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1

서울역 주변에는 그림자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노숙인이 많다.

숨어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지난날을 돌아보는 자체가 고통일 뿐이다.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심지어 이름까지...

 

그리고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어한다.

투명 인간으로 떠돌다 죽고 싶은 것이다.

 

‘서울역 다시서기 지원센터’ 지하 벽에는 노숙인들이 써 놓은 낙서가 많다.

 

“서러움과 슬픔이 가득 차고, 술과 욕설과 싸움이 난무하는 곳”

‘내 고향 솔치재“라는 글도 눈에 뜨인다.

솔치재라면 내가 살던 정선 지척에 있던 고개 이름이 아니던가?

낙서 중에는 백조 시인이 쓴 ’신비로움과 사소함의 동거‘라는 시도 있다.

 

”오랫동안 간절한 것은 신비롭고

한참 머무는 것은 사소롭다.

신비는 직장에서 잘린지 오래고

사소는 각방을 쓴지 오래다.

불황이 걷히지 않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오해가 풀리지 않아

바람 부는 날이 잦아진다.

신비로움과 사소함은 동거 중이다.

궂은날이 이내 지나가고

풀어헤친 머리를 야무지게 묶는다.

네가 내게로 온다“

 

백조 시인이 일 년 전에 쓴 글이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진다.

 

노숙인들의 술자리에는 말 없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이야기가 나와도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실 뿐이다.

말 없는 이들은 표정도 변화가 없다.

다 놓았으니 마음은 편할 것이다.

 

추석을 며칠 남긴 서울역광장의 밤은 한적했다.

다들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더라.

 

오 갈대 없는 이의 명절이란 또 하나의 고통에 다름아니다.

 

다음 날은 쪽방촌 추석 선물 나누어주는 날이다.

웬일인지 ’새꿈공원‘에 선 줄이 길지 않았다.

다들 추석 선물이라 모자라지 않을 것으로 여겼나 보다.

옆방 사는 김씨는 마스크를 두고 와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누어 준 선물 박스는 쌀이 들어 묵직했다.

육개장, 라면, 김, 고추장, 된장에 이르기까지 식료품 종합세트였다.

대개 내용물이 비슷비슷해 된장과 고추장은 지난번 것도 있어 남아돈다.

 

낑낑거리며 사층까지 올려놓고 라면 끓일 물을 올리는데,

때맞추어 교회 청년들이 도시락을 전해 주네.

 

고맙게 받아먹었으나, 부끄러웠다.

남의 도움에 길들어 산다는 것이...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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