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인사동 마당발로 통하는 노광래씨가 인사동 이야기사진집 제판을 찍자는 제안을 해 왔다.

이 책은 11년 전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책인데, 오래전에 절판되어 저자도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노광래씨가 인사동 풍류 40이란 책을 만들려고 자료를 찾았으나 책이 없어 다시 찍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없는 책을 다시 찍겠다는 걸 말릴 일도 아니지만 그의 인사동을 사랑하는 애착이 고마워 돕기로 했다.

그러나 출판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하여 선구매를 요구해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락된 사람을 추가로 추천하므로 개정판을 만들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미 많은 분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분은 출판사로 송금한 분도 있어 빼도 박도 못할 처지였다.

당장 노숙인책 출판과 전시 준비로 내 코가 석 자인데다 전시만 끝나면 진인진출판사와 계약한

인사동 사진집을 만들어야 할 처지라 난처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칼을 뽑았는데...

 

시간이 없어 추가로 찍을 분은 촬영일을 잡아 서너 명씩 세 차례로 나누어 찍기로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인원수가 자꾸 늘어났다. 추가 인원을 열 분 정도를 생각했으나 20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두 인사동과 관련된 분이기도 하지만, 몇몇 분은 예전에 찍으려고 추진하다 빠트린 분이었다.

더구나 그 당시 촬영까지 했으나 지면이 부족해 게재하지 못한 분도 십여 명이 남아있었다.

 

막상 촬영을 마무리하여 원고를 보내려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다시 찍은 만큼 빼야 하는데 누구를 뺀단 말인가?

이미 세상을 떠난 분도 열 분이나 되지만 그분들은 더더욱 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인사동 풍류의 주체이며 인사동 역사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이 늦은 것도 고민에 고민을 하다 묘안이 없어 하소연 하는 것이다.

제목을 인사동 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유목민으로 바꾸어 글을 없애고 초상사진으로만 만들던지,

아니면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오래된 인사동이 아닌 지금의 인사동으로 바꾸려면 촬영 방법이나 편집이 모두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7일 오후 3시에 마지막 촬영 일정이 잡혔다.

이날은 민중미술의 거목 신학철선생과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을 찍기로 했다.

그 외에도 미술평론가 최석태, 화가 황경애씨 등 네 분을 찍기 위해 나갔는데,

전날 정선에서 묘지 이장하느라 곤죽이 되어 잘 마무리할지 걱정스러웠다.

 

며칠 전에도 비가 내리더니 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내려 술 맛나게 만들고, 사진 찍기는 좋았다.

누군 비가 와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겠다며 걱정했으나 그건 사진을 모르는 소리다.

햇빛이 쨍쨍한 날은 밝은 부분의 질감이 잘 드러나지 않아 가급적 삼가한다. 더구나 사람 찍는 초상사진은...

인물사진은 확산광이 퍼진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오는 날이 더 운치가 있다.

 

약속 장소인 나무화랑으로 올라 가니 김진하 관장이 있었고,

마침 미얀마 민주주의 후원을 위한 더불어 붓글씨전인 미얀마 민중과 함께 여는 새날이 29일까지 전시되고 있었다.

 

김창남, 이지상, 김성창, 백인석, 구자춘, 이상필, 최 훈, 서연순, 성화숙, 최성길씨 등

서예가 열 분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전시기간이 남았으나 작품이 다 팔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 신학철, 이효상선생 내외분을 만나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진하, 최석태, 장경호씨와 더불어 술자리부터 잡아두고, 신학철선생 촬영을 마치고 오니 박재동화백도 등장했다.

인사동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박재동화백의 구수한 유행가 자락에 어찌 술맛 나지 않겠는가?

반가운 분들을 모처럼 만난데다 술이 한 잔 들어가니 누적된 피로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신학철 선생께서 핸드폰을 열어 최근에 그린 작품 두 점을 보여 주었는데, 눈이 툭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갑돌이와 갑순이연작이라는데, 그처럼 아름다운 춘화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삐걱거리는 달구지 위에서의 사랑놀음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린다.

꼴페미로 남녀 관계가 소원해진 현실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작품이 틀림없었다.

 

신학철선생이 오신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임경일, 우문명, 김윤기씨가 줄줄이 나타났다.

두 자리에 나누어 앉아 여기저기 옮겨가며 술 마시기도 바쁜데, 약속한 화가 황경애씨는 계속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유목민에서 인사아트프라자를 두 번이나 찿아가서야 찍을 수 있었다.

실내에서 찍겠다는데, 추억하고 싶은 인사동 거리를 보여 주는 입상사진의 촬영 취지와 달랐다.

덕분에 거리를 오가며 사진 찍느라 술은 덜 마셨지만...

 

그런데 통큰 갤러리일층에 포토이즘 박스란 새로운 업소가 들어와 있었다.

리모컨으로 자신의 순간적인 모습을 촬영하는 공간인 것 같은데, 별의별 업소가 다 생긴다.

 

유목민으로 돌아가니 전시작품 출력하러 갔던 정영신씨까지 찿아와 이제 술 마실 일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아 금지곡까지 한 곡 뽑았는데, 제 버릇 개 주지 못함을 널리 양지하시길...

 

누군가 돌아가신 사진가 최민식선생 이야기를 꺼내기에 그분이 준 인간사진집 때문에 내 신세가 요 모양 요 꼴이라고 말했더니,

박재동화백은 그 말과 더불어 지껄이는 쌍다구까지 그려 보여 주었다.

세상에! 속기사도 그리 빠른 속기사는 처음 보았다.

 

술만 취하면 배배 꼬며 염장 지르는 장경호의 술버릇도 여전했다.

갈 시간이 되었다는 이효상선생의 채근에 다들 일어섰는데, 술값을 박재동 화백이 계산해 버렸네.

내가 만든 자리라 꼬불쳐 둔 신사임당 두 장이 굳어 좋긴 하다만 거지 체면은 말이 아니다.

 하기야! 그 돈으로 마신 술값이나 되겠는가?

 

원님 덕에 나팔 분 즐거운 하루였지만, 꼬인 매듭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이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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