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노숙인, 길에서 살다’ 책 몇권을 배낭에 넣어 나갔다.

아직 못 챙겨 준 사람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떤 전도사는 몸이 편치 않은 이에게 축도를 올렸고,

몇몇은 모여앉아 잡담을 나누었다.

 

공원에 책 줄 사람은 남기씨 뿐이었다.

일부는 쪽방으로 찾아가 전해주었고, 서울역에선 지은이밖에 주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농담도 하지 않고 뭔가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책 날개에 적힌 약력 때문일까?

작업하러 쪽방에 들어 왔다고 생각했는지 친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걸 염려해 여태껏 언론사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지 않았던가.

 

사실 빈민들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려면 책만 낼 것이 아니라

널리 알리기 위해 언론 도움도 받아야 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편한 관계로 지내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걱정되었다.

그뿐 아니라 쓸쓸한 가을 날씨마저 우울하게 만들었다.

계절을 타는지 만사가 귀찮고 돌아다니기도 싫었다.

 

혼술은 청승맞아 정동지에게 전화 걸어 술 한잔 사 달라 했다.

둘이서 술 마시며 이런저런 하소연으로 시름 달랬다.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 새겼던 말도 곱씹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항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현실을 인식시켜 세상을 바로잡는 데 기여해야 한다.”

 

얼마나 계도에 보탬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힘들고 어렵다.

소주잔에 모든 시름과 가을까지 담아 마셔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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