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찌푸리고 사는 동자동 쪽방 촌에도 늘 행복하다는 이가 있다.

서울역 주변을 떠돈 지 10년차인 위씨(66세)인데, 그는 개미보다 매미의 팔자를 타고 났다.

 

지난 9일 깊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서울역광장에 나갔다.

쪽방과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가을의 향취가 묻어났다.

노숙인들은 총 맞은 병사처럼 여기 저기 쓰러져 자고 있었다.

 

그중에는 내외간인지 남녀가 같이 누워 자는 이도 있었고, 한 할머니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붓이 아니라 여러 자루의 볼펜으로 반복적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얼마나 힘차게 그렸으면 스케치북이 닳아 떨어질 정도였다.

궁금증이 발동했으나 저리 가라며 손사래 쳤다. 야심한 밤인데다 여자라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찾을 생각으로 돌아서는데, 버스정유장 벤취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오래 전 ‘다시서기’에서 일했던 위씨가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그동안 왜 그렇게 보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이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서 산다며 너무 좋아했다.

 

간섭하는 사람이 싫어, 낯에는 자고 사람들이 잠든 한 밤중에 혼자 나와 논단다.

얼마나 기타를 많이 쳤으면 기타줄 하나는 끊어져 있었다.

이젠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 너무 행복하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가족으로부터 버림당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족을 버렸다“며

기타하나 들고 나와 떠돈 지가 어느 듯 십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고 한다.

처음엔 대학로 주변을 떠돌았으나 끼니를 해결할 수 없어 서울역으로 진출했단다.

 

천성이 기타 치며 노는 것을 좋아하니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이젠 이가 빠지고 기타 줄마저 끊겨 볼품없는 노래였지만, 멜라니 사프카의 ‘더 새디스트 씽’을 불렀다.

회한이 묻어났다.

 

“난 울지 않겠어. 내색도 하지 않겠어.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할거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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