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내 생활도 많은 변화를 끌어냈다.

서울보다 정선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니,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사람 만날 일이 없으니 일거리도 많이 줄었다.

 

전시장에 자주 가지 않으니, 리뷰 포스팅 하느라 시간 보낼 일도 별로 없다.

그런데다 페이스 북에 기웃거리는 것도 일주일에 한 시간으로 못 박아 버렸으니, 시간이 남아돌았다.

 

페이스 북은 중독성이 있어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더라.

정영신씨 한데 퇴박 받는 일의 대부분도 페이스 북에서 비롯된다.

이제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 서서히 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미루어 왔던 오래된 필름들도 다시 꺼냈다.

사진을 찾는 일이 매번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았던가,

인사동 사람이나 동자동 사람들 인터뷰할 일도 이제 시작해야 한다.

 

어제는 정영신씨가 용인 납골당에 어머님 뵈러 가자고 했다.

그동안 차가 말썽을 부려 미룬 일이었다. 가는 길에 용인 오일장도 들려 본단다.

코로나 때문에 장터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게 한 둘이 아니었다.

 

용인 천주교성당묘지는 갈 때마다 소풍가는 것 같다.

외곽지역이라 드라이브코스로도 좋지만,

어머님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챙겨가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정영신씨의 어머니 고 김덕순씨와

정영신씨의 언니 고 정정숙씨 유골함이 아래 위로 나란히 모셔져 있다.

국화 꽃다발을 들고 와 사진을 쓰다듬으며 엄마를 부르더니,

갑자기 지난날이 생각이 났는지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부모생각에 마음 편할 자식이 있겠냐마는 정영신씨의 어머니 사랑은 유별나다.

살아생전 형제자매 중 유달리 정영신씨를 챙기며 거두었기 때문이리라.

 

음식을 나누어 먹고 보니, 가져 간 꽃이 아까웠다.

지금이야 아름답지만 며칠만 지나면 시들어 쓰레기가 될 텐데, 납골당 주변만 어지럽힌다.

한 송이씩만 영정사진 옆에 꽂아두고 집으로 가져 와 버렸다.

살아계실 때 잘 모셔야지 다 부질없는 짓이다.

 

납골당에서 내려와 용인시장으로 출발했는데, 그 곳에서 시장까지는 30여분정도 소요되었다.

그 날 상설시장인 중앙시장은 문을 열었으나 오일장은 서지 않았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이 엄중한 시국에 시골 노인들이 나올 수 있겠는가?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는 상설시장은 상인들의 한숨소리가 더 높았다.

 

손님이 있으나 없으나 광신적인 전도인들의 모습은 어디를 가나 빠지지 않는다.

‘예수를 믿어라’는 스피커 소리만 시장을 가득 메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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