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9

세상에! 이토록 천진난만한 늙은이가 어디 있겠나?

“비닐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시끄러워 잠이 오겠냐?”고 말했더니,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음악으로 들린다네.

 

지난 8일은 우산을 받쳐 들고 ‘새꿈공원’에 나갔다.

노숙하는 양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다.

솔직히 말해 술 생각이 간절해 빗물 섞인 막걸리라도 한잔 얻어 걸칠 심사였다.

 

유씨는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고 병학이는 술이 취해 졸고 있었다.

다들 떨어지는 빗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박씨 영감은 떨어지는 빗물이 거슬리는지 재활용품 비닐 포대에 들어가 있었다.

빗물이 거슬리기보다 자신의 육신도 재활용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빗물 소리가 음악으로 들릴지언정 바닥의 찬 한기는 어찌 견디겠나?

차라리 물방울 음악에만 심취하도록 대마초라도 한 대 권하고 싶었다.

그래! 비 피하려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받는 설움보다야 낫겠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피아노곡 ‘물의 요정’으로나 알고 들게나.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사랑을 잃고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전설 속 물의 요정의 슬픔과 절박함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다.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때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잔해지는

물방울의 춤은 자연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부디 물방울 소리를 장송곡으로 여기며 천국 가는 꿈이라도 꾸게나...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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