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해 주신 덕에 ‘인사동 이야기’ 출판기념전을 잘 마쳤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설치는 때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편치 않은 전시임은 틀림없었다.

한 달 전의 민폐가 체 가시기도 전이라 염치없는 짓이었다.

 

책이라도 좀 팔려는 욕심의 신중하지 못한 결정임을 뒤늦게 후회했으나

이미 전시안내를 올린 터라 빼도 박도 못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보도자료에서 부터 일체의 전시홍보를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일기처럼 매일 올리는 중계방송까지 멈추고, 한 분이라도 알게 될까 전전긍긍한 것이다.

그러나 다녀간 분들의 페북 연결로 알만한 분은 다 알게 되어버렸다.

 

그 벌은 전시장을 지켜는 내내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아는 분이 오시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으니, 고문도 그런 고문은 없었다.

심지어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자기가 왜 빠졌냐며 원망하는 지인까지 여럿 있었다.

그래서 정동지에게 맡겨둔 채 전시장 비우기를 밥 먹듯 했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한정된 지면에 어찌 다 수용할 수 있겠는가?

11년 전 초판 나올 때 찍은 분도 다 게재하지 못한 상황에서 추가 촬영까지 했으니 쩔쩔 맨 것이다..

하다못해 사진 질에 따라 선정하라며 출판사 편집자에 위임해 버렸다.

 

예전에는 만나는 대로 촬영했으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친분보다 인사동과의 관계성에 중점을 두어 신중하게 선택했지만, 이 또한 갑 질에 다름 아니었다.

 

내년에 출판될 인사동 책에는 개인 입상사진보다 인사동 행사장을 비롯한

특정 공간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많이 할용해 당시의 현장 이야기까지 곁들일 생각이다.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도 약속드린다.

 

이번 전시로 인해 많은 분들에게 민폐는 끼쳤지만, 더 좋은 책을 준비하는 수업료로 여긴다.

그 덕에 ‘인사동 이야기’ 책도 100여권이나 팔았고, 사진도 여러 점 판매해 손해는 보지 않았다.

 

그런데, 대전에 계시는 사진가 박순규씨는 전시 때마다 먼 길을 찾아주는 것도 고마운데,

마치 자식 챙기듯, 올 때 마다 농산물이나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 송구스럽게 만들었다.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찾아 주신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전시 첫날인 24일은 ‘유목민’에서 간단한 뒤풀이를 했는데,

이한성씨가 술값으로 백만원을 술집에 맡겨주는 통에 지난 전시 때와 달리 술값 걱정은 덜게 되었다,

그 날은 조해인, 김수길, 정동용, 김 구, 김제홍, 장경호, 임경일, 이명희씨와 함께 마셨다.

 

그 다음 날인 25일에는 마지막 들린 황정수씨 내외와 한 잔했는데,

먼저 술집으로 안내해 드린 화가 김정헌, 이태호씨도 자리 잡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황정수씨와 사진가 양승우씨가 친하게 된 경위와

서지학자 김영복씨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관계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셋째 날인 26일은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와 조준영씨가 전시장 문 닫을 무렵에 나타나

모처럼 ‘부산식당’에서 생태찌개를 먹을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에 들린 ‘부산식당’은 방에서 의자로 실내장식이 바뀌었으나

13년 전 찍어 준 조성민씨 사진은 그대로 걸려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아들이 물려받았는데,

마치 부친의 입상사진이 ‘부산식당’ 트레이드 마크처럼 벽면을 지켰다.

 

27일 늦게는 판화가 류연복씨, 사진가 김문호씨, 화가 신상덕씨가 나타나

전시장에서 와인으로 목을 축이다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 마시는 중에 신상덕씨와 ‘귀천’에 모과차 마시러 갔더니 목영선씨가 반겼다.

목순옥여사가 운영했던 ‘귀천’을 조카 목영선씨가 물려받았는데, 벌써 23년의 세월이 흘렀단다.

다섯 살짜리 아들이 스물여덟의 청년이 된 것이다.

 

28일은 ‘진인진출판사’ 김태진대표가 꽃다발과 축하선물까지 사 오셨다.

오래전 부터 인사동에 관한 출판 계약을 한 상태에서 같은 주제의 사진집 복간 기념전을 열었으니,

죄송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고마운 분이다.

 

그 날은 마지막 들린 화가 이인철씨와 어울려 불편한 마음을 위안했다.

 

전시 철수 전 날인 29일은 최석태, 장경호씨 등 여러 명과 어울려 자리를 옮겨가며 마셨다.

 

전시장에선 매일 주눅 들어 지내지만 문 닫기가 무섭게 술집에서 지냈다.

 일주일 내내 술독에 빠지는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런데 전시 끝나는 날 이한성씨가 다시 나타났다.

맡겨두고 간 술값이 소진될만하니 다시 찾아 온 것이다.

그 날은 장경호씨 앞으로 술 값 백만원을 맡겨두고 간 것이다.

 

이한성씨는 20여 년 전 인사동 주막 ‘작은뜨락’을 자주 찾았는데,

늘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자선 사업가다.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야박한 현실이 아니던가?

이런 분들이 인사동 풍류객의 주체로 버티는 한 인사동 앞 날은 결코 어둡지만 않을 것이다.

 

전시를 철수하는 날은 전시 디피에서부터 마무리까지 도와 준 김진하관장과 한 잔 했는데,

김수길, 전활철, 임경일, 노광래씨와 어울려 마지막 술잔을 들었다.

 

그동안 전시장을 비워 만나 뵙지 못한 분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해 아쉽지만, 아래 방명록에 적힌 성함이라도 오래 동안 기억하렵니다.

"고마웠고, 미안합니다"

 

조해인, 이명희, 한배규, 석은미, 김인재, 박경하, 이종승, 전강호, 양시영, 박홍순, 노광래, 박상희, 변정대섭,

편근희, 손기환, 전태수, 양상용, 김이하, 정영철, 나종희, 조정애, 김재홍, 황영선, 우문명, 곽숙경, 공윤희,

박옥수, 박서연, 박상희, 박 건, 조경연, 박불똥, 임태종, 서인형, 박태종, 김진하, 박서호, 안정희 ,최인기,

임경일, 안동해, 정동용, 김 구, 김수길, 박은태, 변성진, 박찬원, 성기준, 현영애, 박순규, 최효준, 이종구,

김발렌티노, 이태호, 김정헌, 황정수, 이만주, 김윤기, 최연하, 이규상, 조준영, 최영호, 이기정, 이성은,

김지연, 곽명우, 최태만, 양정애, 최동락, 박종면, 고 헌, 송주원, 전민조, 김문호, 유광식, 신상덕, 류연복,

이승곤, 양재문, 이병진, 김태진, 이인철, 문성식, 박순영, 이한복, 서정란, 임정희, 강찬모, 이상훈, 최석태,

금보성, 하형우, 이태호, 임동은, 고영준, 전활철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