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하랑이 온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하랑이 온다는 전화는 반가움에 앞서 걱정도 따랐다.
코로나 때문에 어른도 꼼짝달싹 않는데, 젖먹이가 우째 걱정이 안 되겠노?
아들 햇님이가 밖에 일보러 다니는 것조차, 병 옮길까 걱정하는 판에...




어쨌든, 하랑 공주님이 납시니 좋긴 좋더라.

조용한 집이 갑자기 난리 쳐들어 온 듯 복닥거렸다

지 모습 찍힌 동영상에 깔깔거리기도 하고,

책장에서 책을 뽑아보며, 이것저것 살피느라 바쁘다 바빠..


    

혼자 먹던 딸기는 어미와 애비는 주면서, 내가 달라니 울어 버리네.

딸기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귀신같은 할애비 꼬라지가 무서운 모양이다.

내 딴엔 하랑이 온다고 안 끼던 틀니까지 끼며 폼 잡았는데...

다음에 올 때는 머리도 자르고 동동 구리무 라도 좀 발라야겠네.


 

요놈의 자슥이 올매나 이뿌고 새칩은지 확 깨물어뿌고 싶더라.

저리 천진난만한 애를 보고도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란 양반은 정신 나 간기 틀림없다.

세상물정 모를 저때가 제일 좋은데, 점점 커가며 인간이 만든 굴레에 물들어가는 것 아이가?

나쁜 것도 배우고, 더러운 돈 욕심도 내고...


 

그 날은 하랑이 덕분에 모처럼 맛있는 음식까지 얻어먹었다.

연안식당에서 꼬막 비빔밥에다 멍게 비빔밥까지 완전 해적판이었다.

이제는 이도 여러 개 생겨 이 빠진 나보다 더 잘 먹더라.

그 큰 숟갈에 입 찢어질까 걱정스러웠다.


 

이젠 잡을 것만 있으면, 제법 아장 아장 걷기도 하네.

온 식당을 뿔뿔 기어 다니며 바닥 청소를 다 한다.

변화무쌍한 표정과 쉬지 않고 휘젓고 다니는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한 것 같다.

처음엔 마누라가 최고라며 호들갑 떨다가

자식이 생기니 자식이 최고라고 치켜세우고,

손자 생기니 손자가 최고라고 난리 피운다.


 

하기야! 옛말에 사랑은 내리사랑이란 말도 있다 아이가?


 

하랑이 덕에 온갖 근심걱정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맨날 이뿐 선물 사 준다는 말만 해 놓고, 치매 끼가 있어 가고나면 이자뿐다.

다음에는 기어이 선물을 구해놓아 점수 좀 따야것다.


 

하랑아! 우짜던지 건강하게 잘 커그래이~

 

사진, / 조문호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 터질듯한 첫사랑의 감정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손에 잡힐듯 생생하니,

사랑의 바이러스가 어지간히도 진하고 강한 것인가 보다.
주체할 수 없었던 아득한 옛 사랑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린다.




그 아름다운 사랑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가'가 잘 말해준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얼마나 좋았으면 이렇게 노래 불렀겠는가?
고려장해야 할 나이의 사랑타령이 좀 껄쩍지근하지만, 좋은 건 좋은 것이다.
비단 연인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혈육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지난 설날 연휴에 쪽방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저장된 사진을 옮겨 담느라 정신없는데,

정영신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빨리 와! 하랑이 왔어”
아무리 다급한 일이지만, 모든 걸 팽개치고 부리나케 달려간 것이다.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 아들 햇님 내외와 손녀 하랑이가 와 있었다.
콧구멍한 집구석에 이토록 정이 철철 넘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몇일 전 돌잔치에서 본 하랑이와는 완전 달랐다.
무표정하게 폼만 잡은 그 때와는 달리 이리저리 비집고 다니며 신났다.




어른들이야 좁은 집이 불편하겠지만, 하랑이는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달라진 환경에 흥미를 느꼈는지, 책을 꺼내기도 하고 설합장을 열어보기도 하고,
문짝에 붙어 있는 장터할머니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며 웃기도 했다.
심지어 제 모습을 찍는 카메라를 돌려보며 깔깔거렸다.
호기심 가득 찬 하랑이는 모든 게 신기하고 즐거울 뿐이었다.


 

나 역시 처다보기만 해도, 그 행복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혈육의 정을 이렇게 뜨겁게 느낀 적이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햇님이 어릴 때 느꼈던 40 여 년 전으로 거슬렀다.




꼭 껴안고 싶어도, 행여 다찰까 손도 댈 수 없었다.
하랑이가 집에 머문 두 시간 동안은 행복감에 부풀어 잠시도 눈을 땔 수 없었다.
쉬지 않고 사방을 기어 다니며 세상의 재롱은 다 떨었다.

음식도 잘 먹고, 보채지도 않았다.



하랑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 화인더로 지켜보았는데,
어른 같았으면 몸살 날 정도로 바삐 움직이며 표정도 변화무쌍했다.

붙잡고 일어서기도 하고, 말도 한마디씩 하며 숟가락 질도 곧잘 했다.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행복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늘보다 더 높은 사랑의 감정을 다시 한 번 체감한 것이다.

아름다운 환경에 취했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행복감과는 수준이 달랐다.
잠시도 떨어지기 싫었던 연인의 사랑과도 또 다른 차원이었다.



하랑아! 할애비를 행복하게 해 주어 고맙구나.

부디 건강하게 자라다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나이 먹어 늙어가는 거야 서럽지만,
경자년이 왔는데 그냥 넘어 갈 수야 없지 않은가?

 

 



기해년 간다고 마시고 경자년 온다고 마시니, 이러다 술로 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갈 땐 가더라도 ‘먹고 죽은 귀신 화색도 좋다’지 않더냐.

 

 

 

 

 

정초부터 연 이어 술 복이 터졌다.
정월 초하루에는 녹번동 정영신씨 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얻어 먹는데,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가 찾아왔다.
소주와 장어를 등짐에 넣어 왔는데, 어찌 술을 마다 하겠는가?

 

 

 

 

빵을 좋아 하는건 어떻게 알았는지, 빵도 잔뜩 사 왔더라.

동자동 살면서 배급주는 빵 맛에 길들었는데, 이젠 빼도 박도 못할 처지가 되었다.

양놈도 아닌 주제에 밥보다 빵을 더 많이 먹는 편인데, 술 안주로도 괜찮다. 
빵 안주는 술도 취하고 배도 부르니,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 아닌가?
소주가 모자라 꼬불쳐 둔 상황버섯 술을 꺼내 마셨다.

 

 



그 다음 날은 여섯시에 모임이 있다는 정영신씨의 전갈을 받았다.
예술인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서인형씨가 마련한, 시무식을 겸한 술자리란다.
서인형씨를 만나 구산동 ‘싸리골’에 갔더니, '서울민예총' 사무국장 황경하씨가 와 있었다.
뒤늦게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나타났는데, 일을 추진할 사무실도 곧 차린다고 했다.

 

 


삼겹살에다 갈비까지, 정초부터 육고기로 배를 채웠는데,
금주령이 해제된 서인형씨가 많이 마시는 바람에 덩달아 취해버렸다.
이차 가자는 걸 줄행랑쳤는데, 녹번동까지 따라 온 것이다.
술 귀신이 따로 없었다.

 

 



방이 좁아, 겨울에는 사용하지도 않는 다락방에 술상을 차린 것이다.
추워 떨며 마시니 좀 덜 취하는 것 같았다.
아들 햇님이 까지 찿아 와, 동자동에서 가져 온 초코파이 한 상자를 손녀 하랑이 주라고 선물했다.

 

 



이 술 저 술 닥치는 대로 마시다보니, 죽을 때나 마실 작정인 ‘불사주’까지 나와버렸다.
그 날은 술이 취해 맛도 모르고 마셨는데, 남은 술로 아침 해장을 하니, 정말 좋은 술이더라.

올 해는 술독에 빠져 아무래도 제 명에 죽기는 틀린 것 같다. 

 

 

 

다들 고마웠어요.  새해에는 만사형통하길 바랍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황경하 / 글 : 조문호

 

 

 

 

 

 

 







양재동에서 ‘진주청국장’을 운영하는 조영희 누님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어깨뼈를 다쳐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수술 받았는데, 수술결과는 좋다고 한다.




진주에서 여의도로, 여의도에서 양재동으로 40여 년 동안 청국장 끓이는 일에 매달렸으니,
쇠덩어리라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맏딸 박홍전이가 시집도 가지 않고 장사를 이어 받았는데, 골병드는 일이 식당일이다.
돈은 좀 벌었겠지만, 건강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지난 년말, 일산 사는 동생 조창호와 조옥희, 매제 김종성씨와 함께 병문안 갔다.




누님께서는 “수술을 잘 끝내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며 반갑게 웃었는데,
팔 밑에 받침대를 댄 모습이 어릴 적 본 아이스케키 통 맨 사람 같았다.
‘아이스케키 좀 팔았냐?’는 농담도 했는데, 얼굴만 보아도 즐거운 것이 가족이다.




이제 팔순을 넘겼으니, 식당에서 은퇴할 나이가 넘었다.
여기 저기 놀러 다니면 좋으련만, 시집가서 식당일만 해서 노는 것도 잊어버렸을 것이다. 
기껏 하는 일이 조계사에 기도하러 가는 것 뿐이다.




가족들이 다 수도권에 살지만,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일이 생기지 않으면 만날 수도 없다.
모처럼 만났으니,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지만 할 말은 많았다.




아들 햇님이가 카톡으로 보낸 손녀 하랑이 사진을 돌려보기도 했다.
장가 간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손녀 하랑이 첫돌이란다.




매제 김종성씨는 대학에서 정년퇴임하여, 딸 소원이가 운영하는 약국의 셔터맨으로 봉사한단다.

다들 생활전선에서 물러 날 때가 되었으니, 이제 재미있게 사는 일만 남았다.




못 다한 이야기는 퇴원 후로 밀쳐두고 다들 물러났다.



"새해에는 오짜던둥 건강 잘 지켜 재미있게 삽시더.

조씨 집안이 노는대는 일가견이 있다 아이가"



옛날에는 꽃놀이 술판을 '회초'라 그랬는데, 사전에는 없어 어원을 모르겠네.





"날 풀리마 꽃놀이 술놀이나 한 판 벌립시더!

이빨 사이로 새는 '봄날은 간다'도 색다르게 쌕시하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8일은 인사동 가는 길을 소녀상이 있는 일본대사관 방향으로 잡았다.
나올 때 치를 떨며 보았던 위안부 사진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도 천막 안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사진은 위안부를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 주변을 보지 못하도록 트럭에 장막을 쳤다.
잠시 멈춘 트럭 주변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서성거리는 여성은, 일본놈 완장인 것 같았고,
트럭 안에서는 한 여인이 뭔가 적은 쪽지를 전달하고 싶어 안달했는데,
그 안타까운 마음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




이런 걸 보고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 놈들은 사람새끼가 아니다.
그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과는 상종을 말아야 하니,
소녀상 철거가 아니라, 일본대사관을 철거해야 한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북인사 마당으로 옮기니, 인사동 상징 조형물이 좆처럼 서 있었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다른 때보다 사람도 적은데다 거리도 낯설었다.
큰 길가의 상점도 바뀐 곳이 많지만, 골목 안 술집 간판도 많이 달라졌다.
그중 아쉬운 건, 추억이 오롯이 남은 ‘인사동 사람들’이 곰탕집으로 바뀌었더라.




가게가 바뀌고 술집이 바뀌는 건, 주인이 바뀌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사동 풍류가 사라지고, 사람들 마음이 바뀌는 게 더 서글펐다.
온 종일 거리를 헤매었으나,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고,
가고 싶은 찻집이나 술집도 없었다. 마치 무인도에 홀로 선 것처럼...




밤에는 누군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백상사우나’에 들어갔다.
예전에는 백상사우나에 가도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었지만,
거기에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뜨거운 탕 안에서 가만히 생각하니, 헛 웃음만 나왔다.
대관절 무엇을 찾는 것인가? 누굴 기다린단 말인가?




실연한 사람처럼 밤거리를 휘적거리다, 지하철을 탔다.
마침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형 뭐해? 저녁이나 같이 먹지” 김명성씨 전화였다.
인사동에서 녹번동으로 발길을 옮겼드니, 조해인씨와 김광만씨도 있었다.




중국집에서 유산슬 요리시켜 고량주 한 잔 했다.
독립운동사를 훤히 꿰고 있는 김광만씨와 김명성씨가 뭉쳐
큰일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날 우연히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복동 할머니의 편지도 읽었다.
또박 또박 써 내려간 피눈물 나는 사연에 가슴이 미어졌다.




잊으려 해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이 어디 인사동뿐이더냐?
아! 졸라 슬픈 하루였다.




30일 정오에는 인사동 '나주곰탕'에서 방배추선생과 기국서씨를 만나고,
그 뒤 인사동을 돌아다니다, 저녁 여섯시에는 '툇마루'에서 ‘통인’ 인사모 팀과 술 마시고,
일곱시가 넘으면 ‘유목민’에서 놀다, 인사동을 마무리하련다.




온 종일 인사동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만 찍을 작정이니,
시간 있으신 인사동 사람들은 모두 나와 함께 추억합시다.
약장사 말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인사동 마무리를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우리는 지금 다음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 워크숍이

지난 24일 오후1시부터 5시30분까지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지하2층에서 열렸다

미술감독 안애경씨가 서울시 도움으로 마련한 워크숍에는 배일동 명창과 사회학자 한도현씨,

식품영향학 이정희 박사, 명상연구가 이민형씨, 시사인 고재열기자 등 다양한 층의 전문가들과

관련인 30여명이 모여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야 할 인간 도리와 자연 섭리를 논하는 자리였다.



일찍부터 약속한 일이 있어 한 시간 쯤 늦게 나갔는데,

전통문화에 탁견을 가진 배일동 명창의 강의는 이미 끝나 들을 수 없었다.

한도현씨는 마을공동목장을 만들어 슬기롭게 활용하는 제주 가시리 마을 주민들의 사례를 들었다.

조상들이 걸어 온 발자취를 살려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그들만의 헌법인 향약(鄕約)에 미래세대 권리를 명시했다더라.


    

다양한 사례나 문제점도 듣고, 명상연구가 이민형씨가 준비한 명상을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으나,

식물학자 이정희씨가 들려 준 식물공장이라는 화두는 많은 생각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비닐하우스나 양식어장도 식물공장이나 비슷한 제배방법이긴 하지만,

통제된 시설에서 빛과 온도 습도 등 모든 재배 조건을 인위로 조절하는 대규모 식물공장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이다.

계절과 장소의 제약 없이 필요한 양을 생산해 낼 수있는 식물공장은 관리와 운영 등 모든 설비가 자동화 된다고 했다.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데다 병충해도 발생하지 않고,

심지어는 식물 속에 함유될 영양분 양까지 조절해가며 안정적인 식량공급이 가능하다니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미국에 사는 유성호씨가 포스팅한 글이 페북에 올라왔다.

사막에 대규모 식량생산공장이 설치된다. 완전 무인공급, 자체동력과 자급 원료, 물조차도 보충하지 않는 최첨단의 식량공장이다. 36524시간 완전무공해의 최상의 벼와 밀, 옥수수등, 주요 식량자원이 무한정 공급된다. 그리고 원하는 국가에 그 공장은 설치될 것이다. 단 그 식량이 무상으로 분배될 경우에 한 한다. 기준의 대규모 농사 플랜트, 농약회사 등...돈되는 사업은 모두 해체되고 가족농은 각종 채소와 여타의 자급농작물을 재배한다. 농사는 돈벌이 보다는 취미생활의 범주에 들게 된다. 대규모의 생산과 소비, 무역은 사라지고, 지역중심의 경제가 부활한다. 대도시는 외면되고 모든 시민은 작은 도시에서 대부분의 부가적 농산물을 자체 생산, 소비한다. 가장 자연적인 최상의 땅에서 최상의 먹거리를 가꾸고 소비하게 된다. 기술이나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게걸스러움 탓에 모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인류는 창조(?) 이후로 생산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없어서 배고팠든 것이 아니라, 분배, 게걸스러움 탓에 배고플 수밖에 없었다 낮 꿈은 항상 즐겁다. ㅋㅋ 칼이 칼에 당하듯, 기술은 기술에 당한다. 그러니 왠만하면 지구를 너무 혹사시키지 말고 개발해야 한다. 빌 게이츠가 GMO에 투자하지 말고 이런 사막에서 식량 생산하는 사업에 투자하면 참 좋겠다. 어쨌거나 쌀국은 쌀도 많고 오일도 많고 돈도 많다. 그러니 그들에게 그런 걸 배우려 하면 안된다. 그런 게 없는 우리가 살면 지구가 산다. 그렇게 믿고 산다. 꿈 꾸는 직업이나 사업은 없을까?”


 

나만 몰랐지, 식물공장시대는 이미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과연 공장방식으로 식물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다음 세대에 끼칠 해악은 없을까?

그렇다면 영세한 농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그렇잖아도 기계처럼 살아가는 현실에 인간성 상실이 가장 큰 문제인데,

그런 문제를 더 부채질하는 것이 식물공장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다른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과연 미래 아이들이 이어갈 세상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자연환경을 가꾸고 보존하는 일이야 당연하지만, 잘못된 것은 모두 바꾸어야 한다.

정치는 물론 잘못된 법과 관습도 바꾸어야 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인간성회복에 있다.

교육이나 모든 사회시스템이 기계화 규격화 되어가는 지금의 구조로는

날이 갈수록 사람이 아니라 인간 로봇을 만드는 꼴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은 없고 기계가 사는 세상을 진정 바라는가?

모든 것이 돈이라는 마약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어제는 공원을 지나치다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귀여운 어린이들이 올망졸망 텐트에 모여 있는데, 여인네 둘이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 온 사람답게 사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순진한 어린이들에게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선교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

사이비목사 전광훈 처럼 종교를 정치화하는 것과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세뇌 시키는 거다.

우리국민은 오랜 세월 일본에 세뇌되어왔고 다음은 미국으로 부터 세뇌되지 않았던가.

어린이들이 자라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을 믿으면 될 것인데,

애들을 길들이는 못된 짓을 아무 죄책감 없이 하고 있더라.


 

우리에게 따뜻하고 다정했던 생활 방식이나 전통문화는 점점 박제화 되어가고 있다.

나무 한 그루와 물 한 모금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을 거슬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 문제는 그 날 모인 몇몇 사람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이 진지하게 고민하며 하나 하나 바꾸어나가야 할 문제다.

거창하게 인류를 위해서 라기 보다, 우리의 자식이나 손자 등 직계를 위해서라도 등 돌릴 수 없는 일이다.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손녀 하랑이를 위해서라도 잘못된 세상을 바꾸는데 모든 것을 바칠 작정이다


 

 

사람 나고 돈 나지, 돈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니잖은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에 다같이 동참하자.

    


사진, / 조문호























 


 


이광수교수의 페북 대화창 ‘서울사진가와 소총수’에 술꾼들 모이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세미나 토론자로 서울 올라가는 김에 술 한 잔하자는 것이다.

 

 

 


모처럼 반가운 자리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겨버렸다.
전 날 저녁 동자동에 갔더니 방문 앞에 우편물 한 통이 꽂혀 있었다.
뜯어보니 용산구청에서 보낸 ‘복지대상자 자격 및 급여변동 안내문’이었는데,
자격중지(급여중지)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격 중지될 이유가 없었다.

 

 


11일 작성된 공문으로, 이미 소명기간이 지나버렸다.
우편물이 왜 이리 늦게 왔는지도 모르겠고, 왜 중지되었는지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공무원들 퇴근 후라 확인해 볼 수도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짤릴 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혜택 받은 3년 동안 돈 걱정없이 잘 살았는데,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당장 내야 할 방세부터 걱정되었다.

 

 


난데없는 걱정에 밤을 꼬박 샌 후, 아침에 구청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다. 당하는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요한 일인데,
어떻게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이유는 아들 햇님이 재산에 변동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들어보니, 결혼 후 방을 얻기 위해 처가에서 빌린 전세자금이 재산으로 둔갑된 것 같았다.

 

 


충분히 소명할 수 있는 문제라 걱정은 덜었으나, 잠 안 자고 신경을 많이 쓴 탓에, 힘이 쫙 빠졌다.
스트레스 받아 그런지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어지럽기 까지 했다.

 

 

그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어 녹번동 정영신씨 집으로 찾아갔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해소에는 최고인 비상약을 먹었다.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져, 저녁 술 약속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25일 오후8시 북창동 ‘행복전집’으로 김남진, 김문호, 김봉규, 김태진, 이규상, 정영신씨가 호출되었는데,

그 날이 신문사 당직인 김봉규씨만 못 나왔다.

 

 


김태진씨가 미리 예약해 둔 북창동 ‘행복전집’에 가보니 김문호씨가 먼저 와 있었다.
좀 있으니, 그리웠던 분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들 막걸리를 마셨지만 혼자 소주를 마셨는데, 이광수씨가 추천해 준 ‘진로’가 참 좋더라.
술병은 파리약병 처럼 못 생겼으나, 술이 순하고 부드러웠다.
그 날 모임은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술 마실 일 밖에 없었다.

 

 


술독을 얼추 비웠으나, 그냥 헤어질 수 없었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노래방이 최고가 아니던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노래방으로 따라 갔는데, 다들 잘 부르더라.

 

 

 

이광수씨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는데,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났다.
어디서 그토록 시원하게 욕 할 수 있겠는가? “이 씨발넘들아~”
듣는 내가 다 속이 후련했다.

 

 


나도 한 곡 뽑기는 했지만, 이제 끝난 것 같았다. 젠장~ 소리가 나야지...
분명 봄날은 갔고, 노래라기보다 지랄발광에 가까웠다.
그러나 윤석렬로 받은 스트레스까지 모두 풀었다.
교주님께서 다음엔 부산에서 한 판 벌이자지만, 어디엔들 못 갈소냐?

 

 


기차 시간을 넘긴 이광수씨만 여관에 들어가고, 다들 뿔뿔이 헤어졌으나 자정이 넘어 택시가 없었다.
시청 앞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선동하는 앰프 소리만 요란스러웠다.
대형 전광판에는 목사란 자가 ‘문재인을 구속시켜야 된다’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전광판 대 여섯 개가 나란히 들어선 걸 보니 광화문광장까지 연결된 것 같았다.
택시 잡으러 광화문까지 가보니, ‘구국철야기도회’란 이름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라, 다들 담요 같은 걸 뒤집어쓰고 구호를 외쳤다.

 

 


무슨 찬양가 인지도 모를 신나는 곡도 있었다.
술이 취해 엉덩이춤을 추가며 사진을 찍었는데,
나만 미친 것이 아니라 다들 미쳐가고 있었다.

"할렐루야~"

글 / 조문호

 

 

 

 

 

 

 

 

 

 

 

 

 

 

 

 

 

 

 

 

 

 

 

 

 

 

 

 

 

 

 

 

 

 

 

 

 

 

 

 

 

 

 

 

 

 

 

 

 

 

 

 

 

 

 

 

 

 

 

 

 

 

 

 

 

 

 

 

 

 

 

 

 

 

 

 

 

 

 

 

 

 

 

 

 

 

 

 

 






지난 22일은 은평구 동내배움터 “뽀데모스”에서 사진 공부하는 날이었다
아들 햇님이가 진행하는 공부방인데, 나더러 사진 강의 좀 해달란다.
평생 강의라고는 서너 번 밖에 하지 않았는데,
갈 때마다 죄지은 놈 청문회 끌려가듯 어쩔 수 없어 나갔을 뿐이다.




첫 강의 할 때는 얼마나 혼 줄 났는지, 그 다음부터 술의 힘을 빌었다.
술에 취하니 수강생 눈이 보이지 않아 입이 열리기는 하는데,
쌍시옷 자가 수시로 나와 나이 값을 못했다.




그런 강의 공포증이 있지만, 아들 부탁인데 어찌 거절하랴.
죄 많은 애비 마음을 알랑가 모르겠다.




걱정되어 정영신씨 까지 대동해 갔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들 페북을 보고 알게 된 몇몇이 오겠다고 했으나 오지 말라고 말렸다.
가보니 며느리와 손녀 하랑이까지 나와 있었는데,
사진가 노재학씨를 비롯한 몇 사람밖에 되지 않아 아주 가축적인 분위기였다.




큰 걱정은 덜었으나, 이 빠져 삭은 소리라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사진 찍지, 예술 하지 말라는 말도 했고,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 주변을 찍으라는 말도 했다.

아들에게는 전몽각선생의 ‘윤미네’처럼 하랑이를 지속적으로 찍으라는 주문도 했다.




그런데, 강의 자료로 열장이 넘게 쳐 갔으나 눈에 보이지를 않으니 말이 연결되지 않았다.

독수리 타법으로 치느라 얼마나 고생한 자료인데...
한 시간으로 강의를 끝내고, 남은 한 시간은 정영신씨 장터 사람으로 떠 넘겨 버렸다.

하랑이 보려는 속셈도 작용했다.




하랑이는 엄마 품에서 풀려나고 싶어 몸부림 치고 있었다.
책상 의자에 세워주니 연필로 뭔가 적는 듯 끄적거렸다. 무슨 사진을 안다고...
그동안 공부할 때 마다 공부방에 나온 모양인데,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 다는 말도 있으나, 이 녀석은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정영신씨 강의가 끝나 헤어질 시간이 되니, 노재학씨가 맥주 한 잔 하잖다.
소주가 아니고 맥주란 말에 사양했더니, 가서 마시라며 술값을 건네주네.
염치없이 받아서는 활인마트에 들려 와인 한 병, 안심 한 팩을 사왔다.
징그러운 걱정거리 해결한 기념으로 정영신씨와 한 잔 했다.




술자리가 끝나 자리에 누웠으나, 하랑이 모습이 아른거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옛 말이 실감났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조햇님 담벼락에서 퍼 온 사진인데, 표정 하나 죽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