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 무렵 공원산책에 나섰다.
그 때까지 잠에서 못 깬 노숙자도 있었고,
초장부터 술로 달래는 노숙자도 여럿 있었다.
밥 배급은 점심 때 부터 시작하니 다들 빈속일 것이다.
빈속에 들어가는 짜릿한 맛을 알랑가 모르겠다.
나 역시 엊저녁 마신 술에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를 연발했으나 순식간에 무너졌다.
공원입구 술자리에 한동안 안 보였던 병학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역 확진자 실려 갈 때 저승 따라 간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어찌 축배를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연을 들어보니, 코로나 걸린 것이 아니라 감방에 다녀왔단다.
죄목이 절도죄라는데, 임자를 알 수 없는 텐트를 잠깐 옮긴 죄였다.
그들이 머문 자리는 비에 노출된 곳이라 텐트가 절실했을 것이다.
오래 전 비를 피하지 못해 낭패 당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이다.
몸 젖는 것이야 샤워 쯤으로 생각하나 이불은 물론 담배마저 젖어버린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오들오들 떠는 것이 안 서러워 옷을 갖다 준 적도 있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장 발장은 빵을 훔쳐 잡혀 갔지만
집을 훔친 그 역시 생계형 신판 장 발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쪽방으로 올라 와 페북질에 빠져 있으니, 고맙게도 한 젊은이가 도시락을 전해준다.
살기 위해 먹었으나, 배가 덜 고파 지껄이는 헛소리에 다름아니다.
가볼 곳이 있어 일어서니, 맞은편 김씨도 나서고 있었다.
어디를 가는지 이 더운 여름철에 정장을 차려 입었다.
반질반질한 구두는 파리 똥도 미끄러질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 많은 자금을 빌려 바다 야시장을 개발하려는 허황된 꿈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지척에 있는 ‘KP갤러리’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임창준의 ‘기원의 장소’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텅 빈 전시장을 돌아보며 빈 자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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