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면 이름부터 짖는다. 그리고는 죽을 때까지 이름에 목숨 건다.
명예를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것은, 폼 잡아 역사에 이름 석 자 남기려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세상은 이름 남긴 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만든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그들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우연히 오래된 사진첩을 뒤적이다 ‘무명독립군 용사’란 꼬리 글이 달린 사진을 만났다.
독립을 위해 싸웠던 늠름한 독립투사의 모습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루한 차림의 말단 병사로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지만, 조국을 위해 몸 바쳐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을 것이다.
총검과 탄약을 지키고 선 무표정한 자세는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 같은 친근감도 느껴졌다. 주연이 아닌 엑스트라처럼...

독립운동을 한 투사만이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동학이나 이후의 한국전쟁에서도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칼집이나 총알받이가 된 무명용사가 얼마나 많겠는가?


비단 전장만이 아니라 삶의 전선도 마찬가지다.
부와 명예를 누리지 못한 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을 끌어가는 것이다.
산업전선의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고, 기술자나 예술가도 이름 한자 남기지 못하고 열심히 사는 다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들의 희생 속에 대통령도 나오고 장군도 나오고 유명작가도 나오는 것이다.
세상은 이름을 남기지 않고 살아가는 민초들의 것이다.

“이름 없는 무명용사 만 만세다!”

글 / 조문호

[아래사진은 같은 화보에 실린 사진이다.]

광복군 징모 제3분처 위원의 환송기념사진 (1941년 3월6일)
앞줄 왼쪽부터 박찬익, 조완구, 김 구, 이시영, 차이석
2열 왼쪽부터 최동오, 김문호, 신정숙, 김응삼, 이지일, 김봉서
3열 왼쪽부터 조성환, 조소앙, 지청천, 이범석, 양우조



선서하고 있는 광복군 지하공작대원
1942년 봄, 일본군이 점령한 후방지구 지하공작을 위해 떠나는 광복군의 모습이다.
앞줄 왼쪽부터 지대장 이범석, 구대장 안춘생, 대원 백정현, 이욱승, 김천성, 서 암


[1978년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에서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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