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광장에 머무는 노숙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노숙인 단속반이 들이닥쳐 외곽으로 쫓겨나야 했다.

단출한 짐을 가진 노숙인들은 잠깐 외곽으로 옮겼다 다시 자리잡으면 되겠으나

짐을 많이 가진 김지은씨만 피박을 썼다.

 

서울역광장에서는 제일 오래된 고참이지만 단속하는 경찰 앞에는 찍 소리도 못했다.

많은 짐이 모두 쓰레기봉지로 들어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라면 담긴 봉지마저 집어넣자 그것만은 간신히 돌려받았다.

단속반이 사라지면 또다시 하나하나 주워오겠지만, 그 시간만큼은 말끔하게 치워졌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노숙자가 노숙자에게 갑 질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힘센 노숙자가 누워있는 노숙자에게 일어나라며 지팡이로 후려치자 지팡이를 잡고 통사정 한다.

단속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행동인지 모르지만, 권력자에 빌붙는 완장부대가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단속하는 경찰 역시 완장부대에 다름 아니다.

그런 완장부대의 잔재는 노숙자들 뿐 아니라 쪽방촌에도 종종 볼 수 있다.

쪽방상담소 일 돕는 자들의 갑 질은 물론 심지어 모범방범대 마저 그런 우월감이 묻어난다.

독버섯처럼 사회 곳곳에 기생해 온 완장부대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완장부대란 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꽤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홍위병들이 찬 완장은 사람 죽이는 완장이었고,

일본 놈들에게 빌붙어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제의 완장부대는 물론, 한국전쟁 때도 완장이 설쳤다.

 

대개 완장 찬 사람은 건달이 많았는데, 완장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었다.

완장을 채워준 권력자의 뒷배를 믿고 갑 질을 해대는데,

옛말에 때리는 서방보다 말리는 시어머니가 더 밉다는 말이 있듯이

권력자보다 그 밑에 빌붙은 완장부대가 더 미운 것이다.

 

한국사회는 완장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쩡한 사람도 완장만 차면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진다.

문제는 권력자가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완장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충성을 위해서는 정의나 법도 따지지 않는다.

 

공직도 하나의 완장에 가깝다.

완장을 차면 국민도 안보이고, 나라도 안 보이고 오로지 임명자의 입맛만 맞춘다.

정권마저 완장을 채워주는 자들과 완장을 차는 사람으로 구분될 뿐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완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평등이고 공정이고 말짱 공염불에 불과하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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