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간 심한 감기증세로 꼼짝않고 방에서만 지냈다.
일단 사진을 찍지 않으니, 일 할 게 없어 편했다.
컴퓨터도 켜지 않은 채, 들어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천장에 붙여 둔 천상병선생의 윙크하는 사진이 위안했으나,
점점 고립감이 엄습해 온다. 죽음에 대한 연습인가?

쪽방은 방문을 닫으면 옆방에 사람이 죽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철저한 고립만 남는다.

그렇지만 그 고립을 은근히 즐겨온 게 사실인데, 몸이 아프니 도리가 없다.
엊저녁엔 장경호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찾아 와 병원가자고 난리를 피웠지만,

그마저 귀찮은 것이다. 사람이 싫어지면, 사진도 찍을 필요가 없고, 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래, 봄이 올 때까지 한 번 기다려보자.

곧 입춘이니, 광화문광장에서 한 판 놀아야 할 것 아닌가.
이틀 만에 밥을 먹기 위해, ‘식도락’으로 내려갔다.
그마저 늦은 시간이라, 밥은 일인분만 남아 있었다.
발알 하나 남기지 않고 밥솥을 비웠으나, 도통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입맛이 없어 살기위해 먹는다고 생각하니, 비참해지더라.

아마, 나 혼자 먹었더라면, 밥 숱 가락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어렵게 남을 돕는 공간이라 밥 한 톨 남길 수 없었다.
다 먹은 후, 맛있게 먹었다는 난에 스티커를 한 장 붙였다.
허미라씨가 매일 오후1시부터 주민들과 정 나누는 티타임을 갖는단다.
허마담이 타주는 다방커피가 그리웠으나, 커피만 안 된다니 정이나 나눠야지...

내가 모르는 '서울역쪽방촌상담소'에 대해, 최남선씨에게 많은 것을 물어 보았다.
쪽방촌상담소는 관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에 하청을 주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방’으로 자리를 옮겨 김정호씨 에게도 여러 가지 물어보았다.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사랑방조합’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단다.

관의 도움이나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하게 위해서다.

 

줄 세우는 거지취급도 싫다지만, 그건 주민들이 바꾸어 가야 할 일이다.
피난민들을 위해 한국전쟁 때나 있었던, 줄 세우는 짓은 이제 끝내야 한다.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물품도 날자를 정해, 시간 나는 데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하고,
소량의 후원 물품도 돌아가며 나누는 방법으로 바꾸면 된다.
빈민들을 구제한다는 가시적인 효과를 노리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좀 더 합리적인 여러 방안을 마련하여, 협상에 나서기로 작정했다.

저녁에는 안승룡씨 전시 오픈이 있어, 강남 ‘스페이스22’에 가야했다.
반가운 분들 만났으니, 어찌 술잔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어지러워 일어나야 했다.

돌아오는 길의 서울역 지하도엔 웅크려 자는 노숙자가 나를 비웃는 듯 했다.


저렇게도 살아가는데, 어찌 힘내지 않을소냐?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