ (2012, 덕원갤러리)

‘장에 가자’ (2015, 아라아트)

‘장에가자프로젝트2’ (2015 정선시외버스터미널 문화공간)

‘장날’ (2016, 아라아트)

‘정영신의 한국의장터전’ (2017, 전국5일장박람회)

‘장터에서 백만 가지 표정을 담다’ (2018.정선고드름축제장)

 

단체전

<순실뎐> (2017 나무화랑), <병신무란 하야제> (2017 아리수갤러리), <촛불 역사전> (2017 광화문광장) 등

 

출판

‘시골 장터 이야기’ (2002, 진선출판사).

‘한국의 장터’ (2012 눈빛아카이브)

‘정영신의 전국 5일장 순례기’ (2015.눈빛)

눈빛사진가선 29 ‘장날’ 정영신사진집 (2016.눈빛)

‘정영신의 장터이야기1’ (2019 라모레터)

‘정영신의 장터이야기2’ (2019 라모레터)

‘정영신의 장터이야기3’ (2019 라모레터)

 

작품소장

서울시립미술관 2점 소장

 

난, 생일을 유달리 싫어한다.

나만을 위한 특별한 날이 부담스러워서다.

어릴 적부터 생일은 어머니를 위한 날이라고 여겨왔다.

오죽하면 미역국을 싫어했을까?

 

젊을 때는 음력 생일을 가족들이 챙겨주었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음력 생일은 잊어버렸다.

한 동안 생일은 잊고 지나칠 때가 더 많았는데,

정영신씨를 만나며 피곤할 정도로 생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음력생일이 양력생일로 바뀌었고,

그 미끌미끌한 미역국 먹는 일이 유일한 생일치레였다.

그냥 지나치기를 바랬으나, 페이스 북을 시작하며 더 큰 곤욕을 치룬다.

 

생일이 되면 페북에서 나팔 불어대니, 잊고 지나치기는커녕

잘 모르는 페친까지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날려댄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다.

 

지난 9월3일에는 폭우로 정선 만지산에 고립되어 있었다.

이튿 날 아침에 생일밥을 먹기로 약속 했는데,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정오 무렵에야 물길이 열려 떠날 수 있었다.

 

아침 약속이 저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는데,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 네 시간이면 충분한 국도가, 이날은 양평에서 밀리기 시작하여

장장 일곱 시간이 걸려서야 녹번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영신씨는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조촐한 생일 밥상을 준비해 두었는데, 손녀 하랑이도 온다고 했다.

 

좀 있은니 아들 햇님이 내외와 귀염둥이 하랑이가 등장했다.

하랑이가 생일케익까지 들고 왔는데, 그 날은 생일 같았다.

 

하랑이를 웃기려 빠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더니,

괴기한 모습에 놀란 하랑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진짜 웃기는 건, 나를 보지 않겠다고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하랑이 마음을 달래려고, 좋아하는 얼음과자를 주어도 반기지 않고

생일케익에 불을 꺼라 해도 시무룩했다.

얼마나 할애비가 얄미웠으면 눈을 반쯤 감고 안 보려 할까?

 

“하랑아~할아비 생일을 축하해 주어 고마워”라고 말했더니

그때사 손 키스를 날려준다.

 

하랑이가 요즘은 어린이집에 다녀 그런지

말도 제법하고 귀여운 짓을 곧 잘한다.

먼 길을 탈출하여 어렵사리 생일상을 받은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생일을 맞고 싶지 않다.

이젠, 나에게 생일은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남부교도소 정문


벌금대신 몸으로 때우려는 꼼수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보름동안 몸 관리하며 충전할 속셈인데, 막판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사전투표를 못하게 했다.


며칠 전 교도관 반말에 열받아 혼낸 일이 있었는데, 미운털 박혀 나만 못하게 한 것으로 알았다.

참정권 침해라며 교도소장 면담을 요청 했더니, 선거담당교도관이 찾아왔다.

이유인즉, 선관위의 지침에 따른 조치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부재자 투표는 3월 28일 이전에 입소한 수용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개 같은 일이 어디 있는가?

내가 입소할 때 들어 온 사람만도 열 명이 넘었는데, 13일까지 들어 온 수용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전국의 교도소를 더한다면 투표 못한 사람이 결코 적은 수가 아닐 것이다.

선관위에서 투표률을 높이기 위해 방송이나 신문에 쏟아 붓는 나랏돈이 얼만데,

하려는 사람도 못하게 한단 말인가?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개판되도록 방임한 것만도 용서 못할 일인데,

투표마저 관료적인 관습에 빠져 자기네 편한데로 처리하고 있었다.

부재자 투표가 안 된다면, 사전투표나 거소투표에 참여시키면 될 일 아닌가?


이미 사전투표일이 지나버려 정해진 투표일에 찍는 방법뿐이란다.

남은 일 수만큼 벌금 내고 나가라는데, 그걸 누가 몰라서 못하나?

교도관들도 그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틀 당겨 나갈 수 있도록 벌금 20만원 내어 줄 사람이 없냐고 재차 다그쳤다.


하는 수 없어 정영신씨 전화번호를 일러 주었더니, 다음 날 바로 나가라고 했다.

아마 정영신씨가 빨리 내보내라며 십만원을 더보태 삼십만원을 보낸 것 같았다.

마무리 할 일도 남았는데, 정영신씨 선심에 갑자기 쫓겨나게 된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복도 그것 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서울남부교도소


그런데, 처음 교도소 들어가는 날, 지문채취를 하였으나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열 손가락을 다했으나 나오지 않아 별의 별 짓을 다했는데, 왜 지문이 없어졌을까?

지문이 닳아 사라졌다는데, 무슨 중노동 한다고 지문이 지워진단 말인가?

설마, 애무를 너무 진하게 해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


또 한가지 반가운 일은 그냥 모르고 넘어갈 뻔한 일을 알게 된 일도 있었다.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지 못해 항소기일을 놓쳤는데,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었다.

왜 변호사 면담 때, 그 문제를 말해주지 않았을까?

이미 형기야 마쳤지만, 정식재판청구서를 서부지방법원에 제출했는데, 잘 못된 일은 기어이 바로잡을 것이다.


아무튼, 서울남부교도소에서 보낸 나날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에 감염자처럼 2주일 동안 독방에 격리시켜주어 좋았다.

눈치 볼 사람도 탓할 이도 없으니, 혼자 즐기기는 그지 그만이었다.

외부인 접견도 되지 않고, 목욕이나 운동조차 할 수 없었으나, 견딜만 했다.

한 자리에서 앉았다 눕기만 반복했는데도, 하루가 너무 빨랐다.


오전 여섯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열 두시에 점심 먹고, 오후 여섯시에 저녁 먹고,

여덟시에 자는 다람쥐 채 바퀴 도는 일정인데, 시계가 없으니 밥 주는 시간으로 감을 잡을 뿐이었다.

낮 시간에는 티브이나 라디오 방송을 듣기도 하고, 책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밤이 문제였다.


장장 열 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어찌 잠만 잘 수 있겠는가?

실컨 자다 깨어나면 곧 날이 샐 것 같았지만, 새벽 한시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가끔 순찰하는 교도관의 발자국 소리만 지나칠 뿐, 적막강산이었다.

어쩔수 없이 다섯 시간 넘게 생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기회도 흔치 않을 것이다.


독방의 크기는 동자동 쪽방과 비슷하지만, 방안에 화장실이 포함되어 더 좁았다.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월요일마다 다른 방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옮길 때 마다 조금씩 주거 환경은 나아졌다.


처음엔 종이컵 한 개로 삼일을 버티고, 세재가 없어 휴지와 비누로 식판을 닦기도 했으나,

두 번째 방에 가니 다른 사람이 두고 간 머그컵도 있고, 요구르트 통에 담긴 세제도 남아 있었다.

세 번째 옮긴 방은 세 사람이 사용하는 방이라  넓은데다 주방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혼자 지내는 데는 큰 방이 오히려 불편했다.


물품을 구입하는 것도 품목마다 신청하는 날자와 주는 날자가 제 각각이라 놓치기 일수였다.

없으면 없는 데로 지내면 될 텐데, 빵이나 비스켓 등을 주문하였더니, 밥맛을 잃게 되더라.

가끔은 담배 찾느라 주머니를 뒤지다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겪어 본 구치소 생활인데, 시정해야 할 점도 있었다.

주변 환경이나 시설은  나아졌지만, 억압적인 일제 잔재는 그대로였다.

좌변기 화장실이 방마다 있고, 티브이를 시청하는 시간이 주어지고,

제공하는 음식물은 좋아졌지만,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바뀌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있는 군대식 점호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까지 짐승에게 먹이 주듯

식구통이란 구멍을 통해 밥 넣어 주는 형태는 여전했다.

다들 받아먹기야 편할지 모르겠으나, 이건 인간을 모독하는 짓이다.


낮 시간에는 여러 가지 불편한 점도 따랐다.

티브이야 보기 싫으면 꺼 버리면 되지만, 라디오 방송이 문제였다. 

유일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아침 일곱시 멘트 외는 대부분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음악이었다.

스피커가 천정에 달려 있어 껄 수도 없는 일이라 짜증스러웠다.


티브이는 하루 한차례 보여주는 생방송 뉴스 외에는 대부분 녹화방송인데, 어디를 가나 먹는 이야기 뿐이었다.

먹다 죽은 귀신이 화색도 좋다지만, 감방에 갇힌 놈들 침흘리게 하는 것은 무슨 악취미인가? 

오랜만에 본 티브이 방송이라 처음 보는 생소한 프로도 많았다.

보여준 프로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영화는 ‘그린 북’이었다.

취향도, 성격도 완전히 다른 두 남자의 특별한 우정을 다룬 영화였는데, 시사하는바가 컸다.


좌우지간, 12일 동안의 감옥생활은 나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처음부터 작정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주변 여건도 따라 주었다.

전염병이 창궐하지 않았다면 어찌 독방에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덕분에 조용히 앉아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일도 결국은 스스로를 위한 일일 수도 있었다.

자신의 이기심에 가족만 희생시켰다는 생각에 이르니. 돌로 머리를 찍는 기분이었다.

이제 남은 여생은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난 14일 정오 무렵, 교도소에서 쫒겨나왔으나,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일단, 마을버스를 타고 오류동까지 나와 목욕탕부터 들어갔다.

머리에 남은 찌꺼기야 교도소에 버렸지만, 몸 찌꺼기를 버리기 위해서다.

뜨거운 탕에 들어 앉아 다짐에 다짐을 했다.

이젠 재미있게 살기로...


사진, 글 / 조문호




















코로나 증상이 나타난 게 아니라, 정상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남부구치소에 2주간 보호격리 됩니다.

벌금 2백만원 판결은 공익이 중요하냐? 양아치 명예가 중요하냐?는 승복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후배가 벌금 내라며 사진까지 사 줘도 버틴 일인데, 정영신씨 압력에 꼬리 내린 일이지요.

넉 달로 나누어 벌금 50만원은 먼저 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입니다.


어차피 쪽방에 격리되어 굶기를 밥 먹 듯 하는데, 구치소에 있으면, 삼시세끼 밥걱정은 덜 수 있지요.
몸에 해로운 술 담배 안 하고 규칙적인 생활하니 몸은 또 얼마나 좋아지겠습니까?
도랑치고 게 잡는데다 님 까지 보는 격이 아닌가요?

오늘 서울남부교도소에 들어가서 오는 17일 나올 예정입니다.
그 때쯤 되면 사진에 있는 벚꽃도 다 지고, 쓰레기도 말끔히 치워지겠지요.
정치판도 깨끗이 청소되어 새로운 선량들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 포스팅도 폐북 질도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다시 뵐 때까지 다들 건강 잘 지키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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