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귤암리 옛집에서 촬영한 최종대, 이선녀부부


정선 최종대씨는 만난 지가 25년이 넘은 오랜 인연으로 이웃을 넘어 동생처럼 가까웠던 사이었다.

그러나 2년 전 지하수 사용에 대한 이웃과의 분쟁에 휘말려 등 돌리고 말았다. 그가 주도한 갑질을 용납할 수 없어서다.




그런데, 작년 말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뒤늦은 부고로 장례조차 지켜보지 못해 어쩔줄 몰랐는데, 이야기를 듣고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최종대씨는 하루에 담배를 서너 갑씩 피우는 골초로, 운명하기 전부터 심한 장애를 겪었다고 한다.

변을 당하기 하루 전에는 장모 생신을 맞아 가족들과 진주를 갔는데, 차 안에서 눈물을 그리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아마 죽음을 예견한 것 같았다.




돌아와서도 얼굴 붉혀가며 악착스럽게 살아 온 지난날이 후회스러운지, 한 없이 울었다고 한다.

술 좋아 하는 아내에게 술 좀 줄이라고도 부탁하고, 내가 보고 싶다는 등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많이 하더란다.

그러더니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손도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임종한 것이다. 


 

정말 인생무상이란 말을 절감했다.

떠나기 전에 따뜻하게 다독여 주지 못한 게 한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집안 일은 누가 꾸려 갈 것이며, 그 많은 농사는 어쩔지 걱정스런 일이 하나 둘 아니었다.

더구나 큰 아들 창수는 정신병을 앓아 병원을 들락거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생긴 것이다. 아들 창수가 언제 정신병을 앓았냐는 듯 멀쩡해진 것이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하나하나 챙겨가며 어머니를 돕는다고 했다.

해마다 엄청나게 짓는 고추 농사를 그만두고, 손이 덜 가는 유기농에 전념하기로 했단다.



농장이름도 엄마이름을 딴 ‘선녀농원’으로 지어 새로운 삶을 예견하게 했다. 남편 잃고 자식 살린 셈이다.

이선녀씨는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도 잠시 뿐,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지난 4월 25일은 정선에 땅 뒤집으러 갔다가 카메라와 지갑이 든 가방을 두고 와 

십 여일 동안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하고 가슴 조려왔기에 빨리 정선 갈 날만 기다렸다.



5월5일 야채 파종하러 갈 때는 정영신씨가 따라 붙어 마치 야외 나들이 하는 기분이었다.

두릅 철이라 두릅 따러 간 것이다. 신세진 분들과 나누어 먹을 심산인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 운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름 값이 경유 1리터에 970원까지 내려 간 것이다.

예전에 전국 장터 쫓아다닐 때는 1500원까지 올랐는데, 그때 비하면 공짜나 마찬가지다.

살다보니, 코로나 덕도 보나 싶다.




평창장에서 야채 모종을 산 후, 만지산에 도착하니 오전 10시쯤 되었다.

열흘 전에 핀 탐스러운 도화꽃과 배꽃은 시들시들하고, 새롭게 핀 철쭉이 맞이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쩔까?” 갑작스런 더위에 두릅이 다 피어버린 것이다.

어차피 양이 적어 창수네 두릅을 사기로 했지만,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다.




예전에는 정선 가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며 여유롭게 지내다 왔는데,

요즘은 서울에 예쁜 여자 숨겨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바삐 설치는지 모르겠다.

죽도록 일만하고 돌아와, 이젠 정선 가는 게 두려워진다. 아마 동자동에 살며 생긴 조급증인 것 같았다.




평창장에서 구해 간 야채 모종부터 옮겨 심었는데, 그 날은 보슬비가 내려 모종에 물줄 일은 덜었다.

하던 일을 끝내고 창수네 집으로 올라갔는데, 창수엄마가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나야 운전 때문에 술 마실 처지가 못 되지만, 술 마시며 하는 이야기가 눈물겹다.




처음 시집왔을 때, 낮 시간의 중노동이 끝나도 밤에 디딜방아 찧는 일도 일상의 하나라고 했다.

시아버지가 막걸리와 콧등치기를 좋아해 옥수수를 비롯한 여러가지 곡식을 찧었는데,

체중이 가벼워 디딜방아가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큰 돌을 등짐에 짊어지고 밟으라고 시켰다는데, 찧고 나면 온 몸이 파김치가 된다는 것이다.




구절구절 지나간 이야기보다 앞으로 살아 갈 이야기가 더 기대되었다.

여지 것 일에 치이고 남편 눈치 보느라 못 푼 신명을 다 풀 것 같아서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이선녀씨로 부터 두릅을 전해 받았는데, 두릅 값을 기어이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전에 못 전한 조의금을 겸한 두릅 값인데, 정말 입장 난처했다.




“우리 사이는 돈이 오 가는 사이가 아니지요”라는 창수엄마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래요. 다음에 맛있는 거 많이 사오리다. 부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맑은 날 사진은 4월25일 찍은 사진이고, 흐린 날 사진은 5월5일 찍은 사진.

아래는 삼년 전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창수엄마 이선녀씨 이야기랍니다. 
  http://blog.daum.net/mun6144/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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