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빵 타는 날이다.
추적추적 비 맞으며 나갔는데,
심하게 젖을 정도는 아니었다.
날씨 때문에 빵 나눔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잔뜩 줄지은 사람들 보니, 눈물겹더라.






비오는 데도 바리바리 싸들고 온
‘한강교회’ 봉사원들의 마음도 그렇지만,
빵 타려 비 맞고 선 사람들이 얼마나 찡하던지...






진 찍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진 찍지마~ 초상권 침해야.”
돌아보니 ‘구글 보지’로 알려진 유영철이었다.
비시시 웃으며, ‘이거 형 먹어’라며 금방 받은 빵 봉지를 내 밀었다.
나도 받았다며 밀쳤더니, 추워 보인다며 윗도리를 벗어 주었다.

이 어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그를 끌고 ‘광주식당’으로 들어가,
된장찌개 1인분에다 막걸리 한 병 시켰다.
밥 한 그릇을 나누어 막걸리와 마셨는데,
술 마시며 털어 놓은 그의 가족사가 엿 같더라.






마누라가 다른 남자와 붙어먹는 꼴을 목격하고,
집 나온 지가 몇 년째인데,
얼마 전에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에도 가지 못했단다.






감정이 격해지는 영철이 더러 ‘광주식당’ 주모가 나가라고 성화다.
남의 가슴 아픈 사연보다 자리 차지한 게 싫은 모양인데,
그의 망가진 모습을 더러 본 듯했다.






광주식당 주모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망가진 모습으로만 판단하고, 망가진 이유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 모두들 정상이 아니다.
정신병적인 증상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에 가두고 사는 차이일 뿐이다.
사실, 양성 환자보다는 음성 환자가 더 위험하다.






인간을 이렇게 만든 주범은 바로 돈이다.

돈이 필요 없는 새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까?
정말, 돌아버리겠다

사진, 글 / 조문호

















강석남(64)씨가 동자동에 둥지 턴지가 올해로 5년째다.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두었고, 돈을 벌지 못하니 가정에 불화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가족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이혼하여 동자동으로 들어 왔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 남은 것 다 넘겨주고,

단돈 15만원에 옷가지 담긴 배낭하나 달랑 짊어지고 가족과 등졌다.

 

요즘은 폐암에다 당뇨, 고혈압 등의 지병에다 불면증과 우울증까지 겹쳐 약에 싸여 산다.

몸 자체가 그의 종합병원 수준이다. 아픈 걸 잊으려 사약 같은 술과 담배까지 한다.

그리고 그에게 생명줄 같은 기초생활수급비도 마음이 좋아 이웃에 다 푼다.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어려운 사람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동자동 사는 분들의 사정이 보나마나니 호주머니에 돈 남을 틈이 없는 것이다.

 

그에게 희망이란 말은 잊은 지 오래다. 죽지 못해 살 뿐,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다들 가슴 아픈 사연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은 대개 부정적이다.

일하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낸다는 단편적인 생각들인데,

젊은 층 중에 그런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극히 일부일 뿐이다.

다들 일자리도 얻을 수 없지만,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것이냐?

 

세상을 헤쳐 나갈 아무런 방도가 없으니 체념하고,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그들이 더 아파하는 것은 사회로부터 받는 멸시와 소외감이다.

제발 잘사는 사람들의 잣대로 그들을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과연 하늘 님이 계시기는 계신 것인가?

계시다면 한영애 노래처럼 세상 조율 좀 해주세요,

 

사진, / 조문호











갑자기 날씨가 서늘해지니,

봄이 찾아온 것 보다, 더 반갑다.
올 여름 쪽방 더위는 지긋지긋했다.
이보다 지독한 여름은 없었다.

날씨 덕에 노숙인의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깔판을 등짝에 붙인 노숙인의 패션도 재밋다.
쿠숀이 있어 노숙하기 안성마춤인데,
몇 겹으로 접을 수 있어 옮기기도 편하다.

옛날 거지는 얻어먹을 밥통이 필요 했지만,
요즘 거지는 자리 깔 박스용 판지가 필요하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노숙인은 빈 몸으로 떠돌아,
자리 깔려면 그 흔한 박스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복지, 복지, 입이 아프도록 나팔 불어대지만,
노숙인을 위한 복지 한 번 생각해 본적 있는가?
그들을 위한 물품 보관소 부터 만들어주라.
폐품을 사용하는 노숙자라 사람도 폐품이던가?

제발, 인간 폐품도 재활용 방법 좀 연구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이웃 사람들에 비해 더위를 못 견디는 이유를 뒤늦게야 알았다.
고참 들은 날씨의 이치에 순응하였고, 난 무슨 극기 훈련하듯 맞서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더운 시간엔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다 잘 때 들어오거나, 아니면 아예 그 곳에 자리를 깔아버렸다,

그들은 더위를 피해 다녔고, 난 버팅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정선 별장으로 피서나 갔다 오자.
허물어지기 직전의 별장이지만, 그 곳은 울 엄마가 묻힌 산중이 아니던가?
떠나기 전에 해둘 일을 체크하며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또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컴퓨터 식히는 팬 도는 소리에 나까지 돌아버릴 것 같다.






컴퓨터를 끄고, 천국으로 통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 곳은 시원하기 그지없고, 서울의 두 얼굴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옥상은 건물 관리인이 사용하는데, 더운 여름철만 잠깐 개방해 주는 유일한 숨구멍이다.

팬티만 걸친 비쩍 마른 알몸에 카메라와 담배까지 피워 물었으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보신다면 과관이었을 것이다.






서울역 건너편은 우리나라 대기업 빌딩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그 거대한 빌딩 틈으로 쪽방들이 코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가진 자들은 그 코딱지를 떼고 싶어 안달이지만, 어림없다. 어차피 함께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다.

어리어리한 빌딩은 사람냄새 대신 돈 냄새로 가득하지만, 쪽방 구석구석에는 사람냄새가 난다.

옥상에는 화초대신 고추와 방울도마도가 달려있고, 군데군데 빨래도 걸려 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3층에 사는 유씨가 소주와 새우깡을 들고 올라왔다.

이열치열이라듯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위 아래를 들락거리며 마신 소주가 다섯 병이나 되었다.

옥상에서 술을 못 마시게 해, 급하게 마셨더니 어질어질했다.

방으로 내려와 더위도 잊은 채 정신없이 잔 것까지는 좋았는데,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다.
냉수 들이키는 소리가 수채구녕 물내려 가는 소리같다. 


사진, 글 / 조문호



















더위에 쫓겨, 밖으로 나가야 했다.
쪽방 컴퓨터 앞에 쪼그려 있으려니, 숨이 턱턱 막혔다.

골목에서 만난 유한수씨는 김원호씨에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군인을 길들여 왔던 ‘충성’이란 개소리를 외쳤는데, 그게 누굴 위한 충성이었던가?

국가에 헌신해야한다는 것이 몸에 베었지만, 그건 기득권자들을 위한 미친 짓이었다
단지, 무료한 일상에 웃기 위한 행위였지만, 뒷 맛이 개운치 않았다.






조인형씨는 고물 티브이 한 대를 해부하고 있었고,
조두선씨와 박성일씨 등 몇 명은 이야기 나누느라 정신없었다.
일하는 사람과 노는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
사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새꿈 공원에는 정재헌, 이대영씨가 이미 취해 있었는데,
술이 약이던가? 술 취한 사람들은 다들 웃고 있었다.
절망에 익숙해지면 술과 담배를 끼고 사는 법이다.
세상이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





사는 게 너무 공평하지 못하다.
가진 자들은 돈을 주체 못해 별 지랄을 떨지만,
더워도 물놀이 한 번 가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
동자동 사람들에게 신바람 일으킬 일은 과연 없는가?



사진, 글 / 조문호












 




매일 방바닥에 앉아 일하다보니 허리에 문제가 생겨버렸다.
어제 새벽세시까지 컴퓨터와 놀다 허리가 불편해 잠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점심때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일어나려니 허리를 펼 수 없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신경외과를 찾아 나섰으나 후암동 주변을 샅샅이 뒤져도 병원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힘들게 걸었으나, 좀 다니니 통증이 사라지고 허리도 펼 수 있었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알아 병원 찾는 것을 포기하고, 새꿈공원 술자리에 어울려 버렸다.





김용태, 이원식, 황규복, 안중균, 강원씨 등 다섯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이 날은 황규복씨가 돈이 생겼는지, 이원식씨에게 파랑새 한 장을 주기도하고, 술과 담배까지 샀다.

그러나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정치이야기로 술맛 가게 하더니, 어제 있었던 현충일 이야기로 옮겨갔다.






문대통령의 추모사에 감동 먹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군대에서 개 고생했던 이야기까지 구구절절했다.

김용태씨는 차라리 군대에서 고생하다 죽었으면, 이 모양으로 살지 않고 죽어 대접이나 받을 거라는 쓸데없는 소리도 했다.

그리고는 이순신장군 이야기가 나오니 끝이 없었다.

하늘의 별을 보고 날씨를 알아보는 기상관측에서부터 장군이 남긴 명언 등 마치 위인전을 다시 보는 것 같았는데,

안중균씨는 이순신장군 초상이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것에 불만이 많았다. 어떻게 신사임당 보다 못하냐는 것이다.

액수로 위인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백 원짜리가 좋지 않으냐는 궤변도 펼쳤으나,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그 무렵, 저녁식사를 약속한 미디어작가 김도이씨가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일어나려는데, 또 다시 허리가 아파 일어날 수 없었다.

! 이 병은 누웠거나 서있으면 괜찮으나 앉았다 일어나면 통증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내일 쯤 한방병원에서 침이라도 한 대 맞을 작정으로 구부정하게 도이씨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집 앞에 있는 광주식당에서 된장찌게와 돼지고기로 저녁식사를 하며 반주 한 잔 걸쳤다.

한 병만 비우고 방에서 마시자며 일어났는데, 또 다시 허리가 아파 공원을 한 바퀴 돌아야했다.

방에 쪼그려 앉아 컴퓨터와 씨름할게 아니라 부지런히 다니며 사진 찍으라는 경고로 받아 들였지만,

근본적인 대책부터 마련해야 했다.






일단 의자에 앉아 일하는 방 구조로 바꾸어야 하는데, 방이 좁아 책상을 들일 수가 없었다.

도이씨와 궁리 끝에 방법을 찾아냈다. 의자높이의 좁은 침대를 만들어 의자와 겸용하고,

큰 책상을 들여 식탁을 겸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앞자리를 차지한 책장을 침대 밑에 넣으면 안성마춤일 것 같았다.

돈 생기면 목공소에 부탁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할 일이 많으나 허리 때문에 일찍 드러누웠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드니 머리가 지끈 지끈했다. 차라리 미녀생각이라도 할 걸...
인생이 일장춘몽이라는데, 그 마지막 꿈이라도 꾸고 싶었다.

사진, 글 / 조문호

























박근혜정부는 복지공약을 대거 앞세우며 들어 선 부패정권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대부분의 공약은 이행되지 않았고, 그가 내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일명 ‘송파 세모녀법’으로 알려 진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법은 실패했다. 잘못된 개정안이라 실패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전히 가난한 이들이 생계를 비관해 목숨을 끊고 있는 현실이 박근혜정부의 무능과 실패를 방증한다.

더 가증스러운 것은, 박근혜가 당선 다음 날 도시락을 싸들고 창신동 쪽방 지역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을 방문했고, 탄액안 가결 직후엔 ‘시국이 어수선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것은 서민의 삶이었다’며 단 한 곳의 사각지대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챙길 것을 당부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쇼 하나는 귀 막히게 한다.

그가 바꾼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복잡하고 까다롭게 만들어, 사각지대를 더 많이 만들었다. 취임 후 첫 번째 국무회의에서 경범죄 처벌법을 개정해 구걸행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만들고, 부정수급 근절을 방지한다며 부정수급통합콜센터를 만들었다. 온정주의를 표방하며 기초연금 개악안을 통과시킬 때도 ‘더 어려운 노인’을 도와야한다며 상위20%를 제외시켰다. 기초생활수급비도 외관상으로는 높였지만, 여지 것 지급받은 기초노령연금을 수입으로 잡아 공제했으니, 주고 뺏는 것이라며 수혜자들의 반발만 샀다. 실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대통령의 상징적 행보에서 동원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이었다.

더구나 청와대의 구체적인 지시로 어버이연합이니 엄마부대가 행동해 왔다는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때문에 송파 세 모녀가 죽어간다는 주장을 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공방 때문에 기초법 개정안, 이른바 송파 세모녀 법이 통과 되지 않는 다는 주장도 했다. 그들은 송파 세모녀법이 실제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빈곤사회연대와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송파 세모녀 3주기 복지 사각지대 피해 당사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생활고로 건강보험료가 체납돼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사각지대 놓인 다양한 사례가 공개됐다.

서울 중계동에 사는 60대 L씨는 2013년 교통사고로 목발을 짚고 다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정부로부터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2년 전 딸 결혼 후 아내와 이혼하여 홀로 됐지만, 부양의무자인 첫째 딸이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딸이 시집간 후 연락이 닿지 않아 남과 다름없지만 정부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대답 뿐”이라고 말했다. 정신 장애를 가진 30대 A씨는 홀로 살고 있지만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긴급복지지원제도 수급 신청을 거절당했다. 50대 B씨는 노숙기간이 6개월을 넘겨 복지지원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되었지만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의 여건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고 다들 목소리를 높였다.

박경석 빈곤사회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2일에도 영등포에서 40대 남성이 실직한 뒤 5개월 간 밀린 월세를 내지 못해 집을 비우기로 한 날 자살했다”며 “여전히 400만명이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등 송파 세모녀법은 실패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윤영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급여 선정기준과 보장 수준을 현실화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미혁 의원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으로 유형별로 수급자 선정기준이 다층화됐지만, 빈곤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돕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소득인정액 산출 방식을 포함해 제도를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날 증언대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김미혁의원을 비롯하여 윤호중의원, 우상호의원, 양승조의원이 나와 인사말을 했고, 빈곤사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와 김윤영 사무국장에 이어 ‘홈리스’의 박사라씨와 이진영, ‘동자동사랑방’의 김호태씨가 나와 다양한 사례를 증언했다. ‘동자동사랑방’에서는 박정아 대표와 선동수 간사, 최남순, 김영진, 한정민씨 등 여러 명이 참여했다.

사진, 글 / 조문호


























나이가 들수록 보폭을 좁히라고 했으나, 그게 잘 안 된다.
독하게 마음먹고 동자동에 살라고 왔으면,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놀아야하는데,
맨날 천방지축 돌아다닌다. 아니 끌려 다닌다.
어디 세상 연을 끊는 게 그리 쉬운 일이던가?
인사동이나 사진판에 대한 연도 그렇지만, 가족에 대한 연도 마찬가지다.

요즘 나를 더욱 바쁘게 하는 것은 바로 박근혜다.
내가 무슨 투사도 아니고, 세상살이에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열 받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신경을 끊은 것이다.
티비나 신문 한 장 보지 않았으니 가능했으나, SNS에 접하며 달라졌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개인적이고 방임적인 처신으로, 여지 것 하나도 바뀐 게 없다는 자책 때문이다.

나야 머지않아 사라질 테지만, 자식들에게는 이런 세상을 물려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함께 사는 빈민들을 위해서라도,
싸울 수 있는데 까지 싸워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쁘다는 이야기 한다는 게, 박근혜만 나오면 말이 길어진다.

지난 연말에는 동자동사랑방 공제협동조합 홍보위원회의에 참석했다.
홍보위원 김정호씨가 홍보위원으로 같이 일하자며 나를 끌어들인 것이다.
나야 하는 일이 홍보하는 일이니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 승낙했는데,
할 바에는 제대로 한 번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대외적인 홍보도 홍보지만, 그보다는 세상과 단절해 사는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게
더 중요한 홍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200여명 중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조합원 수만 보더라도,
폐쇄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말벗이 되어주어 함께 어울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 날 ‘동자동사랑방’ 사무실에서 가진 홍보위원 회의에는 차재설 홍보이사를 비롯하여

김정호, 허미라 홍보위원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우리가 할 일은 홍보물이나 소식지를 제작하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후원자를 늘리고, 잘 모르는 분을 설득하여 함께 하는 것이었다.

결의를 다지는 식사자리도 만들어, 다 같이 소주 한 잔했다.

그리고 한정민씨도 꼽사리 끼었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